일상생활을 통해 본 유럽통합 (14)

by eunews posted May 30,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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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을 통해 본 유럽통합 (14)
미국과 유럽연합 (EU)과의 관계

     지난 호에서는 미국과 영국간의 ‘특별한 관계’를 분석했다. 이번에는 미국과 유럽연합간의 관계를 알아보자. 왜 양자간의 관계가 중요하고 때때로 갈등으로 치닫고 있는지를 상술한다.
     보통 미국과 유럽연합간의 관계는 대서양관계 (Transatlantic Relations)라고 불린다. 미국과 유럽연합 각 회원국이 대서양을 두고 마주보고 있기 때문이다. 2차대전이후 미국은 냉전붕괴전까지 약 50만명의 군대를 유럽에 주둔시켰다. 냉전붕괴이후에도 독일을 비롯, 유럽 각 국에 약 20만명이 넘는 미군이 주둔해있다.
     이처럼 미국과 유럽은 2차대전이후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그러나 지난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두고 미국과 유럽연합간의 관계는 최악의 상황에 빠졌다. 영국과 스페인, 이탈리아와 중.동부 유럽 대부분의 국가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지지했다. 그러나 프랑스와 독일 등-미국의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이 지칭한 ‘구유럽’-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반대했다.
     세계경제에서 미국과 유럽연합이 차지하는 위치, 냉전시기의 관계, 냉전이후의 관계로 나누어 분석한다.  


                             미국과 유럽연합 (EU): 경제와 정치
     유럽연합 25개국은 세계에서 가장 큰 경제블럭을 형성하고 있다. 도표에서 볼 수 있듯이 전세계 수출의 19%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에 미국은 12.6%, 중국은 9.6%, 일본은 8.3% 정도이다 (유럽연합 자료, 2004년말 기준임). 전세계에 수출되는 제품가운데 1/5은 유럽연합에서 만들었다. 또 2004년 5월1일 유럽연합에 가입한 중.동부 유럽 10개국 (폴란드,체코,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헝가리, 발트 3국-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몰타, 키프로스) 을 제외한 기존 15개 나라는 대부분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 회원국이다. 즉 정치적으로 발달된 민주주의 국가이고 경제적으로도 풍요로운 복지국가들이다. 미국과 유럽연합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체적으로 자유무역을 지지한다. 따라서 국제무대에서 중국이나 일본, 그리고 개발도상국에게 시장개방압력을 행사해 왔다.

                             미국과 유럽연합, 중국, 일본 비교


           유럽연합 25개국
          
   미국         
중국         
일본
수출 (전세계수출대 비중)

        
  
       19%        

  12.6%        

   9.6%        

     8.3%
인구

        
4억5500만
        
2억9800만
        
15억
        
1억2700만


     역사적으로도 미국과 유럽은 밀접했다. 미국인구 2억9800만명 가운데 1억5천만명 정도가 유럽에서 이민을 간 후손들이라 여기고 있다. 이 가운데 자신을 독일인 후손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약 절반이 됐고, 영국과 아일랜드 출신이라고 간주한 사람들은 각각 20% 정도를 차지했다. 이들의 입장에서 보면 유럽은 할아버지, 혹은 증.고조 할아버지의 나라이다. 당연히 유럽 각 국에 대해 친밀감을 느낄만하다.
     정치적으로도 유럽연합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국제연합 (UN) 안전보장이사회에서 거부권을 행사하는 상임이사국은 5개 나라. 이 가운데 유럽국가는 프랑스와 영국이다. 냉전이 붕괴되기 전까지 미국은 국제문제에서 소련과 대치했다. 따라서 미국은 때때로 영국이나 프랑스의 협력이  필요했다.
     이처럼 유럽연합이 경제적으로 가장 큰 블럭이고 정치적으로도 미국과 많은 입장을 공유하기 때문에 이들의 관계는 국제정치.경제에서 중요할 수 밖에 없다.


                               냉전시기의 관계:  ‘외부 촉진자’
     2차대전이후 미국은 유럽통합에 아주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프랑스나 영국 등 대부분의 유럽국가가 소련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독일재무장이 필요하다는 점은 이성적으로 인정했다. 그러나 독일의 나치에 짓밝힌 경험이 있는 이들 나라가 독일 재무장을 직접 거론하며 토론하는 것은 아주 민감한 문제였다.독일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독일에서 나치잔재를 제거하고 독일을 민주화시키던 미국은 독일 재무장을 관철시켰다. 또 독일의 북대서양조약기구 (NATO) 가입도 지지했다.
     미국의 지도자들이 공통적으로 느낀 점은 유럽이 통합돼야 한다는 점이었다. 물론 구체적으로 어떤 식의 통합인지는 지도자 개인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 공통점은 유럽에서 또 하나의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유럽 각 국이 좀더 긴밀히 협력하고 경제통합을 달성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물론 1960년대 중반 당시 유럽공동체가 보호무역의 성격이 짙은 공동농업정책 (Common Agricultural Policy: CAP) 을 시행하자 미국 농무부는 이를 비판했다. 또 무역협상에서 이 문제때문에 많은 갈등을 겪어 왔다. 그러나 미 국무부와 다른 정부부처는 대체적으로 유럽의 통합을 지지했다.
     1970년대 1,2차 석유파동이 일어나고 미국경제가 침체의 늪에 빠지면서 미국와 유럽공동체는 자주 갈등을 겪었다. 미국은 유럽공동체의 비관세장벽을 거론하며 폐지를 요구했다. 그러나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각 국은 실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더 놓은 장벽을 쌓곤 했다.
     1981년 공화당의 레이건 행정부가 취임하면서 유럽공동체 각 회원국과 미국은 더 빈번한 갈등을 겪게 되었다. 힘의 우위를 역설한 레이건 대통령의 공세적인 대소정책이 문제였다. 독일 등 상당수의 유럽공동체 회원국은 소련정책에서 강온양면정책을 주장했다. 이런 갈등을 겪으면서 유럽공동체 회원국은 경제분제뿐만 아니라 안보분야에서도 미국과 시각과 이해관계가 다름을 인식했다. 이런 인식은 유럽공동체가 정치안보분야에서 한 목소리로 말하도록 노력한다는 유럽정치협력 (European Political Co-operation: EPC)를 강화하는 계기가 됐다.
     이런 점에서 유럽통합에서 미국의 역할은 ‘외부 촉진자’라고 불린다. 때로는 통합을 적극적으로 지지했기 때문에, 때로는 유럽공동체와 갈등을 빚어 공동체의 외교안보분야 협력 강화에 도화선이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냉전붕괴전까지 미국과 유럽공동체는 제도화된 협력기구를 보유하지 않았다. 물론 유럽공동체도 미국의 워싱턴 D.C.에 대표부를 파견하고 (유럽공동체 각 회원국이 파견한 대사관 이외에, 행정부 역할을 하는 유럽공동체 집행위원회의 대표부를 의미함), 미국도 브뤼셀에 상주대표를 파견, 업무를 처리했다. 그러나 고위지도자들의 정례화된 모임은 없었다. 또 미국이나 유럽연합 모두 각 상주대표부를 1급공관으로 격상, 양자관계에 중요성을 부여하고 있다.


                                       냉전이후: 제도화된 협력
     그러나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고 독일통일이 임박하면서 미국은 유럽공동체와의 관계를 강화해야 할 필요성을 직감했다. 당시 12개 회원국의 경제규모가 미국과 거의 비슷했고 냉전붕괴이후 국제사회에서 유럽공동체의 역할이 강화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초강대국 미국은 흔히 ‘계몽된 사익’ (enlightened self-interest)를 추진한다고 한다. 즉 미국의 국익에 부합하면서 다른 나라의 이익과도 어긋나지 않는 정책을 이행하는 것이다. 당시 제임스 베이커 국무장관은 유럽공동체와의 제도화된 모임을 제안했다. 유럽공동체의 역할이 증가됨을 감안, 관계를 강화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에따라 1990년 11월 미국 워싱턴 D.C.에서 ‘미국-유럽공동체 관계선언’이 서명되었다. 양측이 중요한 국제 정치.경제문제에 대해 정기적으로 의견을 교환하고 논의한다고 규정했다. 또 일년에 2회, 워싱턴과 브뤼셀을 오가며 정상회담을 개최한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위원장과 각 회원국 장관들의 모임인 각료이사회 의장 (6개월마다 순번제로 맡음) 이 미국 대통령을 만난다. 또 고위공무원들의 모임도 더 자주 정기적으로 열린다.
     이런 정부간 모임이외에도 미국과 유럽연합 주요 기업 회장들의 모임인 대서양기업인대화 (Transatlantic Business Dialogue: TABD) 가 있다. 정기적으로 모여 양자간 무역분쟁에 대해 논의하고 정부에 정책건의도 제출한다.
     그러나 이런 제도화되고 강화된 상시채널에도 불구하고 양측은 무역문제에 대해 자주 분쟁을 벌인다. 미국은 유럽연합의 철강보조금 철폐를 요구하며 통상보복을 실시했다. 이에 유럽연합은 세계무역기구 (WTO)에 제소하기도 했다. 그만큼 냉정붕괴이후 무역문제가 중요한 의제가 됐기 때문이다.
     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에서도 미국은 유럽연합의 지지를 절대적으로 필요로 한다. 유럽연합은 미국이나 일본과 비교, 약 3-4배가 많은 국제원조를 제공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주택과 도로건설 등 기반시설 건설의  상당수가 유럽연합이 제공하는 원조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라크 전후 복구도 마찬가지이다. 미국은 침략에 엄청난 돈과 병력을 소비하고 있지만 막상 전후복구에는 그리 큰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 물론 이라크 치안이 안정되면 많은 미국 기업들이 이라크에 눈독을 들일 것이다. 그러나 이라크는 기반시설 투자 등 많은 국제원조가 절대 필요하다. 이 역시 유럽연합의 원조없이는 불가능하다.
     이라크 침략전쟁으로 미국과 유럽연합간의 관계가 악화됐지만 서서히 진정되고 있다. 또 조지 부시 대통령도 지난 5월 브뤼셀을 방문, 유럽연합의 역할 확대를 요구하며 미국과 유럽연합이 동맹자임을 강조했다.
     다음 호에서는 미국과 유럽연합간에 주요 갈등문제의 하나인 공동농업정책을 분석해보자.  
    안병억 케임브리지대학교 국제정치학과 박사과정 (anpy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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