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을 통해 본 유럽통합 (18)
사법과 내무분야의 협력 (Co-operation in Justice and Home Affairs)
지난 호에서는 유럽연합의 예산을 분석했다. 브뤼셀 정상회담의 예를 들면서 유럽연합 예산의 쟁점과 전망을 알아보았다. 이번에는 사법과 내부문야의 협력을 상술한다.
왜 주권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사법과 내부분야에서 회원국들이 협력을 해야만 하는가? 그 동안의 발전과정과 현황은?
현재 협력의 정도를 예를 들어본다. 영국과 독일 관계를 중심으로 유럽통합을 연구하는 필자는 2004년2월 폴란드 아우슈비츠를 방문했다. 독일 베를린에서 독일철도 (도이체반)를 타고 1시간반정도 가니 폴란드와의 국경도시 프랑크푸르트안데어오더 (오더강가의 도시로 금융도시 프랑크푸르트와 다름)에 도착했다. 기차가 20분 정도 정차했다. 정차중 폴란드와 독일 경찰, 그리고 세관요원이 함께 들어왔다. 독일과 폴란드인, 다른 유럽연합 시민들은 간단하게 여권만 점검했다. 그리고 비유럽연합 시민인 필자는 여권을 점검하고 도장을 찍었다. 폴란드 경찰은 어깨에 소형 단말기를 지참, 현장에서 필자의 입국사실을 기록했다. 폴란드 경찰이 사용하고 있는 소형 단말기는 유럽연합이 지원해준 물품이다. 폴란드 등 모두 9개 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독일은 위의 예에서 보듯이 국경감시를 폴란드와 함께 수행하고 있다. 두 나라 경찰과 세관이 함께 근무하며 정보를 공유한다. 사법과 내무분야의 협력을 보여주는 구체적인 사례이다.
우선, 이 분야의 주요 발전과정을 간략하게 정리한다.
1976년 6월: 트레비 그룹 첫 모임
1984년 7월: 프랑스-독일, 두 나라간의 국경통제 점차적으로 줄이기로 합의.
1985년 6월: 프랑스, 독일, 베네룩스 3국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국경개방에 관한 쉥엔협약 (Schengen Agreement) 합의.
1990년 6월: 쉥엔협약이행조약 체결 (국경개방에 관한 구체적인 조치를 담고 있음).
1992년 2월 유럽연합조약 (마스트리히트 조약): 사법과 내부분야 협력을 제3기둥 (The Third Pillar)에 두고 회원국과 집행위원회가 법안발의권을 공동행사하도록 규정.
1995년 3월; 쉥엔이행조약 시행에 들어감 (스페인, 포르투갈, 오스트리아, 그리스, 이태리, 덴마크, 스웨덴, 핀란드도 서명).
1997년 6월: 암스테르담 조약에서 비자, 난민, 이민정책을 제1기둥으로 이전하기로 합의. 또 쉥엔협약과 이행조약도 암스테르담 조약에 포함됨
(집행위원회가 법안을 제안하며 유럽법원의 관할권에 들어감. 이전에는 유럽법원의 관할권에 들지 않음)
2001년 12월: 공동체포영장 합의 (2004년 12월 시행에 들어감)
트레비 그룹 (Trevi Group)과 단일시장
지난 1970년대 이태리와 서독 등에서 테러가 빈번했다. 당시 붉은 여단이 이태리 총리를 살해하기도 했고 독일에서는 경영자단체 회장을 납치, 살해하기도 했다. 따라서 회원국들은 우선 테러에 공동대응하기 위해 비공식 모임을 열기 시작했다. 공동외교안보정책을 설명할 때 거론한 유럽정치협력 (EPC: European Political Co-operation)의 언저리에서 회원국의 내무와 법무장관과, 고위 공무원들이 모여 테러에 대한 공동대응책과 정보를 교환했다. 프랑스어의 첫 머리 (테러와 극단주의, 폭력)를 따 트레비 그룹이라고 불렸다. 이 그룹은 초기 유럽정치협력과 마찬가지로 어디까지나 집행위원회의 참여가 배제된 회원국간의 비공식협력이었다. 이어 협력사안이 테러에서 조직범죄, 그리고 축구 훌리건까지 확대되었다.
회원국간에 내부국경이 없는 단일시장을 이루면서 이 분야의 협력이 점차 강화되었다. 전회에 몇차례 설명했듯이 유럽연합 회원국간에는 상품과 서비스, 노동과 자본이 자유롭게 이동한다. 이 가운데 노동의 자유이동이 회원국에게는 때때로 골칫거리를 안겨주었다. 영국인이 독일이나 프랑스로 가서 정착하고 일을 할 수 있다. 당연히 영국에서 범죄를 저지른 영국인이 다른 회원국으로 도주, 살 수도 있다. 또 지중해를 끼고 있는 이태리나 포르투갈의 경우 모로코 등에서 아프리카 난민, 혹은 불법이민이 한 회원국으로 들어온다. 이어 난민을 신청하고 거절당하면 다른 회원국으로 옮겨 난민을 재신청한다. 과거 이런 사례가 많았다.
1986년 2월 회원국간에 단일유럽의정서 (SEA: Single European Act) 가 서명되었다. 회원국간에 1993년1월1일부터 국경통제가 없는 단일시장을 이루자는 내용이 골자이다. 이 조약이 서명될 당시 국경의 검문검색 폐지 등 여러가지가 합의됐다. 그러나 이를 다루는 기구로는 트레비 그룹의 활동을 강화하고 다른 관련 실무반을 설치했을 뿐이다.
이 조약이 서명되기 일년 반전인 1984년 6월 독일과 프랑스는 우선 두나라간의 국경통제를 점차 줄인다고 발표했다. 국경에서의 검문검색을 줄이고 혐의가 있거나 수상한 사람만 검문한다는 것이다. 당시 두 나라의 협력을 더욱 강화하기 위한 조치로 이런 발표를 했다. 이어 1년이 지나 독일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프랑스, 베네룩스 3국이 국경통제를 줄인다는 쉥엔조약에 합의했다. 5개국의 법을 고치고 합의를 하느라 구체적인 이행조약을 체결하는데 5년이 걸렸다.
이런 가운데 국경없는 내부시장 형성이 점차 가속화하면서 회원국들은 내무와 사법분야의 협력을 더욱 강화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1991년초 발생한 유고내전으로 수십만명의 난민이 유럽으로, 특히 독일로 몰려들었다. 당시 유럽공동체 회원국은 유럽연합조약을 체결하기 위한 협상을 벌이고 있었다.
마스트리히트 조약과 암스테르담 조약
40만명이 넘는 유고난민을 수용한 독일은 여러가지 어려움에 직면했다. 나치의 업보가 있기때문에 유럽공동체 회원국 가운데 상당히 자유로운 난민정책을 실시해왔다. 이 때문에 많은 난민이 독일로 왔다. 그러나 급속한 흡수통일 이후 정부재정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좀더 제한적인 난민정책을 실시하려 했다. 독일에서 법이 제정되려면 직선된 의원들로 구성된 하원-분데스탁-과 연방주 대표로 구성된 상원-분데스라트-을 통과해야 한다. 하지만 당시 분데스라트는 야당인 사민당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어 제한적인 난민정책을 반대했다. 따라서 독일 정부는 유럽공동체 차원에서 난민, 이민 정책을 공동정책으로 실시하자고 강력하게 요구했다. 즉 국내정치적인 제약때문에 실시가 어려운 정책을 유럽차원에서 도입하려 한 것이다. 그러나 섬나라 영국의 입장을 이와 상이했다. 섬나라이기 때문에 국경통제가 비교적 용이한 점, 그리고 좁은 섬나라에 난민이 몰려든다는 황색언론의 비난으로 영국정부는 난민과 이민 정책을 공동정책으로 채택하는 것에 반대했다. 덴마크 등도 이런 영국정부의 입장에 동조했다.
결국 1992년 2월 합의된 유럽연합조약 (마스트리히트조약)은 제한적인 난민.이민정책 등에 합의했다. 보통 공동정책이라면 행정부 역할을 하는 집행위원회만이 법안과 정책안을 발의할 수 있다. 또 유럽법원 (European Court of Justice)이 회원국 법이 유럽연합의 법과 규정 등을 위반했는지 판결을 내릴 수 있다. 그러나 난민,이민,비자 등의 정책은 제3기둥으로 회원국과 집행위원회가 공동으로 발의를 할 수 있었다. 또 유럽법원의 관할권 밖에 있게 됐다. 아주 제한적인 공동정책으로 채택이 된 것이다. 물론 그동안 공동체 밖에서 회원국 정부간 합의를 통해 이뤄지던 이런 정책이 제한적이나마 공동정책으로 채택되었다는 점에서 약간의 진전이다.
이어 1997년 서명된 암스테르담 조약은 비자와 난민, 이민정책이 조약 비준후 5년이 지나면 공동정책으로 이행된다고 규정했다. 따라서 현재 비자와 난민, 이민정책은 명실공히 공동정책이 됐다. 현재 우리나라 국민이 유럽연합 25개국을 여행할 경우 대개 3개월간 무비자로 관광할 수 있다. 유럽연합 회원국들이 비회원국 국민에 대해 공동비자정책을 실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통합이 진전될수록 이 분야의 협력은 진전될 수 밖에 없다. 특히 2004년 5월1일 중.동부유럽 10개국-체코, 폴란드, 헝가리,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발트3국, 키프로스, 몰타-이 유럽연합의 신규 회원국이 되면서 더욱더 그렇다. 영국은 다른 기존의 15개 회원국과 달리 신규 회원국 국민들이 자유롭게 이곳으로 와서 일할 수있게 했다. 지난해 11월 영국 런던시 경찰청이 동구권 인신매대단을 적발했다고 발표했다. 자유로운 이동에 따라 신규 회원국과 기존 회원국 경찰과 정보당국, 내무부간의 협력이 점점 더 필요함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9.11과 공동체포영장 (Common Arrest Warrant)
회원국간의 사법과 내무분야의 협력이 진전되면서 1990년대 말부터 공동체포영장이 논의됐다. 테러와 조직범죄,인신매매, 돈세탁 등 특정 분야의 심각한 범죄에 대해 한 회원국이 발부한 영장이 다른 회원국에도 그대로 통용된다. 지난 2001년 미국의 9.11테러이후 공동체포영장 도입은 급물살을 타면서 2001년 12월 도입이 합의됐다. 이어 각 회원국이 공동체포영장 도입을 위해 법개정 절차를 마친후 2004년 12월부터 이 영장이 통용된다.
지난해 7월 런던테러용의자 한 명이 이태리로 도주했다. 바로 이 공동체포영장을 통해 이 용의자는 불과 1달만에 런던으로 인도됐다. 공동체포영장의 도입이전 아무리 유럽연합 회원국이라도 범죄인 인도를 받기 위해서는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했다. 대사관과 외무부, 내무부 등을 통해 인도를 요청한다. 이어 인도요청서를 법관이 아닌 내무부나 외무부가 자국과 요청국의 외교관계를 고려, 정치적인 측면에서 판단하기가 일쑤였다. 그러나 공동체포영장은 한 회원국 법원이 발부한 영장을 다른 회원국이 그대로 인정해준다. 따라서 심각한 범죄를 저지르고 도주한 범인을 신속하게 체포, 인도가 가능하게 되었다.
물론 공동체포영장 도입에 대해 일부 인권단체는 인권침해를 들어 우려하고 있다. 용의자에 대한 신원과 다른 정보를 관련 회원국간에 공유해야 하기 때문이다.
통합이 진전될수록 사법과 내무분야의 협력이 진전될 수 밖에 없다. 단일시장을 이루자는 단일유럽의정서는 단순히 단일시장 형성에 그친 것이 아니라 난민과 이민, 범죄인에 대한 공동정책을 촉진시켰다.
다음 호에서는 유럽연합의 사회정책을 분석한다.
안병억 케임브리지대학교 국제정치학과 박사과정 (anpy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