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을 통해 본 유럽통합 (19)
사회정책 (Social Policy)
지난 호에서는 사법과 내무분야에서의 협력을 분석했다. 공동체포영장과 공동비자.이민정책을 설명하면서 이 분야의 발전과정을 살펴봤다. 이번에는 사회정책을 상술한다.
왜 통합과정에서 사회정책이 쟁점이 되었는가? 그 동안의 발전과정과 현황은 어떠한가?
우선 사회정책의 실례를 들어본다.
지난해 5월 유럽의회가 근로자의 주당 최고 근무시간을 48시간으로 규정하는 지침 (Directive)을 통과시켰다. 노동시장의 탄력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이유로 이 규정을 채택하지 않았던 영국과 몰타는 이 지침에 우려를 표명했다. 단순한 근무시간 논쟁이 아닌 경제운영에서 시장과 국가의 역할, 혹은 시장 대 규제논리를 볼 수 있는 한 대목이다.
우선 유럽의회가 통과시킨 근무시간 지침을 자세히 알아보자. 이전 지침은 근로자가 근로계약서를 작성할 때 48시간 초과근무를 선택할 수 있게 했다. 고용주는 48시간 넘게 일하지 않겠다는 근로자에 대해서 불이익을 줄 수 없었다. 그러나 새 지침은 3년 이내에 이런 탄력적인 탈퇴조항을 폐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근무시간을 1년 평균을 내, 일주에 48시간이 넘지 않도록 했으며, 최소 유급휴가가 1년에 4주, 24시간 중에서 야간근무시간을 8시간만 할 수 있게 했다. 근로자에게 충분한 휴식을 주고 그들의 인권을 보호하자는 내용이다. 기업임원은 이 규정에서 제외된다. 규제가 아닌 시장의 기능을 중시하는 경제철학을 채택하고 있는 영국은 이전 지침이 허용한 선택적 탈퇴 (opt-out) 규정을 빈번하게 이용했다. 근로자가 자율의사에 따라 일을 더하는 것을 막지 않겠다는 것이다.
반면에 국가개입 전통이 강한 프랑스나 자유주의 전통의 측면에서 사회시장경제를 강조하는 독일은 몇년전 까지만 해도 주당 35시간 근무가 관례이었다. 최근 경제불황으로 근무시간이 좀 더 탄력적이 되었다. 앵글로 색슨식의 경제모델에 반대하는 유럽식 사회모델은 짧은 근무시간이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고도의 복지혜택을 누리고 있는 대륙의 유럽인들에게 주말은 황금같은 휴식시간이다. 충분한 휴식이 있어야 노동생산성을 높인다. 또 국가가 의료보험과 실업급여 등 복지제공에 큰 역할을 수행해 왔다.
노동조합은 유럽의회의 새 지침을 크게 환영했다. 영국 노조의 한 관계자는 “48시간 초과 근무를 선택하지 않는 근로자들의 경우 비공식적으로 불이익을 받아왔다”며 “이 지침이 회원국에서 이행되면 근로자들의 권익보호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영국 정부나 고용주단체는 1% 정도의 저성장과 11%가 넘는 실업으로 곤경을 겪고 있는 독일과, 3%의 경제성장을 기록하고 있는 자국을 비교한다. 탄력적인 노동시장이 이런 경제성장을 가능하게 했다고 주장하며 이 지침이 실업을 증가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유럽연합 25개 회원국에서 왜 이런 문제가 쟁점이 되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통합과정에서 사회정책의 발전과정을 알아보자.
사회정책과 단일시장
사회정책은 노동법과 근로기준, 직업교육 등 여러가지를 포함하는 용어이다. 각 회원국이 이 분야에서 협조를 강화하고 부분적으로 공동정책을 취하는 것을 의미한다.
1958년 유럽경제공동체가 출범한 이후 경제통합이 진전돼왔다. 경제통합은 우선 상품과 서비스, 노동과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목표로 했다. 이 가운데 상품과 서비스는 회원국간에 관세없이 수출입이 가능했다. 그러나 노동과 자본의 경우 자유로운 이동에는 여러가지 문제점이 수반됐다. 예컨대 한 회원국의 실업률이 높고 다른 회원국은 낮다. 또 실업률이 낮은 국가의 임금도 높고 복지수준도 좋다. 노동자들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면 당연히 일자리를 얻을 수 있고 복지수준도 높은 다른 회원국으로 옮겨 이곳에서 일을 할 것이다. 이럴경우 실업이 다른 나라로 수출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당연히 실업률이 낮은 국가는 각종 법이나 지침을 지정, 노동자들의 자유이동을 저지하려고 할 것이다.
경제공동체 출범부터 1986년 단일시장 형성을 목표로 하는 단일유럽의정서가 채택되기전까지 유럽공동체의 사회정책은 미비했다. 경제공동체를 설립하는 로마조약은 고용과 높은 생활수준 보장을 목표로 한다고 규정했을 뿐 이 분야에 대한 공동체의 정책개입을 명문화하지 않았다.
그러나 단일유럽의정서는 사회정책에 대한 공동체 개입을 좀 더 명문화했다. 1993년 1월1일부터 각 회원국간에 상품과 서비스, 노동과 자본이 자유롭게 이동한다. 이럴경우 가난한 나라는 각 종 세제혜택과 보조금을 주어 다국적기업을 유치하려고 한다. 또 이들 회원국의 임금이 싸기 때문에 다국적기업들도 이런 곳으로 공장을 옮긴다. 이런 사회적 덤핑 (social dumping)을 막기위해 부자 회원국이던 독일 등의 노조가 공동체 각 회원국간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최소한의 근로기준을 정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또 당시 자크 들로르 집행위원회 위원장도 이 문제의 중요성을 감안, 공동체의 정책관여를 확충하려고 했다. 문제는 무엇이 최소기준인가 하는 점이었다.
당시 영국의 마가렛 대처 총리는 몇차례의 입법을 통해 노조의 권한을 상당히 제한했다. 그런데 공동체 차원에서 노조에게 조금이라도 이런 권한을 늘릴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또 시장을 중시하는 앵글로 색슨 자본주의에서 이런 공동체의 규제가 중소기업주에 너무 많은 부담을 준다며 공동체의 개입을 강력 반대했다. 반면에 영국보다 더 높은 복지수준을 누리고 있고 노조를 한 사회적 파트너로 간주했던 독일은 자신들의 높은 사회정책이 희석되는 것을 우려했다. 즉 서로 다른 기준과 법규를 지난 각 회원국의 사회정책에서 최소한의 규정을 찾다보면 많은 경우 최소공배수의 규정이 만들어 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양측의 이런 입장은 타협점을 찾았다. 단일유럽의정서는 높은 사회정책을 실시하고 있는 국가는 이를 유지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반면에 근로자의 건강과 안전, 그리고 유럽차원에서의 노사대화 등을 집행위원회가 권고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최소한의 규정이지만 사회복지가 높은 국가는 기존 정책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단일시장 형성이 진전되고 사회적 덤핑을 우려하는 노조의 목소리가 거세졌다. 또 자크 들로르 집행위원장도 단일시장 형성이라는 기치를 내걸어 회원국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기 때문에 이를 완수하기 위해서는 아울러 사회정책의 진전도 필요하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이에따라 1989년 12월 프랑스의 스트라스부르에서 열린 유럽정상회담에서 <노동자 기본사회권 헌장 (The Charter on the Fundamental Social Rights of Workers)>이 채택됐다. 노동자의 권익을 보장하고 생활수준을 보장해준다. 이를 위해 집행위원회가 구체적인 입법안을 제출하도록 규정했다. 즉 이제까지 근로자 건강과 안전 등 좁은 범위에서 실시된 공동체 차원의 사회정책을 크게 확충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당시 마가렛 대처 총리는 이런 유럽차원의 규제에 반대하며 고용창출이 우선이라는 논리를 폈다. 또 이 헌장을 ‘사회주의 헌장’이라고 직설적으로 표현하며 당시 12개 회원국 가운데 유일하게 이 헌장의 채택을 반대했다.
영국의 선택적 탈퇴 (opt-out)와 마스트리히트 조약 이후
1992년 2월 채택된 유럽연합조약 (일명 마스트리히트 조약)은 이런 기존의 움직임을 포괄적으로 규정했다. 근로자의 안전과 건강, 근로조건 등 권고사항을 회원국간에 다수결로 규정할 수 있게 했다. 유럽공동체 (마스트리히트 조약 비준이후 유럽연합)가 사회정책에 많은 부분 관여할 수 있게 되었다.
영국의 존메이저 총리는 이런 규정이 정식 조약으로 채택되는 것을 강력하게 거부했다. 당시 많은 보수당 의원들은 유럽공동체가 사회정책조차 관여하는 것을 허용할 경우 영국의 산업경쟁력이 저하될 것을 우려했다. 무엇보다도 탄력적인 노동시장의 특징인데가 노조의 힘을 약화시켰는데 유럽공동체의 관여는 이를 되돌리는 조치로 간주됐기 때문이다. 또 국가와 시장의 관계에 대해 근본적인 시각차가 있었기 때문에 이데올로기적인 측면에서도 공동체의 관여를 혐오했다. 따라서 1991년 12월 열린 마스트리히트 정상회담에서 존 메이저는 회담결렬을 불사하고서라도 이런 사회정책이 공동체 조약에 포함되는 것을 거부했다. 결국 회담의 성공을 원하던 11개 회원국은 사회정책을 본조약밖의 의정서 (Social Protocol)에 포함시켰다. 이 의정서에 서명한 11개 회원국에서는 이런 사회정책이 상당부분 다수결로 채택되어 실행된다. 그러나 영국은 이 의정서에서 탈퇴했기 때문에 (선택적 탈퇴)이런 규정을 지키지 않아도 되었다.
1994년 영국은 이런 선택적 탈퇴조항을 처음으로 이용했다. 당시 집행위원회는 근로자평의회와 산모휴가를 근로자의 건강문제와 관련이 있다는 법적조항을 이용, 가중다수결로 채택을 권고했다. 그러나 영국은 이 문제가 근로자의 건강문제가 아닌 근로조건 등의 문제라며 이런 문제에서 선택적으로 탈퇴했기 때문에 11개 회원국에만 적용해야 한다고 버티었다. 결국 사회의정서를 서명한 11개 회원국만이 근로자평의회와 산모휴가를 유럽차원에서 법적으로 채택했다.
토니 블레어와 사회정책
1997년 5월 집권한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 총리는 선택적 탈퇴조항을 포기하고 사회의정서에 가입했다. 1994년 당시 야당인 노동당의 당수로 취임한 이후 집권 보수당이 유럽연합의 사회정책을 실행하지 않음으로써 이런 문제에 영국의 영향력이 감소됨을 비판했다. 또 노동당이 보수당보다는 그래도 노조의 영향력이 강한 정당이기 때문에 사회정책을 수용할 수 있었다.
이에따라 1997년 서명된 암스테르담 조약은 마스트리히트 조약의 밖에 사회의정서 형태로 채택된 사회정책을 조약으로 명시했다. 유럽연합차원의 사회정책이 더 진전되게 되었다. 또 회원국이 이런 정책을 위반할 경우 집행위원회가 위반국에 1차로 경고하고 문제가 시정되지 않으면 유럽법원에 제소한다.
그러나 이런 조약에도 불구하고 각 회원국간에 복지수준이 상이하고 국가와 시장간의 관계를 보는 시각이 오랜 역사적 전통에 따라 형성됐다. 이 때문에 유럽연합 차원의 사회정책은 아직도 그리 많이 진전되지 못했다. 또 2004년 5월1일 중.동부 유럽의 10개국이 신규 회원국으로 유럽연합에 가입했다. 이들 국가는 공산권 붕괴이후 중앙집권식 경제에서 시장경제로 전환중인 나라들이다. 기존 회원국과 신규 회원국간에 복지수준과 시각차이가 더 커졌다. 룩셈부르크와 에스토니아의 1인당 국민총생산을 비교하면 룩셈부르크가 6배가 많다.
사회복지와 노동자 보호, 근로계약이 종료된 노동자의 보호, 비유럽연합 시민의 고용 등의 문제는 아직도 회원국들이 만장일치를 해야 유럽연합차원에서 정책을 실시할 수 있다. 또 근로자의 임금과 노조결성, 파업권은 아직 유럽연합 차원에서 다루지 못하고 있다.
통합이 진전되면서 회원국간에 사회정책에서 어느 정도 보조를 맞추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따라서 일부는 유럽연합 차원에서 공동정책을 실시해 오고 있다. 그러나 회원국간의 경제운영 철학과 모델이 다르고 중.동부 유럽 10개국이 추가로 회원으로 가입함에 따라 사회정책은 수렴되기 보다 시각과 정책차이가 더 드러나고 있다.
다음 호에서는 유럽연합의 경쟁정책을 분석한다.
안병억 케임브리지대학교 국제정치학과 박사과정 (anpy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