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을 통해 본 유럽통합 (20)

by eunews posted May 30,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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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을 통해 본 유럽통합 (20)
   경쟁정책 (Competition Policy)

       지난 호에서는 사회정책을 분석했다. 통합의 진전에 따라 회원국에게 모두 적용되는 근로자 보호조항 등을 살펴봤다. 이번에는 집행위원회가 막강한 권한을 보유하고  있는 경쟁정책을 자세히 설명한다.

       왜 통합과정에서 경쟁정책이 대두했는가? 현재 집행위원회가 보유한 권한은 어느정도인가?
       우선 영국의 프리미어리그와 집행위원회의 분쟁사례를 보면 경쟁정책의 일단을 볼수 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지난해 11월 중순 영국 프리미어리그와 오는 2007년부터 특정 1개 방송사에만 축구 경기 중계권을 독점 판매하지 않기로 잠정 합의했다.
       집행위원회는 2002년부터 이 문제를 조사해왔다. 프리미어 리그가 가장 인기있는 축구 중계권을 ‘미디어왕’이라고 불리는 루퍼트 머독이 운영하는 위성채널 BSkyB과 13년간 독점 계약했기 때문이다.
       한 방송사와 독점계약할 경우 이 방송사는 보통 천문학적 액수의 중계료를 지불한다. 이어 중계권을 재판매할 경우 영국내 방송사뿐만이 아니라 유럽 각국의 방송사, 다른 나라의 방송사에도 무리한 액수를 요구해 왔다. 따라서 이 중계권 문제는 단순히 영국뿐만 아니라 유럽연합 내 다른 회원국-독일과 프랑스, 베네룩스 3국은 물론 폴란드  신규 회원국-에도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문제이다. 이렇기 때문에 집행위원회 산하의 경쟁담당 총국이 이 문제에 메스를 가했다.
       방송중계권이 머독의 독점에서 다른 방송사와 나누어 지면 두 방송사가 이를 재판매하려고 경쟁하게 되고 당연히 판매료도 낮아진다. 결국 중계권 독점 철폐가 방송사, 나아가 시청자에게도 이득이 된다.
       프리미어리그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아스날 등 유명 클럽들이 소속돼 유럽 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우리나라의 이영표, 박지성 선수도 프리미어리그에 속하는 클럽에서 활동하고 있다.        

                                      경쟁정책과 단일시장

       경쟁정책은 1986년 2월 단일유럽의정서가 서명되면서 그 중요성이 대두됐다. 1993년1월1일부터 회원국간에 상품과 서비스뿐만이 아니라 노동과 자본이 자유롭게 이동하는 단일시장 형성이 이 의정서의 목표이었다.        
       당시 유럽내 대기업은 이런 조치를 크게 환영했다. 굴지의 대기업들은 이뿐만이 아니라 80년대초 집행위원회에 단일시장 형성의 필요함을 수차례 역설하며 집행위원회와 정기적인 모임을 가졌다. 일본이나 미국의 대기업과 비교, 당시 유럽의 대기업들은 수익률도 저조했다. 일본이나 미국의 대기업은 거대한 국내시장에서 자유롭게 영업을 하며 이익을 올렸다. 그러나 유럽에 본부를 둔 기업들은 다른 회원국에서 제품을 판매하려고 해도 여러가지 장애물에 직면했다. 예컨대 영국에서 제품을 생산, 독일이나 프랑스로 수출한다고 가정해보자. 제품이 이들 회원국에 도착하면 각 종 통관절차를 밟게 된다. 또 이들 나라가 다양한 기술표준과 규격을 요구, 당시 유럽공동체 시장은 분할되고 수십종의 보이지 않는 비관세 장벽에 가로막혀 있었다.
       따라서 단일유럽의정서에 서명한후 각 종 비관세 장벽을 제거하기 위한 조치가 차례대로 이행되었다. 통관절차도 대폭 간소화됐고 유럽 각국이 합의한 최소한의 기술표준을 통과한 제품은 다른 회원국에서도 별도의 표준을 통과할 필요가 없이 판매가 가능하게 됐다.
       당연히 이런 거대 단일시장을 이용하기 위한 기업간의 인수.합병도 활발해졌다. 제약회사의 경우 수십개 회사가 경쟁을 하다가 몇개의 덩치 큰 기업이 소규모 회사를 인수.합병했다. 다른 제조업 분야도 비슷했다. 특정 기업이 독점적 지위를 활용한 횡포, 기업합병에 따르는 부작용, 기업간 담합 이 중요 문제로 대두했다.
       이런 문제는 특정 회원국에게만 한정되지 않았다. 유럽공동체 회원국이 하나의 시장으로 통합되니 다른 회원국에게도 그 여파가 직접 전달됐다. 따라서 공동체 차원에서 행정부 역할을 하며 조약이나 규정의 준수여부를 감독하는 집행위원회가 경쟁정책의 주요한 이행자.감독자로서 역할을 확대할 수 밖에 없었다.

                           인수.합병과 우월적 지위 남용의 제한
       경쟁정책은 우리나라의 공정거래위원회가 대기업의 내부거래와 부당거래를 조사, 과징금을 메기는 것과 비교하면 쉽게 이해가 된다. 시장이 원활하게 기능하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손’만으로는 부족하고 시장에 참가하는 기업이 공정한 경쟁을 하도록 규칙을 만들고 이를 감독.조사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25개국이나 되는 모든 회원국 기업을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일일이 감독하고 조사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또 그럴 필요도 없다. 따라서 경쟁정책은 집행위원회와 회원국 정부의 관련 기구가 나누어 행사하고 있다. 즉 여러 회원국에 영향을 미치는 인수.합병이거나 일정 규모이상의 거래일 경우에만 집행위원회가 이를 심사한다.
       구체적으로 보면
첫째, 인수.합병 기업의 전세계 연간 평균 매출액이 평균 50억유로 (우리돈으로 약 6조원 정도)이며,
둘째, 인수.합병에 관련된 기업가운데 최소한 2개 기업의 유럽연합 연간 평균 매출액이 2억5천만유로이며,
셋째, 인수.합병에 관련된 기업가운데 최소한 1개 기업이 연간 평균 매출액의 2/3이하를 한 회원국에서 기록해야 한다 (즉 2개 회원국 이상에 매출액이 분산되어야 한다. 여러 회원국에 영향을 미쳐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조건을 모두 충족시키는 기업의 인수.합병일 경우 집행위원회가 이를 심사, 인수.합병을 허용하거나 거부한다. 또 조건부 허용도 내린다. 이런 조건을 충족해야 인수.합병을 허용한다는 의미이다.
       규정에 따르면 관련 기업이 집행위원회 경쟁담당 총국에 인수.합병 승인 요청서를 제출한다. 집행위원회의 최종 결정을 무시하는 기업은 연간 매출액의 10%를 과징금으로 지불해야 한다. 거대 기업의 연간 매출액이 보통 몇 조원이 넘기 때문에 10%과징금은 몇백억원에서 몇천억원이 될 수 있다.물론 관련 기업은 집행위원회의 이런 결정을 유럽법원에 항소할 수 있다.
       집행위원회가 인수.합병을 결정하는데 기준이 되는 사항은 인수.합병이 기업의 우월적 지위를 공고히해 소비자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를 위해 그 시장의 구조, 경쟁정도, 시장의 진입정도 등 여러가지 요소를 철저하게 점검한다.
       지난 1994년 초 독일의 미디어재벌 베텔스만 (Bertelsmann), 키르히그룹 (Kirch Group), 그리고 통신회사 도이체텔레콤 (Deutsche Telekom)이 MSG 미디어서비스라는 유로텔레비전 (pay-TV)과 케이블망 관리회사를 설립한다며 집행위원회에 승인을 요청했다. 집행위원회는 이 인수.합병이 유로텔레비전과 케이블망 시장에서 업체의 독점적 지위를 강화한다며 이 인수.합병안을 거부했다. 또 글 첫머리에서 언급한 프리미어리그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집행위원회와 당사자가 적절한 타협안을 찾았다. 만약에 프리미어리그가 집행위원회의 권고안을 따르지 않았을 경우 엄청난 벌금을 물어야했을  터이고 중계권 문제가 계속  현안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국가보조금과 통신, 전력 등 중요산업
       집행위원회가 회원국의 경쟁정책과 다른 점은 25개 회원국이 자국 산업에 제공하는 각 종 보조금이 경쟁여건을 왜곡시키는 지를 감시한다는 점에 있다. 회원국에서 공정거래여부를 감독하는 기구는 그 나라 기업의 독점, 경쟁왜곡여부를 감독하고 시정을 요구한다. 만약에 집행위원회가 각 회원국의 보조금이 경쟁을 왜곡시키는 구조 등을 조사할 수 없다면 단일시장은 제대로 작동할 수 없을 것이다.
       회원국이 공정한 규칙의 틀안에서 상품과 서비스, 노동과 자본이 자유롭게 이동하는 여건을 만들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몇가지 예를 들어본다.
       1990년 10월3일 독일이 통일되었다. 동독에 있는 5개주가 서독의 한 주로 편입된 흡수통합이었다. 당시 동독의 5개주는 서독의 각 주와 비교, 상당한 경제적 격차가 났다. 당연히 서독정부는 신규 5개주에 많은 경제적 지원을 제공해야 했다. 도로건설과 전력, 철도 등의 사회기반시설에 대한 지원은 물론이고 구동독의 노후화된 산업에 대한 지원도 일부 포함됐다. 당연히 집행위원회가 이런 지원이 공정경쟁을 위반하는지의 여부를 심사했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본다면 아직도 조달시장에서는 각 종 보이지않는 장벽이 존재, 단일시장이 형성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2004년 11월말 영국 재무부는 각 회원국의 조달시장에 관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회원국은 다른 나라 기업에도 법적으로 조달시장 입찰참여를 보장했다. 문제는 조달공고를 제때 여러나라에 게재하지 않는다던지, 아니면 자국 기업이 아닌 다른 회원국의 기업은 구색맞추기로 끼워넣는다던지 하는 관행은 아직도 여전했다. 이런 보이지 않는 장벽을 제거하고 공정경쟁을 촉진하기 위해 아직도 할 일이 많다.
       또 하나 각 회원국에 아직도 합의를 보지 못한 점이 통신과 전력, 가스 등 주요산업에 대한 규제완화이다. 프랑스와 독일 등 대륙의 상당수 나라들의 경우 이들  산업은 국가가 아직도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영국은 이런 시장이 거의 완전개방되어 있다. 최근 독일 에너지 기업 에온이 스코틀랜드의 가스공급자를 인수할 수 있었던 것은 시장이 개방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대로 영국 기업은 독일의 가스나 통신사업 참여가 아주 제한되어 있다. 독일 정부가 법적으로 이런 산업은 아직도 개방을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국가개입의 전통이 강한 프랑스는 이 문제를 앵글로색슨식의 시장개방주의에 대한 프랑스식 국가개입의 전통 문제로 부각된다. 그만큼 프랑스는 이런 시장의 개방을 계속 반대해왔다. 따라서 아직도 이 문제는 회원국간에 시장개방의 정도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미해결 문제로 남아있다.
        다음 호에서는 공동무역정책을 분석한다.
  안병억 케임브리지대학교 국제정치학과 박사과정 (anpy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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