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을 통해 본 유럽통합 (21)
공동무역정책 (Common Trade Policy)
지난 호에서는 경쟁정책을 분석했다. 단일시장에서 공정한 게임을 하기위한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집행위원회가 경쟁정책에서 행사하고 있는 권한을 살펴봤다. 이번에는 공동무역정책을 설명한다.
왜 회원국들이 상당한 무역정책 권한을 집행위원회에게 부여했는가? 회원국과 집행위원회간의 협력과 갈등은 어느 정도인가?
우선 무역정책의 실례를 들어본다.
우리나라와 유럽연합 (EU)은 조선산업 보조금 문제를 두고 통상분쟁을 겪었다. 1999년 외환위기이후 채권은행인 수출입은행은 국내 조선산업에 대해 제작금융과 선수금 환급보증의 명목으로 금융지원을 했다. 유럽연합은 이 지원이 정부의 특정한 산업에 대한 금융지원으로 세계무역기구 (WTO: World Trade Organisation)가 허용한 보조금의 범위를 벗어났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수차례 양측이 민관합동으로 분쟁해결을 시도했으나 결렬돼, 세계무역기구의 분쟁해결기구에 제기되었다.
또 반도체 보조금 지급과 자동차 무역불균형 문제도 우리나라와 유럽연합간의 통상분쟁 사안이었다.
눈을 다른 곳으로 돌려보면 이런 사례는 많다. 지난해 9월초 중국과 유럽연합간에 섬유분쟁이 격렬하게 진행되었다. 유럽연합은 자유무역을 표방하고 있다. 그러나 값싼 중국산 섬유류가 유럽으로 밀려 들어오자 중국과 연간 수출허용량 (쿼터)에 합의했다. 이 쿼터를 어기고 많은 물량이 유럽으로 수입되자 이의 통관을 저지했다.
지난해 12월 중순 홍콩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의 각료회담에서도 유럽연합은 집행위원회 대외통상담당 위원인 피터 만델슨을 보내, 세계 최대의 경제블록으로서 미국, 일본, 그리고 개도국들과 협상을 했다. 위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유럽연합은 세계 최대의 경제권으로 경제이익을 지키며 단일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통합 과정에서 공동무역정책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와 현황을 살펴보자.
관세동맹과 단일시장, 공동무역정책
1957년 유럽경제공동체 (EEC)가 설립되었다. 회원국간에 관세동맹 형성이 일차적 목표이었고 이어 단일시장을 형성을 추구했다. 경제통합의 단계를 간단하게 설명하면 처음은 자유무역지대이다. 국가끼리 자유무역지대를 결성, 관세를 아주 낮추거나 내지않고 무역을 한다. 관세동맹은 이 단계를 지나 회원국들이 비회원국에 대해 공동대외관세 (Common External Tariff, Common Customs Tariff)를 메긴다. 즉 자유무역지대를 결성, 회원국끼리의 교역에서 관세가 없다보니 교역이 활발해진다. 이에따라 비회원국으로부터 회원국으로 수입되는 물품에 대해 공동의 단일한 관세율을 부과한다. 이 때문에 회원국은 관세정책에서 자율성을 잃고 공동정책을 취하게 된다. 이 단계에서 행정부 역할을 하는 집행위원회 (The Commission)가 회원국을 대표, 비회원국과 관세율 관련 협상을 하고 무역협정을 체결한다. 또 비회원국의 저가 상품이 회원국으로 범람, 회원국의 산업을 교란시켰을 경우 반덤핑관련 조사를 실시, 덤핑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상계관세를 메긴다.
정책결정과정은 다음과 같다. 우선 집행위원회가 관세율, 무역협정 관련 제안을 회원국 장관들의 모임인 각료이사회 (The Council of Ministers)에 제출한다. 각 회원국은 이 제안을 검토, 가중다수결로 집행위원회에 협상을 하도록 권고한다. 또 협상목표와 협상지침도 내린다. 또 중요한 협상이 계속되는 동안 회원국들의 관련 고위공무원들이 이른바 `133조위원회’ (공동무역정책을 규정한 유럽연합조약 조항을 지칭) 를 구성, 집행위원회으로부터 협상의 경과를 보고받고 수시로 지침을 내린다. 집행위원회는 이 범위내에서 협상을 진행하고 각료이사회에 수시로 보고한다. 회원국 모두에게, 혹은 특정 회원국에게 민감한 문제의 경우-예컨대 프랑스는 농업보조금 삭감에 강경하게 반대해왔다-회원국간에 갈등도 빈번하다. 또 회원국과 집행위원회도 협상지침 위반여부를 두고 논쟁도 벌인다. 처음에 예를 든 집행위원회 대외통상담당 위원이 세계무역기구에 유럽연합 대표로 참여, 통상협정을 한 것도 이같은 정책결정과정을 거쳤다.
관세동맹, 그리고 상품과 서비스뿐만이 아니라 노동과 자본도 자유롭게 이동하는 단일시장은 당연히 공동무역정책을 필요로 한다. 회원국이 경제블록을 형성하는 이유는 관세가 없고 자유로운 무역을 통해 경제적 이득을 얻기 위해서이다. 또 대외적으로 하나의 강력한 경제블록을 형성, 국제무대에서 대외협상력을 높일 수 있다. 따라서 집행위원회 위원장 혹은 대외통상담당위원은 세계무역기구 뿐만이 아니라 국제연합 (UN)이 수시로 개최하는 무역관련 회의, 선진국들의 모임인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 서방선진 8개국 모임인 (G-8)에도 참석한다.
특히 1986년 단일유럽의정서를 체결, 단일시장 형성을 목표로 회원국간의 비관세장벽을 제거해 나가면서 유럽은 무역자유화에서 어느정도 시범을 보였다. 당시 미국과 일본 등 유럽의 주요 교역상대국은 유럽이 단일시장을 형성하면서 ‘유럽이라는 요새’ (Fortress Europe)를 만들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그러나 유럽은 열린 시장을 강조하면서, 비회원국가의 교역관계도 차별을 두지않음을 누차 강조하고 또 무역자유화를 목표로 하는 정책을 실시했다.
무역장벽규정 (Trade Barriers Regulation)과 일반특혜관세 (GSP: Generalised System of Preferences)
비교를 한다면 대외통상의 경우 집행위원회는 미국의 무역대표부 (USTR: US Trade Representative)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 불공정 무역을 하는 국가에 대해 시정을 권고하고 협상을 하며 공세적인 조치도 취한다. 1995년부터 시행중인 무역장벽규정은 유럽연합이 행사하고 있는 공세적 무역정책수단이다.
회원국 정부와 기업, 산업이 피해사실을 집행위원회에 전달한다. 상품뿐만 아니라 서비스, 지적재산권까지 포함한다. 집행위원회는 조사를 벌여, 제3국이 불공정한 무역과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고 판단할 경우 여러가지 조치를 취할 수 있다. 기존에 합의한 유리한 무역조건을 중지하거나 철회할 수 있다. 또 유럽연합으로 수입되는 제품에 대해 관세를 인상하거나 수입쿼터도 부과할 수 있다.
위에서 예로 든 우리나라 조선산업과의 분쟁의 경우 집행위원회는 이 무역장벽규정을 적용, 조사와 협상을 해왔다.
강자가 자신의 규칙을 적용시키고 전파하려고 하는 것이 무역장벽규정이라면 일반특혜관세는 개도국과 빈국을 지원해주는 조치이다.
개도국과 빈국이 유럽연합으로 상품을 수출할 경우 사안별로 무관세, 혹은 저관세를 제공, 수출을 용이하게 해준다. 물론 섬유제품의 경우 민감한 부문이라 일반관세특혜율이 다른 제품과 비교, 그다지 높지 않다.
우리나라와 홍콩, 싱가포르는 과거 수십년간 일반특혜관세의 적용을 받다가 지난 1998년 수혜대상에서 제외되었다. 경제가 발전하고 개도국의 지위를 벗어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유럽연합은 특히 일반특혜관세 부여를 대상국의 정책과 연계시킨다. 볼리비아, 콜럼비아 등은 마약생산과 거래퇴치에 적극적인 정책을 실시했다는 이유로 특혜를 부여받았다. 단순히 특혜를 주는 것에서 벗어나 특혜부여를 당근으로 활용, 개도국과 빈국의 개발촉진을 유인하는 셈이다.
집행위원회와 회원국의 갈등: 서비스와 지적재산권
세계무역기구 (WTO)가 1995년 1월 출범했다. 2차대전 이후 국제무역질서를 새롭게 규정하려 한 관세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가트, GATT)를 계승하고 업무범위를 넓혔다. 가트는 주로 상품교역에 관해 회원국들의 관세와 비관세장벽을 철폐하고자 1960년대 케네디 라운드 (다자간 무역협상을 라운드라고 부름), 1970년대 도쿄 라운드, 1980년대 우루과이 라운드 등 수많은 협상을 벌였다. 이에 따라 국제무역에서 많은 상품의 관세가 낮아지고 비관세장벽도 제거되었다. 그러나 국제교역에서 상품이 차지하는 비율이 점차 낮아지고 서비스와 지적재산권 등의 교역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세계무역기구는 각 종 서비스와 지적재산권, 농산물 등 가트가 다루지 못한 것을 새롭게 의제로 규정, 다자간 협상 체결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 분쟁조정기구의 권한도 강화, 회원국들이 협상을 통해 합의에 이르지 못해 제소할 경우 이를 판결한다.
이처럼 서비스와 지적재산권이 국제무역의 새로운 의제로 등장하자 집행위원회는 당연히 이런 협상도 자신이 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외협상이기 때문에 개별 회원국이 협상을 하는 것보다 집행위원회가 권한을 위임받아 협상을 하는 것이 협상력을 높일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회원국들은 이런 새로운 분야에서 조차 집행위원회가 권한을 행사하는 것을 탐탐치 않게 여겼다.
결국 집행위원회는 1995년 이 권한을 누가 행사하는 것이 올바른가에 관해 유럽법원 (ECJ: European Court of Justice)에 의견을 구했다. 유럽법원은 유럽연합의 한 기구로 주로 통합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판결을 내려온 것이 관례였다. 따라서 집행위원회는 당연히 법원이 자신의 손을 들어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법원은 이 분야에 대해 다소 모호한 결정을 내렸다. 즉 서비스와 지적재산권 가운데 국경을 통과하여 공급되는 서비스는 공동무역정책의 범위이다. 그러나 회원국내에서 이뤄지는 금융서비스-금융기관이 지사나 현지법인 설치 등-는 다른 유럽연합 조약의 적용을 받는다는 것이다.
지난 2001년 니스조약은 집행위원회가 서비스와 지적재산권 분야에서도 대외협상에서는 회원국을 대표, 협상한다고 규정했다. 따라서 집행위원회는 세계무역기구의 도하개발어젠더 (Doha Development Agenda: DDA)에 대표로 참여해왔다.
도하개발어젠더는 지난 2001년 11월14일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제4차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에서 새로이 출범시킨 다자간 무역 협상이다. 이전에 불렸던 ‘라운드’라는 이름이 개도국에게 좋지 않은 인상을 주어 이름을 어젠더로 변경했다. 2002년부터 3년간 뉴라운드 협상을 진행, 2005년 1월1일까지 종료키로 합의된 상태이다. DDA의 협상방식은 모든 분야의 협상결과를 모든 회원국들이 일괄적으로 수락하는 일괄타결 방식(모든 분야에 대한 협상을 동시에 개시하고 진행하여 동시에 종료하는 것)으로 진행된다. 이 도하개발어젠다 가운데 핵심쟁점사항의 하나가 농업수출보조금과 수입관세의 축소이다.
글의 첫머리에서 설명했듯이 이를 논의하기 위해 홍콩에서 열린 각료회의에서 별다른 합의를 이루어 내지 못했다. 선진국간에-미국과 유럽연합간에 농산물 수출보조금 축소의 범위-그리고 선진국과 개도국간에 입장차이가 워낙 컸기 때문이다.
이전호에서 공동무역정책을 설명할 때 언급했듯이 유럽연합의 농업보조금 정책은 자유무역을 왜곡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미국과 개도국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아왔다.
다음 호에서는 공동무역정책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유럽연합의 공공개발원조정책을 분석한다.
안병억 케임브리지대학교 국제정치학과 박사과정 (anpy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