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행어사가 어느 고을에 와서 용한 점쟁이가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점쟁이라! 혹시 백성을 속여 먹고사는 놈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어 그 점쟁이 집에 갔다. 그는 어느 사람에게 점을 치고 있었다. “건너편 장가(張家)마을에서 오셨지요?” “네” “아들이 아파서 오신 거죠?” “아, 네. 어떻게 그걸?” “의원에게 가서 약 좀 지어먹으면 별 일 없는 거니 걱정 마세요.” “아이쿠, 감사합니다!” 사내는 복채 두 닢을 놓고 갔다. 어사가 점쟁이에게 물었다. “어떻게 건너편 장가 마을에서 온 사람인 줄 알았소?” “그거야, 도롱이를 썼지만 옷이 젖은 걸 보니 비가 들친 거 아니요. 그러니까 건너편 장가 마을에서 온 사람이지요.” “아들이 아파서 온 건 어떻게?” “그거야, 비 오는 날 뛰어온 걸 보면 아들 문제가 아니면 또 뭐겠수!” “별 일 없는 거라는 건요?” “아, 제 자식은 좀 체하기만 해도 어쩔 줄 몰라 하는 게 부모 마음이잖소.” “그렇군요!” 어사는 탄복을 했다. “그러면 제 사주를 좀 봐주시겠소?” 어사의 말에 점쟁이는 글자를 적은 종이 묶음을 내밀었다. “이 중에서 한자(漢子)를 하나 잡아 보슈.” 어사는 한자를 죽 보다가 점 복(卜)자를 잡았다. 점쟁이는 어사 위아래를 훑어보며 골똘히 생각하다가 갑자기 그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아이쿠, 어사또 나리가 여긴 어인 일로!” 어사는 깜짝 놀랐다. 이건 족집게도 보통 족집게가 아니었다. “아닙니다, 과객일 뿐입니다.” “제 눈은 못 속입니다. 어사또 나리가 틀림없습니다.” 몇 번을 실갱이 하다가 어사가 그걸 어떻게 알았냐고 물었다. “그거야 나리가 점 복(卜)자를 잡았기 때문에 안 거죠. 복(卜)자는 사람한테 쇠붙이가 하나 달려있는 글자인데, 그 쇠붙이가 마패 아니고 뭐겠습니까?” 기가 막혔다. 어사는 황급히 나갔다. 그래도 우연의 일치일 수 있겠다 싶어서 거지 한 사람을 불러 선비 행색을 꾸몄다. 목욕하고 갓 씌우고 두루마기를 입혀서 할 일을 가르쳤다. ‘그 점쟁이 집에 가서 이리이리 말하고 책을 주거든 점 복(卜)자를 잡으라’고. 거지가 점쟁이 집에 가서 사주를 봐 달라며 역시 점 복(卜)자를 잡았다. 점쟁이가 잘 차려입은 거지의 위아래를 훑어보더니,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 거지가, 어딜 빌어먹을 데가 없어 여기 왔어!” 그러면서 몽둥이를 찾는 게 아닌가. “당장 안 꺼지면 맞아죽을 줄 알라”며 화를 내자, 거지는 부랴부랴 도망쳐 나갔다. 밖에서 기다리던 어사가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라 했다. 거지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깜짝 놀랐다.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어사가 후에 그 점쟁이 집에 다시 들러 그 사람이 거지인 줄 어떻게 알았냐고 물었다. “그 사람도 점 복(卜)자를 잡더라고요. 그런데, 이 세상에 쇠를 찬 사람이 두 종류가 있지요. 한 종류는 마패를 찬 사람이고, 또 한 종류는 깡통을 찬 사람이죠. 아, 그 사람이 점 복자를 집는데 글자를 거꾸로 잡았더라고요. 선비차림이었지만 글자를 모르는 걸 보니, 분명 진짜 양반이 아니었어요. ‘아, 이 놈은 정녕 거지구나’ 해서 내어 쫓은 거지요.” 점쟁이의 놀라운 지혜에 암행어사는 감탄했다.
겉으로 보면 갖춘 것이 별로 없는 것 같아도 그 속은 보물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고, 겉으로는 대단해 보이지만 그 속은 아무것도 없는 빈털터리가 있다. 지위가 높거나 재산이 많거나 명예가 있어도 마음은 거지인 사람, 또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범부(凡夫)여도 마음은 거부(巨富)인 사람이 있다. 성경은 우리가 알고 있는 외형적인 행복자가 아닌, 진정한 내면의 행복자의 모습을 아래와 같이 가르쳐주고 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시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