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 있으라, 그날이 다가온다!”
위는 2004년 5월에 전 세계에서 동시에 개봉된 ‘투모로우(원제 : The day after tomorrow)’란 영화의 광고 타이틀이다. 1440억이란 어마어마한 제작비를 들인 이 영화는 ‘지구 온난화’에 대한 경고 메시지를 담고 있는데, 단순한 재난 영화가 아닌 조만간 다가올 인류의 미래를 적나라하게 예시하여 큰 충격을 주었다.
“유럽 대륙을 잠식한 세기의 홍수, 지난 100년 간 최악의 홍수로 기록!”(2002년 여름)
“테러리즘보다 더 무서운 혹서! 유럽에서 2만 7천여 명의 목숨을 빼앗다.”(2003년 여름)
“살인한파! 50여년 만에 유럽을 강타하다.”(2005년 겨울)
위는 새천년 이후 급변하고 있는 유럽의 이상 기후에 대한 문구들이다. 물론, 유럽 외에 우리나라도 90년만의 가뭄(2001년)을 만났고, 600여만 명에게 피해를 입히며 미 역사상 130년만에 최악의 재난으로 기록된 태풍 ‘이사벨’(2003년), 브라질에 찾아온 60년만의 폭염(2004년), 동남아시아를 초토화시키며 1만 2천명의 생명을 앗아간 쓰나미(2004년) 등 유독 새천년에 들어서 이상 기후가 많이 일어났다.
세계기상기구(WMO)에서 정의한 이상 기후는 ‘과거 30년 동안 한 번도 관측되지 않았던 기상 상태’를 말한다. 당연히 이상 기후는 보기 드문 현상으로 어쩌다 한 번씩 나타나는 것인데, 새천년 이후에는 이상 기후가 정상인 듯 너무나 많이 나타나고 있다. 최근의 급작스러운 기상 변화는 지난 세기 동안 누적되어 온 인위적인 요인에 의한 결과인데, 그 중 대표적인 현상이 ‘지구 온난화’ 현상이다.
‘지구 온난화’의 원인은 여러 가지로 들 수 있지만, 가장 큰 요인은 이산화탄소(CO2)의 과다 방출이다. 지구와 우주 사이에 존재하는 대기에는 많은 가스들이 존재하는데, 그 중 이산화탄소는 빛에는 투명하지만 지구에서 방출되는 복사선에는 불투명하다. 그래서 외부에서 들어오는 태양의 열은 통과시키지만, 지구에서 외부로 나가는 열은 가로막는 것이다. 18세기 중엽의 산업혁명으로 인해 인류는 원시 농업 시대에서 공업화로 접어들게 되었다. 그로 인해 수많은 기계들이 발명되었고, 수많은 공장들이 지어졌으며, 석탄과 석유 등이 불가피하게 사용되어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석탄과 석유를 사용하는 공장이나 자동차에서 막대한 양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되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대기 중에 이산화탄소가 쌓이면서 지구를 둘러싸고 두터운 ‘탄소 층’이 형성되었고, 그 ‘탄소 층’으로 인해 빠져나가야 될 지구의 열이 그대로 보존되는 ‘온실 효과’가 증폭되면서 지구 온난화를 가져다 준 것이다.
그래서 산업혁명 전에는 280ppm(1 ppm은 공기 분자 100만 개당 이산화탄소 분자의 개수)으로 일정한 비율을 유지하던 이산화탄소의 농도가 산업혁명 이후에는 꾸준히 늘어나 현재는 370ppm에 근접하고 있다. 그로 인해 지구의 온도는 지난 한 세기 동안 약 0.7도 상승했다. 하지만 고작 0.7도 상승에 이제껏 경험하지 못했던 이상 기후 현상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딤후 3:1,2)
성경은 마지막 때에 일어나는 고통의 현상들에 대해 이미 오래 전에 경고하셨다. 인류에게 고통을 가져다주는 첫 번째 원인은 다름 아닌 우리 자신들이라는 것이다. 즉,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여 행하는 모든 일들이 결국 고통을 가져다준다는 것이다. 인류는 산업혁명 이후 수많은 문명의 이기(利器)들을 만들고 누려왔다. 그 중 자동차는 대표적인 문명의 이기로 이제는 없어서는 안 될 인류의 동반자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전 세계를 가득 채우고 있는 자동차가 지구 온난화의 주범이 될 지는 아무도 몰랐다. 자동차를 비롯하여 인간이 만든 모든 것들은 결국 인류를 위한 것이 아닌 불행의 근원임이 이 마지막 때에 속속 드러나고 있다. 지구는 인간이 만들기 이전에 존재했다. 인간이 손을 대기 전에는 지구가 너무나 아름다웠고 우리 인간들에게 참으로 유익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새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성경은 태초에 우리를 위해 일하신 창조주의 손 안에 살아가는 것이 가장 복되었음을 가르쳐주고 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 인류에게 있어 진정한 행복의 길잡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