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세요?”
“저기... 갑자기 비가 와서 그런데... 혹시 우산 하나 빌려줄 수 있나요?”
“예... 잠시만요...”
“감사합니다.”
‘음... 낮선 사람에게 좋은 우산을 줄 수 없고...
옳지... 그 우산을 주면 되겠다. 잃어버려도 괜찮은...’
영국의 메리 여왕이 어느 날 평상복을 입고 런던 교외를 산책하다가 갑자기 폭우를 만났다. 근처 어느 집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다가 비가 그치지 않자 그 집 대문을 두드려 여주인에게 우산 좀 빌려 달라고 부탁했다. 여주인은 곰곰이 생각하더니 광에 처박아둔 낡고 다 떨어진 우산을 빌려줬다. 그의 생각에 낯선 사람에게 좋은 우산을 빌려줄 수는 없었던 것이다. 여왕은 꼭 돌려드리겠다며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우산을 쓰고 갔다. 다음날 왕실의 화려한 마차가 그 집 앞에 서더니 번쩍이는 훈장을 단 궁전 근위대원이 내려 그 집 대문을 두드렸다.
“여왕님께서 이 편지와 함께 우산을 돌려 드리면서 빌려주셔서 감사하다고 전하라 하셨습니다.”
“예? 어제 그 여인... 아니 그 분이... 여왕님이셨다고요?”
그 여주인은 너무 부끄럽고 후회스러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여왕에게 제일 좋은 우산을 드릴 수 있는 일생일대의 기회를 놓쳤기 때문이다.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고 있는 그 평범한 옷차림의 여인이 여왕이라고 어찌 생각 되었겠는가!
성공하는 사람과 실패하는 사람의 차이는 기회를 살리느냐 헛되이 보내느냐에 달려 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많은 기회를 만난다. 그 중에 중요한 것이 만남이다. 남이 내게로 오든, 내가 남에게로 가든, 만남은 모두 중요하다. 만나는 대상이 누구든지,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만남은 인생을 바꿀 기회가 될 수 있다. 마음을 다해 그를 섬기면, 마음에서 그를 귀히 여기면, 내 인생은 항상 누군가로부터 귀히 여김을 받고 알 수 없는 섬김을 받는다. 나를 만나는 사람, 그는 누군가가 내게 보내준 사람이다.
최근 한국에서 많은 대학생들이 단기 선교사로 가는 것을 본다. 아프리카에서 어려운 현지인들을 섬기는 단기 선교사들은 한결같이 “내 생에 최고의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행복에 겨워한다. 또 그들은 “전쟁의 상처나 가난, 질병에 신음하는 그들을 위해 봉사를 한다면 진정 내 인생은 헛되지 않다”고 말하곤 한다. 만남에서 얻어지는 귀함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성경은 만남에서 어떤 것이 귀중한지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눅 6: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