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대왕은 사도 세자를 뒤주에 가둬놓고 죽인 일로 유명하다.
사도 세자의 아내인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은 그 사건을 그대로 옮겨 놓은 실록이다.
세자로서 기방을 다니며 술과 여자에 탐닉하는 사도 세자, 그뿐만 아니라
그런 날 집에 와서는 뒤주에 들어가 자는 습관(?)에 부왕인 영조는 분노했다.
‘나라의 앞날을 이끌어가야 할 세자가 이런 형편없는 정신병자라면….
차라리 나라와 왕실을 위해 없어져야 할 것이다!’
영조는 뒤주에 들어간 사도 세자를 찾아가 뒤주를 봉하였다.
살려달라는 사도 세자의 절규에도,
성은을 베풀어달라는 왕실과 조정 신하들의 간청에도 사도 세자를 용서하지 않았다.
가차없이 준엄한 심판을 내렸다.
영조 다음 즉위한 정조는 영조의 손자였고, 역시 선군이었다.
그러나 이미 몰락으로 기울어가는 이씨 조선은 영조, 정조의 치적에도 불구하고 다시 세워지질 않았다.
중국의 장왕은 잔치 자리에서 왕비에게 입을 맞춘 신하를 용서하였다.
홀연히 불어닥친 강한 바람으로 촛불이 꺼지자 왕비의 미모에 정신을 잃은 한 젊은 장수가
그만 실수하고 만 것이다. 왕비는 그의 갓끈을 떼어 표시해 두었지만,
장왕은 신하들에게 ‘모두 갓끈을 떼어내라’ 명하여 그를 품었다.
나중에 외적의 침입으로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에 그 장수가 생명을 아끼지 않고
싸워 나라를 구했다는 것이다. 원리원칙대로 다스리고 옳음을 따라 판단하는 것과
덕으로 허물을 감싸는 것에 대하여 생각게 한다.
인류 최대의 베스트셀러인 성경에도 이러한 마음의 세계가 나온다.
누가복음 15장의 탕자는 아버지 집을 떠나
먼 나라에 가서 실패를 거듭하다가 결국은 돼지우리로 전락했는데,
그때 그는 아버지 집에 돌아올 자격도 염치도 없었다.
그러나 집에 와 보니 아버지는 그를 품는 것이 아닌가!
그 아버지는 영조대왕이 아닌 장왕과 같았다.
그는 진짜 아버지의 마음을 만난 것이다.
그러나 맏아들에게는 여전히‘염소새끼 한 마리도 주지 않는 인색한 아버지’였다.
그는 참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어떤 조건과 상관없이 사랑을 베푸는 그것이 참 아버지의 마음이며
우리가 마땅히 품어야 할 복된 마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