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아더 원수가 인천상륙작전을 계획했을 때,
미군 수뇌부는 동경회의에서 인천은 조수간만의 차가 심하고
항공지원의 항속거리 밖에 있다는 이유 등으로 크게반대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인천상륙작전은 대승을 거두었다.
더글러스 맥아더(Douglas MacArthur, 1880~1964)는 웨스트포인트 육군 사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군 복무를 시작했다. 그가 34세 때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고,
프랑스와 라인지구 전투에서 독일군과 싸워 큰 공을 세웠다.
맥아더는 미국 역사상 가장 젊은 나이에 장군이 되었고,
39세 때 가장 젊은 나이로 웨스트포인트 육군 사관학교 교장이 되었다.
2차 세계대전 중에 남서태평양 연합 사령관으로 일본군과 싸운 맥아더는
1944년에 군인으로서 최고 계급인 육군 원수가 되었고, 일본 점령군 최고사령관이 되었다.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유엔 사령관이 되어 낙동강에서 북한을 막아내는 한편
인천 상륙작전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오늘 우리가 맥아더 장군을 위대한 인물로 생각하는 이유는
생각의 한계를 뛰어 넘는 지혜와 용기로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켰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가 위대한 진짜 이유는 인천상륙작전을 결정한 그 마음 때문이다.
맥아더 장군은 한국 전쟁을 끝낸 후 은퇴하고 평안히 살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한국전만을 잘 끝내고 싶었다.
맥아더 장군이 연합군 사령관으로 우리나라에 발을 디뎠을 때 전선은 낙동강으로 밀려나 있었지만
연합군 군사력이 우세했기 때문에 그대로 밀고 올라가 서울을 탈환하는 것은 다만 시간문제였다.
인천상륙작전 계획이 반대에 부딪혔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현 전선에서 쳐 올라가면 무난히 서울을 되찾을 수 있다는 것을 나도 안다.
그러나 250km를 전진해 서울을 찾기까지 쌍방의 수많은 젊은이들이 피를 흘리고 죽을 것이다.
그편이 내게는 더 유리하지만 내가 평안하게 군복을 벗고 여생을 즐겁게 지내기 위하여
수만 명의 젊은이들의 피를 흘리고 간다면 나는 악마다.”
그래서 그는 연합군 군사들이 엄폐물도 없는 넓은 갯벌을 걸어 올라가야 하는 위험한 상륙작전을 시도했다.
자기를 위해 사는 사람은 위대한 일을 할 수 없다.
맥아더 장군만이 아니라 세계를 빛낸 위인들은 모두 보통 사람들이 갖지 못한 마음 하나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자기 자신에게서 벗어난 마음이다.
그래서 성경 역시 자기를 부인하는 마음을 갖는 것을 복된 삶의 시작으로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