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민심에 메아리없는 대통령의 기자회견
한국과 일본에선 '기자회견'이지만 중국에선 '기자회' 또는 '기자 초대회'라고 한다.
우리말의 '기자단'도 중국에선 무슨 오락기자 단체처럼 '기자구락부'고 '특파원'도 '특파기자'라 부른다. 그런데 사실 이런 기자회견의 원형은 사실 프레스컨퍼런스 혹은 프레스 인터뷰라고 칭하는 미국 대통령 기자회견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분주한 연말인 지난달 19일에도 백악관 기자회견을 했고 백악관 기자회견 역사상 초유의 진귀한 기록도 세웠다.
질문한 8명의 기자가 모두 여성이었다. 정치뉴스사이트의 Politico기자를 시작으로 블룸버그통신→AP통신→로이터통신→월스트리트저널→워싱턴포스트 순서로 이어졌다.
이런 백악관 기자회견의 또 하나 볼거리는 잔뼈가 굵은 전문 노기자의 존재들이다. 지난 2013년 7월 92세로 세상을 뜬
헬렌 토머스는 1960년대 초 케네디 때부터 오바마까지 무려 50여년 백악관 출입을 한 여기자였다.
기자회견을 가장 많이 한 미국 대통령은 1933년 3월 취임한 32대 루스벨트였는데, 첫 번째 임기에 337번, 두 번째 임기에 374번, 세 번째 네 번째 임기까지는 도합 몇 번인지 기록조차 없다. 31대 후버가 3주에 한 번 미만인데 비해 루스벨트는 그 5배나 기자회견을 한 셈이다.
그만큼 국민과의 소통을 중요시했고 그 소통의 철학을 담은 연설문이 바로 '루스벨트의 공공문서와 연설문'이라는 8권짜리 책이다. 하지만 그 시절은 얼굴 없는 라디오 회견이었고 이른바 노변환담(fire-side chats)이었다.
TV로 생중계된 기자회견은 35대 케네디 대통령 때부터였고 기자의 돌출 질문과 부실한 답변까지 그대로 TV에 노출됐다. 그래서 질문 이슈와 순서, 시간 등 제약은 따를 수밖에 없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2일 청와대에서 신년 기자회견을 갖고 집권 3년 차 국정운영 구상을 밝혔다.
정치`경제`사회`통일 등 각 분야에 걸쳐 국정운영 계획에 대해 소상히 설명했지만 여론의 반응은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무엇보다 ‘정윤회 문건’ 유출 파문의 수습을 위해 요구됐던 인적 쇄신 문제에 대해 박 대통령은 다수 국민의 인식과 궤를 달리했다.
이번 회견에서 박 대통령은 인적 쇄신 문제에 대해 지금까지와는 다른 전향적이고 유연한 자세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됐다. 그러나 회견 내용은 이런 기대에 전혀 부응하지 않았다.
‘문건 파문’에 대해 박 대통령은 “나라를 위해 헌신과 봉사를 해야 할 위치에 있는 공직자들이 개인의 영달을 위해 기강을 무너뜨린 일”이라고 했다. 문건 유출 사건의 본질은 청와대 일부 보좌진들의 권력욕과 사심이 빚은 일탈 행위라는 것이다.
상황 인식이 이러니 인적 쇄신이 필요 없다고 보는 것은 당연하다.
박 대통령은 김 실장의 교체 여부에 대해 “현안을 수습하고 결정할 문제”라고 비켜갔다. ‘문고리 3인방’에 대해서도 “(국정 개입)의혹을 받았다는 이유로 내치거나 그만두게 하면 누가 내 옆에서 일하겠느냐”며 교체할 이유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이러한 판단에 동의하는 국민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결국 이번 회견은 박 대통령의 생각과 국민의 생각에 큰 괴리가 있음을 재확인해줬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국정운영 동력의 소진이라는 걱정스러운 사태를 야기할 수 있다.
올해로 박 대통령은 집권 3년 차를 맞았다. 권력의 생성 상승 하강의 주기상 최정점에 와있는 시기다.
게다가 전국 규모의 선거도 없어 취임 당시 구상했던 과제들을 밀도 있게 추진할 수 있는 여건도 갖췄다.
하지만 국민의 전폭적 지지가 없으면 권력 주기의 최정점에서도 국정운영의 추진력을 얻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인적 쇄신에 대한 박 대통령의 거부는 많은 아쉬움을 남긴다.
회견에서 박 대통령은 “대통령에 취임한 후에 오직 국민 여러분과 대한민국의 앞날만을 위해 최선을 다해 왔다”며 “앞으로도 남은 임기 동안 국민과 나라를 위해 모든 것을 바쳐 나갈 것”이라고 했다.
국정을 대하는 박 대통령의 진정성이 잘 읽힌다.
박 대통령은 국민이 이를 알아주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말로 되는 것이 아니다. 국민이 원하는 것을 행동으로 실천할 때 진정성은 실체를 확보한다.
박 대통령은 지금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되돌아보기 바란다.
<관련 기사 : 정치면 4 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