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복을 받으려 하고 복을 줄 수 있다고 믿는 절대적인 존재에게 복을 빈다.
우리의 선조들도 자식 잘되게 해 달라고 빌기도 하고 살면서 시련에 부딪치면 시련을 넘어서게 해 달라고 빈다. 병이 낫게 해 달라고 빌고, 아들을 낳게 해 달라고 빌고, 하는 일이 잘 되게 해 달라고 빌고, 가정이 화목하게 해 달라고 빌고, 하고자 하는 일이 잘 이루어지게 해 달라고 빈다. 때로는 원수 진 사람에게 화(禍)를 내려달라고 빌기도 한다.
정화수 한 그릇 올려놓고 빌기도 하고 삼신할머니에게 빌고 서낭당에 돌 던져 빌고 영험(靈驗)한 나무에 댕기 끈 묶어 빌고 조상님에게도 빌고 부처님, 하느님, 한울님한테도 빈다.
복을 빈다고 절대적인 존재가 복을 줄까?
기독교에서의 '나'라는 존재는 태어날 때부터 원죄(原罪)를 가지고 태어났고 태어나고부터는 자범죄(自犯罪)를 짓고 사는 죄인(罪人)이다. 따라서 '나'라고 하는 죄인은 하느님 앞에 다 바쳐져서 죄 사함을 받아야 할 존재이다.
그런데 죄를 다 씻지 못한 죄인이 복을 달라고 한다고 복을 준다면 그것은 죄인을 더 행복하고 강하게 하고 죄인을 살찌우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죄인을 살찌우고 강하게 되라고 복을 주실까?
불교에서의 '나'라는 존재는 망념(妄念)을 가진 망념의 존재이다. 인간은 누구나 허망한 망념을 가지고 있는데 망념을 다 버려 망념의 존재인 '나'로부터 벗어나야 한다(解脫)고 하였다. 그런데 이 망념의 존재가 망념을 다 버리지도 않은 채로 잘 살게 해 달라고 빈다고 부처님이 망념의 소원을 들어줄까?
망념의 소원을 들어주는 것은 망념을 살찌우고 망념을 강하게 해 주는 것이다. 망념을 다 버려 망념의 존재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해 놓고 망념을 더 강하게 만드는 복을 줄 리가 없다. 내가 하느님 부처님이라도 죄인을 살찌게 하고 망념을 더 강하게 만드는 복은 주지 않을 것이다.
또한 복은 누가 주는 것이 아니다.
성경에 보면 '너희들이 뿌린 대로 거두리라'고 하였고 불교에서는 인과응보(因果應報)를 말하였다. 삶에서 스스로 복의 씨앗을 뿌린 만큼, 복을 지은 만큼 복을 받는다는 뜻이다.
복된 삶을 살면 복을 가진다는 뜻이다. 어느 성현도 복을 준다는 말씀은 한 적이 없다.
사람은 왜 한없이 복을 비는 것일까?
사람은 불완전한 존재이다. 완전한 존재라면 부족함이 없을 터인데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항상 부족함 속에 있어 그 부족함을 채우려 한다. 그 부족함을 채우려는 가짐의 마음이 있어 복을 비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가지고 또 가져서 채워도 완전한 존재는 될 수가 없다. 그리고 스스로 복을 짓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
또 성현들이 말한 복의 조건을 갖추어야 하는데 먼저 나를 버리고 남을 위해 산다는 것도,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는 일도, 착한 일을 했다는 마음 없이 선행(善行)을 한다는 것도 사람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 사람인 '나'를 벗어나야 그렇게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