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은 머무름이 없다. 어느 한 곳에 머물지 않고 낮게도 있다가 높게도 있다. 그 모양에도 머무름이 없고 색깔에도 머무름이 없다. 새하얀 새털구름, 양털구름이 되어 하늘 높이 떠 있다가 뭉게구름이 되어 뭉게뭉게 피어 오르며 낮은 곳으로 내려 오기도 하고 시커먼 먹구름이 되어 나지막하게 하늘에 머물기도 한다. 호수에 물안개 되어 피어 오르다 높은 산골짜기에 연기처럼 서려 있기도 한다.
물은 머무름이 없다. 어느 한 곳에 머물지도 않고 모양에도 머무름이 없다. 낮은 곳으로 낮은 곳으로 흐르다 큰 바위 만나면 돌아 흐르고 돌아 흐를 형편이 아니면 고였다가 넘쳐흐른다. 깊은 산골 돌 사이를 요리조리 흐르다가 절벽을 만나면 몸을 던져 폭포 되어 부서진다. 산골에서는 바삐 흐르고 질펀한 들녘에서는 쉬엄쉬엄 흐르다가 드넓은 분지(盆地)에서 호수 되고 바다 되어 깊은 휴식에 든다. 수백 길 깊은 땅 속을 흐르다 때로는 땅 위로 용솟음쳐 솟아오르고 옹달샘 물이 되어 새벽 별 담아두었다 작은 멧새 한 마리 날아와 새벽 목 축인다. 작은 물 알갱이로 바람에 떠 다니다가 차가운 밤바람에 이슬이 되어 풀잎에 살몃 내려 쉬기도 하고 안개 되어 연기처럼 피어 오르기도 하고 구름 되어 여기 저기 떠돌다가 비가 되어 내리기도 하고 하얀 눈꽃이 되어 휘날리기도 한다. 살을 에는 북풍에 수정처럼 맑고 단단한 얼음이 되었다가 꽃 바람 불어오면 물이 되어 흐른다.
바람은 머무름이 없다. 산에도 들에도 하늘에도 있다가 모자라는 곳이 있으면 그곳으로 흘러 흐른다. 봄에는 꽃 바람 되어 살랑살랑 흐르고 여름에는 큰 바람 일으켜 휘몰아쳐 흐르고 겨울에는 눈 바람 되어 춤추며 흐른다.
태양도, 달도, 지구도, 이 우주에 있는 수많은 별들도 한 순간도 쉬임 없이 흐르고 또 흐른다. 밤낮이 흐르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이 흐른다. 높은 곳도 만들고 낮은 곳도 만들어 낮은 곳에는 물이 고여 물고기가 나고 높은 곳에는 풀이 나고 짐승이 나 흐른다. 만물만상이 인과(因果)의 연쇄(連鎖) 변화(흐름)에 따라 끊임없이 흐른다.
사람은 마음에 담아둔 것에 머문다. 과거지사(過去之事) 살아온 삶에 머물고, 오지 않은 미래(未來)에 머문다. 삶의 인연(因緣)에 머물고, 살아온 사연에 머문다. 욕심 집착에 머물고 자기의 가진 마음에 머문다. 그런데 사람이 머무는 이러한 것들은 모두 사람이 자기 속 마음에 가지고 있는 것으로 실제(實際)로 있지도 않은 허상(虛像)이다. 없는 것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없는 것에 매여 있고 갇혀 있는 것이다. 실재(實在)하는 세계에 살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실재(實在)하지 않는 자기의 마음세계 속에 살고 있다. 없는 마음세계를 벗어나야 한다. 허상인 마음세계와 그것을 가진 ‘나’를 다 없애야 한다. 꿈에서 깨어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