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보육정책의 틀을 바꿀 황금시간이다.
대한민국에서 아이 보육사업이 정책적으로 시작된 것은 사실 한국전쟁 직후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산하 곳곳에 부모 잃은 아이들이 넘쳐났고, 이들을 보호할 시설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이른바 공립탁아소가 생겨난 것이다.
이후 70년대 어린이집이란 명칭을 법령상 규정하였고, 80년대 잠시 새마을 유치원이란 이름으로 바뀌기도 했지만 90년대 만 5세 이하 아이들의 공식적인 보육기관은 ‘어린이집’으로 통일되었다. 이런 보육정책은 급격하게 진행된 도시화 및 맞벌이 가구에 대한 지원정책의 일종이었다.
사실 80년대까지만 해도 유치원이나 취학 이전 아이들의 보육의 중심지는 가정이었고, 국공립 어린이집은 취약계층이나 장애아동 보육에 좀더 초점을 두고 있었다. 그러다 2000년대 들어와 여성의 사회진출과 더불어 일반 가정에서의 어린이집 수요가 급증했다.
얼마전 인천에서 벌어진 어린이집 보육교사의 아동 폭행 사건이 CCTV를 통해 공개되면서 온 국민이 분개하고 있다. 그간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을 학대하는 사례가 자주 나오고 있지만 이번 사건은 상상하기 힘든 폭행과정이 그대로 공개되면서 그 충격의 수위를 높였다.
우리 사회에서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면서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는 일이 일반화 된지 오래다. 그러나 어린이집의 보육수준은 오히려 퇴보하다 못해 사각지대가 되고 있다. 특히 아동학대사건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지난 2010년에 100건에서 2013년에는 두 배가 넘는 232건이 발생했다.
어린이집수는 1993년 5490곳에서 현재 4만3752곳으로 늘어났다. 영·유아 140만 9000명이 이곳에서 돌봄을 받고 있다. 이제 어린이집은 누구나 아이를 맡겨야 하는 곳으로 자리매김이 되었다.
그러나 보육수준은 이번 사태에서 보여주듯이 참담하다. 물론 모범적인 어린이집도 있기는 하나 부모들이 어린이집에 마음 놓고 아이를 맡기기에는 너무나 미더움이 멀다.
이러한 현상은 무엇보다 정부에서 많은 예산을 지원해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질 관리'를 제대로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정부 예산만도 6조원이 투입됐다. 놀라운 점은 이번에 사고가 난 어린이집이 복지부에서 받은 평가가 100점 만점에 95.36점이나 된다. 무슨 근거로 이와 같이 높은 점수를 받았는지 알 수 없다.
아동학대가 1회만 발생해도 어린이집을 폐쇄하거나 학대 교사·원장을 영구 퇴출하는 것도 처벌 위주여서 한계가 있다. 어린이집 정책의 근본 틀을 바꿔야 한다.
어린이집 정책의 가장 큰 문제점은 정부 기능을 민간에 지나치게 미루면서도 지원이나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이다.
한국 국공립 어린이집 비중은 5.7%로 스웨덴(80.6%) 덴마크(70%) 프랑스(66%) 일본(49.4%) 등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아동보육 95%를 수익 챙기기에 급급한 민간에 떠넘겨 놓고 어떻게 질 높은 보육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보육교사들이 안심하고 일할 수 있는, 예산과 시설이 뒷받침된 국공립 시설 비율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것이 답이다.
저조한 직장어린이집 설치에도 드라이브를 걸어야 한다. 2012년부터 상시 여성 근로자 300명 이상 또는 근로자 500명 이상을 고용한 사업장은 의무적으로 어린이집을 설치해야 하지만 서울 설치율은 50%를 밑돈다. 명단 공표 외에 별다른 제재 수단이 없다 보니 기업들이 쏙쏙 빠져나가고 있는 것이다.
2016년부터 최대 1억원까지 이행강제금을 부과할 예정인데 이를 더 인상해서라도 확대해야 한다.
아동학대를 막기 위해서는 정부 발표처럼 교사 인·적성 검사 의무화, 자격 강화도 중요하지만 보육교사의 열악한 처우 개선도 뒷받침돼야 한다. 보육교사들은 토요일을 포함해 평균 10시간 일하지만 월평균 급여는 144만원에 불과하다.
이번 학대사건이 발생한 어린이집 교사는 122만원으로 평균보다도 적었다. 박봉에 허덕이는 이들에게 무조건 헌신적인 보육을 요구하기는 어렵다. 좋은 인재들이 유입될 수 있도록 처우와 근무환경 개선도 뒤따라야 한다.
비록 많은 예산이 뒷받침돼야 하지만 우선과제로 삼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 우리가 가장 고민하고 있는 저출산 문제도 어린이집이 보다 안전하고 따듯해야 실마리를 풀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