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한인사회에 봄은
오는가
나는
1982년 7월 영국에 도착했다.
당시는 회사에서 가족을 같이 보내주지
않아서 1년을 혼자 살아야했던 터라 교민 가정에 하숙을 했는데 연말에 비는 주룩주룩 내리고 갈 데는
없고 참 쓸쓸했다.
그런데 한인회 송년 잔치가 있다고 해서
저녁에 Wandsworth Town hall을 찾았다. 수
백 명의 한인 교포, 주재원들이 참여하여 장기자랑도 하고 뷔페 식사도 하고 대사님 말씀과 한인 회장
말씀도 듣고… 나중에 라플(Raffle) 발표에서 운 좋게
당첨이 되어 크리스탈 물병을 상으로 받기도 했다.
이런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며 세월의 무상함을
느낀다.
돌이켜보니 연말 한인회 모임은 타지에서
외로운 이방인인 나에게 한인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해 준 고마운 곳이다.
그 후 나는 주재원에서 독립하여 자영
기업을 운영하며 영국 땅에 자리를 잡았다. 먹고 사느라고 정신이 없어서 한인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관심이 없었고 그저 회사, 가정, 교회 세 울타리에서 30여년을 지냈다.
그런데 귀를 막으려고 해도 들려오는 한인회
소식을 피할 수 없게 된 것은 7년 전부터 시작된 조.석.박 양측의 법정 분쟁 소송 때문이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한인회에 대해 걱정 했고, 나아가 한인회를 성토하는 말로 좌석이 떠들썩했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더니
한국 사람 어쩔 수 없다고 이쪽 저쪽 다 싸잡아 비난하기 시작했고 관심끊고 거리를 두자는 데에는 모든 한인이 이심전심이 되었다. 말 없는 대중은 그래서 한인회를 떠났고 관심을 두는 사람은 극소수가 되어 버렸다.
다른 나라에 사는 교포들을 만나면 한마디씩
한다.
“영국 한인회 왜 그래?”
부끄러웠고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그럼에도 양측은 오기와 분노를 누그러뜨리지
않고 싸움을 계속해 나간지 7년이 넘었고 신문사끼리 서로 상반된 기사로 상호 공방을 계속했다.
그런 가운데 2012년 런던 올림픽이 개최되었고, 박근혜 대통령이 영국을 다녀가셨을
때에도 영국 한인회는 무관심과 철저한 푸대접을 받은 것은 어쩌면 자업자득이 아니었을까.
그러던 작년 연말, 이전투구하던 조.석.박의
문제가 타협을 보였다.혹자는 때가 되었다고도 하고 혹자는 중재가 잘 되었다고도 하나 중요한 것은 세
분 모두 대승적인 자세로 양보하겠다는 큰 마음을 가졌다는 것이다.
박영근 회장의 통 큰 양보, 조+석 회장의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풀어보겠다는 희생정신이 7년만에 화합을 이루게 한 것이다.
William Wordsworth의 수선화에 나오는 <계곡과 언덕을 넘어 떠도는 구름 밑에 나무 밑에 바람에 흔들거리는 수선화>처럼 험한 계곡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한겨울을 차갑게 언 대지에서 얼굴을 내밀지 못하다가 이제 싹을 쏘옥 내미는 수선화의 수줍은 모습에서 새싹을 틔워지는 소리를 듣는다.
언 땅에서 십여센티 모습을 보인 수선화는 곧 노란 꽃을 틔우리라
아름다운 모습을 한 새로운 한인회가 곧
태어날 것 같은 청신호를 감지하며 등을 돌렸던 교민들의 마음들이 다시 눈 돌리게 되었으면 한다.
어느 책에서 본 구절에 마음에 와 닿는다.
“부패한 정치는 무관심이란 환경 속에 냉소주의라는 옷을 입고 투표 불참이란 음식을 먹고
서식한다. 부패한 정치인, 부패하고자 하는 정치인에게 가장
훌륭한 환경은 무관심이다.”
먹고 사는데에 바쁘다며 한인 사회가 돌아가는
데에 무관심했던 나야말로 가장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지 않았는지 반성해 본다.
또한 나와 같은 생각에 뒷 짐지고 관망하시던 어르신들, 등 돌리고 무관심에 말 없으신 교민 분들, 한국 사람들은 별 수 없다고 질책하고 피하시던 주재원분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고민하며 속 썩이던 대사관도…
모두의 무관심이 만들어 낸 것이 현재까지의 한인회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이제는 2014년 12월 31일
이전의 모든 시끄러운 과거의 모습은 묻어 버리고 새로운 한인 사회를 만드는데 관심을 모아야 할 것이다.
아직도 반신반의하며 조석박이 합의한 것이
맞는지,합의했다고 하지만 아직도 해결 안된 것들 때문에 또 시끄러워지겠지,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머지않아 또 싸움이 시작되겠지하며 어두운 측면을 부각시키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추측성 발언, 침소봉대하는 허위성 보도, 부정적인 시각으로 교민사회를 어지럽히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는 이제 조.석.박의 법정문제는 끝이 났다는 사실을 인정하자.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다시 한마음을 모아
한인회를 세우고 새로운 지도자를 적법하게 선출하여 새 출발하는 것이지 뒤로 뒷걸음질 쳐서는 안된다. 그래서
모두가 합의하는 새로운 한인회장을 선출하여 그 동안의 깊은 골을 수습하고 정상화시켜야 한다.
제 1세대가 가고 1.5세대, 2세대가 교민 사회의 중추가 되어 영국 교민 사회를 이끌어가야할 때,우리 부모가 우리에게 가난을 물려주지 않으려 노력했던 것처럼 재영 한인들이 똘똘 뭉친 건강한 한인회를 후손들에게 넘겨주었으면 한다.
그리하여 4만명 이상의 교포가 모여 사는 영국 한인회가 명실 공히 유럽 교민 사회에서 장자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금년 말, 한인 송년 잔치에서 어른들을 모시고, 아이들의 장기자랑하는 모습을
보며, 박수치고 파운드짜리 Raffle을 맞추며 환호하는
때가 오기를 바란다.
영국 한인회의 봄이 올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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