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부모한테 태어난 사연도 지금 이곳에 오기 위함이었습니다. 오줌 싸고 동 쌌던 것도 할머니 무릎 베고 누워 ‘옛날 옛날에…’ 이야기 듣던 것도, 엄마 등에 업혀 토닥토닥 자장가 듣던 것도 지금 이곳에 오기 위함이었습니다. 걷다가 놀다가 넘어져 무릎 깨져 피 흘린 것도 어린 시절 동네 아이와 싸우다가 얼굴 할퀴어 아파했던 것도 지금 이곳에 오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름 모를 새를 좇아 숲 속을 헤집고 다닌 것도, 아슬아슬 절벽 위에 곱게 피어있는 꽃을 꺾으려다 굴러 떨어져 죽을 뻔한 것도 지금 이곳에 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갑순이와 오순도순 엄마 아빠 하자며 소꿉놀이 한 것도 지금 이곳에 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길을 걷다가 소 똥을 밟아 미끄러진 것도, 벌에 쏘여 눈두덩이 퉁퉁 부었던 것도, 여름 밤에 모기에 물어 뜯겼던 것도, 지금 이곳에 오기 위한 것이었고, 풍뎅이를 잡아 목을 잡아 비틀어 눕혀놓고 발버둥치는 것을 재미있어 했던 것도, 개미굴 옆에 앉아서 재미 삼아 개미를 죽였던 것도 모두 지금 이곳에 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웃 동네 갑순이가 보고 싶어 가슴 설레고 길을 가다 마주치면 얼굴 붉힌 사연도, 어른이라도 된 것처럼 점잔도 빼고 어른 흉내를 내기도 했던 것도 지금 이곳에 오기 위한 것이었고 세상을 알고 사람을 알아보겠다고 신화다 철학이다 천문지리를 기웃거리고 한 것도 지금 이 곳에 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성현을 흉내 내어 깨달아보겠다고 명상도 해보고 신앙도 가져보고 수행도 해보고 한 것은 지금 이곳에 있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이를 만나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가져 기른 것도, 부부싸움을 한 것도 지금 이곳에 있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직장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풀겠다고 술 한잔 마시고 넋두리를 하고 친구를 만나 차 한잔 한 것도 지금 이 곳에 있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오해 받은 것도, 음해(陰害)받은 것도, 잘한 것도 잘못한 것도 지금 이곳에 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오는 길 길목마다 마주친 선택의 갈림길에서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망설였던 것도 또 선택하고 한참 지난 뒤에 잘못 선택했다고 후회한 것도 지금 이곳에 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벼락이 내려쳐서 서낭당 큰 나무 밑둥치가 부러지고 뒷산 큰 바위가 쩍 갈라진 것도, 휘몰아치는 폭풍에 집 내려앉고 논밭 떠내려 간 것도 지금 이곳에 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슬픔도 기쁨도, 미움도 고움도, 행복도 불행도, 억울함도 서러움도, 그리움도 허무함도, 안타까움도 서운함도 온갖 사연사연 모두가 지금 이곳에 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오고 보면 올 것도 없는 길을 참으로 멀리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