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신이 젊었을 때 천관(天官)이란 여인의 집에 자주 드나들자 어머니 만명(萬明)부인이 왕과 부모에게 기쁨을 주기를 기대했는데 술과 여자를 즐기느냐며 울며 타이르자 다시는 그 여자의 집에 가지 않겠다고 맹세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김유신이 술에 취하여 말에 오르자 말은 늘 하던 대로 눈에 익은 길을 따라 천관녀의 집으로 갔다. 김유신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천관녀의 집에 와있는 것을 알고는 칼로 말의 목을 베어버리고 그 집을 떠났다. 이에 천관녀는 원사(怨詞) 한 곡을 지어 남겨놓고 속세를 떠났다.
위 이야기는 삼국사기(三國史記)의 열전(列傳)에 나오는 설화(說話)이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관점에서 위 이야기를 풀어보자.
김유신의 집안은 가야로서 신라의 성골이나 진골이 아니었다. 김유신 자신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출중한 문무(文武)를 겸비하였으나 출신 신분 때문에 출세에 제약이 있었다. 한편 김유신은 가야의 유력한 가문 출신인 어머니의 엄격한 가정교육을 받아 나라와 왕에 대한 충성심과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였다. 그러한 김유신이 천관녀의 집에 드나든 것은 그 당시 젊은이 들이 그러하듯 젊은 혈기에 잠시 한눈이 팔려 잘못을 저지른 것일 것이다. 아름다운 여인에게 한눈을 팔아 술과 여인에 빠진 것은 김유신이 술과 여인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남녀간의 정(情)을 따라갔기 때문이다. 김유신이 천관녀를 버리기로 한 것도 어머님의 뜻을 따라 신분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김유신의 말은 젊은 주인이 늘 하던 대로 천관녀의 집으로 간 것뿐이다. 이러한 모든 것이 다 자기 탓이고 어느 누구도 탓할 일이 아닌데 김유신은 칼로 애마(愛馬)의 목을 쳐버렸다.
천관녀도 전도가 유망하고 잘 생긴 젊은 화랑(花郞)을 알고부터 그 젊은이가 발길을 끊지 않고 계속 자기를 찾도록 은연중에 유혹하였을 것이다. 이것 또한 누구를 탓할 일이 아닌데 천관녀는 원사(怨詞)를 남겼다. 원사의 구체적인 내용이 전해지지 않아서 알 수는 없지만 아마 세상과 김유신을 원망하고 스스로의 신세를 한탄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젊고 잘 생겼을 뿐 아니라 명문자제(名門子弟)로서 앞날이 촉망되는 김유신을 만나 유혹하고 붙들어 둔 것은 자기가 좋아서 한 일이므로 남을 탓할 일이 아니었다.
우리 속담에 ‘잘 못되면 조상 탓, 잘 되면 내 탓’이라는 말이 있고 ‘핑계 없는 무덤 없다’는 말이 있다. 사람들이 자기 탓할 줄 모르고 남을 탓하는 것을 빗대는 말이다. 세상을 살면서 내가 겪는 모든 일들은 ‘나’로 말미암은 것이다. 잘 된 것도 잘못 된 것도 내가 있어서이니 모두 다 내 탓이다. 이 세상은 모두가 하늘 뜻이어서 일체가 필연인데 ‘나’가 있어 그 있는 내가 한다 하고 있으니 내가 한 모든 것은 내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