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태어나서 보고 듣고 배우고 경험한 것밖에 모른다. 자기가 해외 여행하여 가본 미국은 알지만 가보지 못한 아프리카 우간다는 모른다. 영어는 학교에서 배워서 알지만 우간다 말은 배운 적이 없기 때문에 모른다. 그리고 사람은 자기가 아는 것에 매여있고 그것을 가지고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한다. 자기가 아는 것이 전부인 양 착각하고 자기가 옳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기가 보고 듣고 배우고 경험한 것이 아니면 받아들이지 않고 틀렸다고 한다. 그런데 이 우주에는 사람이 알지 못하는 수많은 존재가 있고 또 수많은 현상이 일어난다. 허블 망원경으로 관찰할 수 있는 것은 우주의 0.000….%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우주에서 일어나는 수 만가지 현상 중에 사람이 알고 있는 것은 또 얼마나 될까? 우주의 무한함과 우주에 존재하는 만물만상과 일어나는 현상의 무수함에 비하면 인간은 아는 것이 없다고 하는 것이 옳다. 또 다 알아야 아는 것인데 사람이 아는 것은 먼지 한 알보다도 작은 지극히 적은 일부일 뿐이다.
사람은 외부세계를 오감(五感)으로 인식하는데 자기의 관념을 가지고 있어서 자기의 관점에서 인식한다. 똑 같은 달을 보아도 동양인은 긍정적으로 아름답게 보는데(계수나무 아래서 옥토끼가 떡을 찧는 곳) 서양에서는 부정적으로 음흉스런 존재로 본다(밝은 태양 앞에서는 드러내지도 못하다가 어둠이 깔리면 슬며시 나타나는 존재). 동서양 중에 한 쪽은 달의 참모습을 보고 다른 한 쪽은 달의 참모습을 보지 못하는 것일까? 어느 쪽도 달의 참모습을 보지 못하고 있다. 있는 그대로의 달을 보지 못하고 자기 마음의 관념으로 보고 있다. 사람은 무엇을 보아도, 무슨 소리를 들어도, 무엇을 냄새 맡고 맛보고 촉감으로 느껴도 모든 사람이 제각각 자기의 관념으로 자기 나름으로 인식한다. 그러니 실재(實在)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관념으로 자기(自己)`식으로 인식한다. 그렇게 인식한 것은 실재하는 것과는 다르다. 있는 그대로를 보지 못하고 있다. 있는 그대로가 참인데 사람은 참이 있는데도 참을 보지 못하고 참을 이야기 해 주어도 알아듣지를 못한다(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를 못한다). 눈먼 장님이고 귀머거리이다. 사람이 보고 아는 것은 모두가 참이 아닌 허(虛)이다. 세상에는 참만이 존재하는데 사람은 참을 보지 못하고 허상(虛像)을 보고 있다. 허상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사람은 아는 것이 없어 無知(무지)하고 참을 모르니 지혜가 없어 無智(무지)하다.
사람이 태어나서 보고 듣고 배우고 경험한 것이 사람이 지어놓은 마음세계이고 관념이다. 사람이 지어놓은 마음세계를 다 없애면 그 마음세계를 가진 ‘나’라고 하는 존재마저 없어지고 참만 남는다. 참만 남으니 참의 존재가 되어 참을 보고 듣고 알게 된다. 무지(無知)하고 무지(無智)한 거짓세계 거짓존재가 없어지고 참의 세계 참의 존재만 남으니 그냥 일체를 알고 대 지혜(大 智慧)를 가진다. 참의 존재는 지혜자체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