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지금 이대로 죽는다면 어떻게 될까?
사람이 사는 것은 의식이 사는 것입니다. ‘물을 마셔야지’ 하고 마음먹으면 물이 있는 곳으로 <다리로> 걸어가서 <한 손으로> 물잔을 쥐고 <다른 손으로> 물병을 쥐고 물을 물잔에 부어 마십니다. 만일 아무런 마음을 먹지 않으면 몸은 움직이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마음먹은 것을 몸이 실행합니다. 그러니 몸은 마음이 하고자 하는 것을 실행하는 도구입니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지금까지 지낸 것도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 ‘일어나야지’ 마음먹고 일어났고 ‘세수해야지’ 마음먹고 세수했고 ‘아침 먹고 출근해야지’ 마음먹고 출근하였습니다. 오늘 하루를 지낸 것도 무엇인가 해야지 하고 ‘마음먹고 그것을 몸이 실행’ 한 것의 연속이었습니다. 태어나 지금까지 살아온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이 주인이고 몸은 주인인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는 도구입니다. 따라서 사람이 사는 것은 의식이 사는 것입니다.
욕심은 몸이 있어 생깁니다. 몸이 있어 먹고(食慾), 가지고(物慾), 번식하고(色慾), 남보다 나으려 하고, 안락함을 추구합니다. 무엇을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 보고, 감촉으로 느껴서 오감(五感)으로 인식을 하면 몸이 바라는 것을 채우고자 인식한 것을 가지거나 이루려고 하는 마음(욕심)이 생기고 그것(욕심; 마음먹은 것)을 몸이 실행합니다. 사과나무에 매 달린 잘 익은 사과를 ‘보고’ ‘먹고 싶은’ 욕심이 생기면 사다리를 가져다 놓고 사다리에 올라가서 팔을 뻗어 손으로 사과를 따서 입으로 베물어 먹습니다. 살아온 삶의 과정이 이와 같습니다.
사람은 태어나 살면서 오감으로 인식한 수많은 정보를 다 담고 있습니다. 온 세상(우주와 천체)과 온 삶(삶의 사연, 배경 – 장소, 인연)을 모두 담고 있습니다. 살다가 조건이 되면 담겨있는 것이 되살아나고 그것을 하고 싶은(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생깁니다. 고향을 주제로 하는 드라마를 보면(조건이 되면) 내 마음에 담아놓은 고향이 그리워지고 가보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고향시절 사진첩을 뒤적이기도 하고 고향 친구에게 전화도 해보고 하다가 기회가 되면 실제로 고향에 가봅니다. 이렇게 고향에 가고 싶은 마음을 몸이 실현하고(사진첩을 뒤적이고, 친구에게 전화를 하고, 고향에 가고) 있습니다.
지금 이대로 죽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시간이 흐르면서 몸은 다 썩어 없어지지만 마음덩어리는 그대로 남아서 떠돌지 않을지 모르겠습니다. 그 마음덩어리에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겪은 정보가 다 들어있어 조건만 되면 하고 싶고 이루고 싶은 욕심이 수없이 일어나겠지만 몸이 없으니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먹고 싶어도 먹을 수가 없고 가지고 싶어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욕심은 가득한데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 미칠 지경이겠지요. 분노와 좌절과 절망, 한…. 이런 것들로 가득 차서 끝없이 고통에 짓눌리게 되지 않을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