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마음이라는 말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마음 크게 먹어라’ ‘마음 단단히 먹어라’ ‘마음 푹 놓고’ ‘마음을 다스린다’ ‘마음을 비워라’ ‘마음을 버려라’ ‘마음을 닦아라’ ‘마음 갈아 앉혀라’ ‘내 마음 나도 몰라’ ‘마음대로’ ‘마음먹은 대로 된다’… 이렇게 ‘마음’이라는 말을 늘 사용하고 있지만 ‘마음’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잘 모릅니다. 사실 의학적으로도 학문적으로도, 또 종교에서도 마음을 잘 모릅니다.
마음을 닦으려면 닦아야 할 ‘마음’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는데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마음이 무엇인지를 몰랐습니다. 마음이 무엇인지를 모르니 마음을 닦으려 해도 마음을 닦을 수가 없었습니다. 또 마음의 실체를 모르니 마음을 닦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 의미를 몰랐습니다. 마음을 꾹 누르고 참으면 되는 것인지(화가 나면 열을 세어라, 더 화가 나면 오십을 세어라, 아주 많이 화가 나면 백을 세어라), 마음을 다스리면 되는 것인지(화를 다스리는 법, 마인드콘트롤), 마음을 갈아 앉히면 되는 것인지(명상), 망각이나 체념처럼 마음을 잊으면 되는 것인지… 마음의 실체를 정확히 파악하고 그것이 어떻게 형성이 되고 그것 때문에 사람이 어떻게 살고 있으며 어떠한 문제가 있는지를 제대로 알아야 마음을 닦을 수가 있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많은 수행법(修行法)들이 마음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지만 잘 되지 않습니다. 종교에서도 마음을 중시합니다. 그러나 마음을 닦는 문제는 쉽지가 않았습니다. 망념의 마음을 닦으려 하지만 닦아야 할 망념의 실체를 구체적으로 모르니 닦을 수가 없습니다. 또 사람의 마음이 왜 문제인지, 왜 모든 사람이 마음을 닦지 않으면 안 되는지를 모릅니다. 마음을 닦아야 할 이유를 모르니 마음을 닦을 수가 없습니다. 또한 마음을 닦는 것은 신앙인이나 구도자(求道者)와 같은 특정 부류의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음이 무엇인지를 알았다면 마음을 닦는 방법이 있어야 합니다. 마음을 아무리 잘 알아도 그 마음을 닦을 수 있는 방법이 없으면 마음을 닦을 수가 없습니다. 그 동안 있었던 방법들은 고행을 하거나 막연히 명상을 하거나 현재 하고 있는 특정한 일에 집중을 하거나 호흡을 길게 늘여서 하거나 기도를 하거나 해 보았지만 여전히 화나고 짜증내고 미워하고 게으름피고 또 주관적인 행복감을 가지는 등 사람이 가진 마음을 없애지는 못하였습니다. 모두다 마음이 무엇인지를 몰랐기 때문에, 또 그 마음을 버리기에 딱 맞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았던 것입니다.
마음의 실체를 알고 또 마음을 버리는 방법이 있어 마음을 버리면 망념을 가졌던 ‘나’를 벗어납니다. 마음을 버리면 그 마음으로 세상을 살면서 잘못을 저질러 온 ‘나’를 벗어납니다. 허상의 마음을 다 버리면 허상의 마음을 가졌던 허(虛)의 ‘나’를 넘어서 실(實)의 존재로 거듭납니다. 실의 존재로 거듭나서 참 세상에서 참 삶을 삽니다. 참 세상은 영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