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자는 아는 것을 ‘가진’ 사람이다. 가정이나 학교에서 교육을 통해 배우고 살면서 체험한 것을 지식으로 가진다. 대부분의 지식은 가지려고 노력해서 얻어진다. 공부하고 연구하고 좋은 선생을 찾아 가르침을 받아서 지식을 늘린다. 책을 읽어서 지식을 넓히고 다른 사람에게서 들어서 그 사람의 경험을 내 것으로 만들고 자연을 관찰하여 아는 범위를 넓힌다. 지식은 가진 것이어서 다른 사람에게 줄 수가 있다. 가르치고 배울 수가 있다.
지혜자는 사물의 도리나 이치를 잘 분별하는 사람이다. 아는 것이 아니고 사물의 도리나 이치를 잘 분별하도록 ‘그렇게 되어있는’ 사람이다. ‘그렇게 되어있기 때문에’ 아는 것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아는 것이 없지만) 모르는 것이 없다. 있는 사물이나 일어나는 현상을 아는 것(지식)은 책을 보고 배우고 연구하고 관찰을 해서 얻어가질 수가 있지만 사물의 도리나 이치를 잘 분별하는 것은 사물의 근본이 되어 사물과 하나가 되어야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지혜는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수 없다. 가르치고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식자는 아는 것(가진 것)에 매여있고 가리워져 있다. 어떤 지식(이론)을 가지고 있으면 다른 지식(이론)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것을 말해 주어도 알아듣지 못한다. 천동설을 가지고 있으면 천동설의 오류를 지적하고 지동설이 옳다고 말해 주어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서양의학은 동양의학 이론을 인정하지 않는다. 종교적 신념은 다른 종교를 부인한다. 공산주의 이념을 가진 사람은 공산주의가 다 망할 때까지 공산주의가 옳다고 집착한다. 아는 것이 가리고 있어서 자기가 가져 아는 것과 다른 것을 보지 못하므로 늘 의문의심 속에 있다. 아는 만큼 속박되어있어 자기가 아는 것이 다 인 줄 알고 또 옳다고 생각한다. 마음이 작아 여유롭지 못하다. 낮아질 줄을 모르고 높아지려고만 한다. 그것을 드러내 인정받으려 하고 대접받으려 한다. 또 가져 아는 것에 속박되어있어 자유롭지 못하다.
지혜자는 가진 것(아는 것-지식)이 없어서 매여있지도 않고 가리워져 있지도 않다. 일체를 그냥 다 알아서 의문의심이 없고 막히고 걸림이 없다. 일체를 다 알아서 일체를 포용하고 수용한다. 일체의 매임이 없어 자유롭다. 대자유(大自由) 자체다. 가장 크고 높고 넓고 낮은 마음을 가진다. 그 자체이다.
지식자가 가진 지식은 모두 ‘있는 그대로의 세상(사물과 현상-진짜)’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자기의 ‘관념으로 보고’ 그것(가짜)을 가져 아는 것이다. 가짜를 가지고 그것에 매여있다. ‘나’를 속박하고 있는 가짜를 다 없애고 가짜를 가진 ‘나’마저 없애면 원래부터 있는(영원한) 진짜인 세상만 남는다. 진짜로 거듭나면 진짜인 존재가 되어 진짜인 영원한 세상에서 산다. 일체의 매임이 없어 대자유 자체로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