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정책 헛발질대신 제대로된 노동정책에 심혈을 기울여야
지난해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느닷없는 ‘정규직 과 보호론'이 발언으로 논란이 촉발된 이후 얼마전 정부가 비정규직 근로자의 고용기간을 최장 4년으로 늘리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소득격차를 줄이는 내용의 비정규직 대책을 발표했다.
2007년 시행된 비정규직보호법이 오히려 기간제`시간제`파견제 등 비정규직 근로자를 양산하고 있다는 비판적 여론이 높자 7년 만에 다시 개선책을 내놓은 것이다.
정부 대책에 따르면 35세 이상 비정규직 근로자(100만 명 추산)는 현행 2년에서 추가로 2년 더 계약을 연장할 수 있다.
4년이라면 해고 불안도 덜고 업무 숙련도가 높아져 정규직이 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현재 정규직 전환 비율이 20% 남짓인 점을 감안할 때 전환율이 조금 더 높아질 수는 있으나 한계도 분명하다.
정부안에 대해 노동계는 “계약 기간이 2년 더 늘어난다고 해도 어차피 비정규직”이라는 반응을 보인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일시적으로 고통을 줄여주는 진통제가 아니라 수술이 필요하다는 게 노동계의 입장이다.
정부가 파악하고 있는 전체 임금 근로자 중 비정규직 근로자는 607만명(32.4%)으로 근로자 셋 중 한 명꼴이다. 비정규직 문제는 고용 불안과 사회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핵심 쟁점이다.
정부가 노동개혁을 주요 정책과제로 제시하고 노동구조 개선을 서두르는 것도 저임금, 고용 불안 등 사회 불평등이 심각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에 따르더라도 우리나라 노동시장에서 비정규직은 이미 850만 명으로 전체 노동자의 절반에 가까운 수치이다.
월 임금총액 기준으로 비정규직은 정규직 임금의 49.9%를 받고 있다. 즉, 노동자의 절반은 비정규직이고, 이들은 겨우 정규직 임금의 절반 수준을 받고 있다는 뜻이다.
저임금 비정규직 양산이 사회 양극화의 핵심적 배경으로 지적된 것은 이미 오래된 일이다.
문제는 정부가 제대로 된 비정규직 대책을 제시하기보다 정규직의 해고요건 완화등 '노동유연성'을 높이겠다는 의지를 계속해서 보이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10년간 세계에서 가장 높은 노동시장 유연화, 비자발적 비정규직 양산 등으로 시장정책과 노동정책이 실패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만일 정규직의 처우를 비정규직과 다를 바 없이 저하시키는 것이 비정규직 해법이라는 식의 발상이라면 이는 무능하고 비겁하며 파렴치한 일이다.
2008년 이후 우리나라의 실질 노동생산성은 꾸준히 증가한 데 반해 실질임금은 정체했다.
같은 시기에 기업 저축률은 20조가 넘었다. 지난 5년 동안 기업소득이 19.1% 느는 동안 가계소득은 1.6% 증가에 그쳤고 국민소득 중 임금의 비중을 나타내는 노동소득분배율은 1996년 47.6%에서 2012년 45.8%로 하락했다.
결국 노동자의 몫은 적어지고 기업의 몫이 커졌다는 뜻이다.
삼성·현대자동차 등 20대 대기업 집단은 2009년부터 2013년까지 4년 사이에 사내유보금이 322조에서 588조로 82.6%나 늘었다. 대기업들이 잉여금을 투자나 고용에 재투자하는 대신 지나치게 많은 자금을 현금으로 쌓아놓고 있는데도 정부는 제대로 된 해결책을 세우지 못했다.
정부가 이런 문제에 대한 해결의지가 있다면 먼저 이 부분에 대한 답부터 찾아야 한다.
‘정규직의 비정규직화’는 답이 아니다.
정규직, 그들은 언제 잘릴지 몰라 전전긍긍하고, OECD국가 중에서 최장시간 노동시간에 허덕이는 그저 평범한 월급쟁이일 뿐이다.
부실한 사회안전망으로 인해 해고는 곧 이 사회에서 낙오자가 되는 길이기에 좋은 대학에 가서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기를 쓰다가 이제는 세계 최장의 노동시간, 최고의 산업재해율에 아무런 보호막도 없이 몸뚱이 하나로 버티고 있는 인생인 것이다.
만화를 드라마화한 ‘미생’이 주목을 받고 있는 저변에는 이 나라에서 팍팍한 인생을 살아가는 월급쟁이들의 애환이 있는 것이다.
정규직이 비정규직 보다 상대적으로 덜 뺏기는 것일 뿐이다. 비정규직이 못 가져가는 것이 정규직에게 가는 것이 아니라 소수 재벌에게 가는 것이다.
정부의 책임은 이런 ‘비뚤어진 운동장’을 바로 만드는 것에 있다.
국민들 사이를 분열시키고 끊임없이 ‘공공의 적’을 만드는 데 힘 쏟을 시간에 제대로 된 노동정책부터 내놓아야 한다.
규제 완화가 답이 아니라 제대로 된 규제를 제대로 집행하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의 정부의 역할임을 명심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