옳다고 믿는 것들 – 지식, 정보, 신념. 천동설(天動說)을 받아들이고 있으면 천동설에 매여서 코페르니쿠스가 천동설의 오류를 지적하고 지동설(地動說)이 옳다고 과학적인 근거를 들어서 설명하여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서양의학 지식을 배워 가진 양의(洋醫)는 한방(韓方)이론을 인정하지 않는다. 서양의학이론과 동양의학이론을 융합하면 보다 훌륭한 의학이론으로 승화될 수 있다는 것을 보지 못한다. 공산주의를 깊이 신봉하는 자들은 목숨을 걸고 공산주의를 사수(死守)하며 자본주의와 대립하다가 결국은 무너지고 말았다. 스스로의 문제를 제대로 보지 못한 결과이다. 유대교인들은 그들의 율법에 매여서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리스도로 인정하지 않는다.
색욕(色慾), 식욕(食慾), 물욕(物慾) – 온갖 욕심, 집착. 클레오파트라와 사랑에 빠진 안토니우스는 사랑에 눈이 멀어 국가의 안위(安危)는 뒷전이었다. 식탐을 하는 사람은 먹는 양이 지나쳐 건강을 헤치면서도 먹는 일에 열중한다. 미식가들은 맛있거나 진귀한 먹거리를 찾아 세상 끝까지라도 찾아 나선다. 식욕에 눈이 멀어 다른 것은 뒤로 미룬다. 인허가(認許可)를 담당하는 공무원이 뇌물(賂物)에 현혹되면 본분을 저버리고 법을 어기거나(賂物授受) 탐나는 물건을 보고 도심(盜心)이 발동(發動)하여 그것을 훔치다 들켜 범죄자로 전락하는 수도 있다. 맹목적인 자식사랑에 눈이 멀면 자식을 위해 법도 어기고 인륜을 저버리기도 한다. 내가 욕심 내는 것이 있으면 그것이 눈을 가리고 귀를 막아 옳은 말을 하여도 보지도 듣지도 못한다. 가지고 싶고 이루고 싶은 것에 깊이 빠지면 그것을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고향사람 만나면 고향시절 생각나고 자식이 속 썩이면 자식걱정으로 가득 차고 부모님이 편찮으시면 온통 부모님 걱정뿐이다. 회사가 부도위기에 처하면 사업걱정으로 가득 차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사람은 태어나 살면서 온 세상과 온 삶(사연, 인연, 배경, 지식, 정보)을 마음에 담아놓고 있다. 그것들은 모두 욕심의 산물이고 그것에 강한 집착을 가진다. 그것에 매여있다. 그래서 마음에 담아놓은 것이 문제가 되면 그것 외에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고 귀에 들리지도 않는다. 또 기존에 가진 것에 매여서 새로운 것을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여러 종교의 초창기에 많은 사람들이 박해를 받고 순교하기도 하였다. 학문의 세계에서도 새로운 이론이 나온 초기에는 받아들여지지 않은 일들이 많았다.
사람은 마음에 담아가진 것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마음에 담아놓은 것의 노예가 되어있다. 그런데 사람이 마음에 담아 가진 것은 모두 허상이다. 따라서 사람은 허상의 노예가 되어 허상의 삶을 사는 허상의 존재이다. 마음에 담아놓은 허상을 다 버리고 허상의 존재인 나마저도 놓을 때 눈이 잘 보이고 귀가 열려 잘 듣게 된다. 눈이 트이고 귀가 열린 사람은 잘 보고 잘 알아들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