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에는 이유가 필요해? 왜 그런지 알아?”
매일 새로운 지식들이 살아나고 죽어가는 급격한 변화의 복잡한 사회에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전혀 다른 문화적, 언어적, 역사적 배경의 멀티소사어티(Multi-society) 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단순한 소통이 아니라, 사람들을 이해하고 감동을 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먼저 복잡한 사회구조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구조주의 사회들 즉, 종교사회, 다른 문화사회, 다른 언어구조 사회, 소득에 따른 다른 구조사회 등 너무나도 다양한 구조들을 모두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개인, 집단, 국가, 역사적 욕망이 담겨 있는 문화구조 속 이미지를 읽으면, 그들이 추구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나아가 수많은 다양한 사회구조도 이해할 수 있다. 이를 위해, 허영적,위장적으로 꾸민 이미지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보고 그 사람의 본질적 이미지를 읽어내는 제대로 된 이미지 읽기를 해야한다.
살아 있는 가장 중요한 세계적 미술작가 중 한 사람, 안젤름 키퍼 (Anselm Kiefer, 1945-)의 눈을 통해 키퍼라는 개인와 독일이라는 나라, 2차 세계대전이라는 역사적 사건 등에 담겨있는 본질적 욕망의 이미지 엿보기를 해보도록 하자.
작업실에 서 있는 안젤름 키퍼
그는 독일의 도나우슁엔에서 태어난 화가이자 조각가이다. 1969년 자신이 유럽 곳곳에서 나치식 경례를 하는 장면을 찍은 자화상인 《지배(Occupations)》연작으로 서구 미술계를 경악에 빠뜨렸다.
2차 세계대전과 아우슈비츠라는 참혹한 비극을 감당해야 했던 유대인으로서, 당시 금기였던 나치를 작품으로 다루면서, 그 고통을 아름답고 밀도 높은 시어로 표현해 낸 20세기 독일의 대표 시인 파울 첼란의 유명한 시 "죽음의 푸가"의 영감을 받아 신비주의 카발라라는 신학적 개념, 그리고 독일의 역사, 유대인 학살의 홀로코스트 공포라는 주제, 코스모스의 원리와 같은 우주의 상징체계 등을 통해 현대를 표현하고 있다.
키퍼의 작품은 독일 낭만주의의 정신을 계승하면서 자연의 숭고함을 추상표현주의의 압도적 스케일에 구체적 이미지와 상징적 도상들을 부활시켜 매우 독특하고 강렬하게 다룬다. 인간과 우주, 신화와 선사(先史), 자연과 문명, 철학과 신비주의, 중세 연금술과 고대 유대교로 관심의 지평을 넓혀, 독일적 샤머니즘적 주술적 작업을 과감하게 시도하면서, 단호한 정치적 참여도 마다하지 않는다.
자기 시대의 고통과 공허를 극복하기 위해 예술과 생활 간의 대화와 신화와 역사의 상호작용에서 창조되는 긴장에 몰두하는 키퍼의 작품은 우리에게 ‘낯섦’과 ‘낯설지 않음’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이것은 그가 지식의 보편성과 과학적 방식과 예술적 방식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인간이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여기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을 끊임없이 던지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돌, 짚, 나무, 모래, 해바라기씨, 점토 등 자연재료나 납, 도료 등을 사용하여, 회화, 조각, 사진, 설치작업 등 다채로운 작업을 한다는 것이다. 비계나 융단 펠트천을 사용했던 요제프 보이스의 예술적 실천에 영향을 받은 듯, 이념을 표현하기 위해 익숙한 재료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전형적인 신표현주의 스타일이기도 하다.
키퍼는 현대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 중 한명으로서, 뉴욕 모마(1987)를 비롯하여 베를린 국립미술관(1991),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1998), 영국의 왕립아카데미(2001),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2006),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2007) 등 세계적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가졌고, 1995년, 2001년, 2008년 세 차례에 걸쳐 한국 국제갤러리에서도 개인전을 열었다.
지금도 세계 각지를 돌며 전시회를 개최하고 있는데, 그 중 인상깊은 몇 가지를 살펴보면, 인간의 흔적을 남겨 더욱 생동감있게 만들려는 시도들을 엿볼 수 있는 키퍼의 트레이드마크인 꽃이다. 그의 작품 속, 혼합매체 유화에 더욱 가까운 꽃을 그린 회화들, 그 꽃마저도 긴장감을 느끼게 한다.
안젤름 키퍼, <영리한 소녀들>, 1996
키퍼는 “美라는 것은 어려운 것이며, 아름다운 그림에는 항상 이유가 필요하다. 美에는 사유가 필요하다. 그리고 만약 이를 모르겐타우 플랜에 접목시킨다면, 모든 산업기반이 사라진 후에 독일의 각지에서 자라나는 꽃들을 보게 될 것이다”고 말했다.
“모르겐타우 플랜이 목표로 삼은 것은 정말이지 그 효과가 매우 완미했다. 히틀러와 고벨스는 독일국민들에게 전쟁에 참여하지 않으면 복종당하게 될 것이고, 농민으로 전락해 결국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안젤름 키퍼는 말한다. “나는 계획되었지만 실행에 옮겨지지 않기 때문에 모르겐타우 플랜을 좋아한다. 아이디어로만 남아, 일어나지 않은 사건들이 나에게는 매우 흥미롭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것은, 그가 1992년 프랑스 바르자크에 세운 35 헥타르의 총체적 예술 작품이라 할 수 있는 그의 거대한 스튜디오다. 키퍼는 이곳에 재료와 회화 작업을 위한 유리 건물, 창고, 지하실, 복도로 이루어진 체계를, 26년에 걸쳐 거대한 영지(35만㎡· 10만5800평)를 조성하고 건축물 수십 채와 설치미술 작품을 세웠다. 들판 전체가 거대한 예술 작품으로, 키퍼의 작품을 영구 보존하고 연구하는'키퍼 미술관'이 될 전망이다.
키퍼와 20년간을 친분을 쌓아온 아일랜드 화상은 “세간(世間)에선 그가 은둔자(隱遁者)라고 해요. 그렇다고 그가 한가하게 지낸다고 하면 오해예요. 그는 치열하게 살아요. 종일 조수들을 지휘하고 그들이 돌아간 뒤 늦도록 혼자 작업을 계속하지요"라고 말했다.
철저한 자신의 생활속에서 키퍼는 살기 위해 예술을 한다. "미술은 내게 살아 갈 가능성을 줬어요. 미술 없이는 못 살았을 거예요. 인간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물음을 끊임없이 하지만, 대답은 얻지 못하죠. 법학자와 과학자가 인간과 세계에 대해 설명하면 설명할수록 더 많은 질문이 솟아나지요. 나는 그에 만족하지 못했기 때문에 예술을 했어요…예술은 대답이 아니라 대답에 대한 환상을 주지요. 인간은 그 환상 없이 살 수 없고요."
역사에 대한 복합적이고 비판적인 참여를 두려워하지 않는 키퍼는 과거사와 논쟁하며 현대사에서 금기시하는 논쟁적인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그의 주제는 문명에서 독일이 한 역할에 초점을 맞추는 것에서 예술과 문화, 인간, 인류의 운명으로까지 확장되었다.
민족적 정체성과 집단 기억뿐 아니라 오컬트, 상징주의, 신학, 신비주의 같은 주제도 다루면서, 모든 사회에서 경험되는 아픔과 상처, 그리고 인류에 대한 사랑과 존경, 나아가 생명의 재탄생을 구현하고 있다.
"자기 존재에 대한 설명을 찾아 헤매되 그 해답은 영영 찾지 못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자 운명"이라고 말하는 키퍼. 우리가 존재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한다면 맨 끝에 도달하는 지점은 "우주 속으로 녹아 없어지겠죠. 사실 우리는 지금도 텅 빈 존재예요. (우리 몸을 구성하는) 원자(原子)는 중성자와 전자가 허공에 떠 있는 형태로 되어 있거든요. 이렇게 녹아 없어지는 것이 바로 정신성이에요. 우리는 사라지고, 더는 아무 것도 묻지 않게 되겠죠."
도발적일만큼 용감하고 적극적으로 역사와 현재의 윤리적 문제에 참여하면서 예술가로서 크고 복잡한 이슈들로 가득찬 우리의 세상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관객들과 함께 공감하고자 하는 그의 인간적 노력, 그것을 통해 우리는 그의 인류애를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나는 낙천주의자도, 비관론자도 아니다. 나는 절망적, 필사적이다. 희비극, 이것이 내가 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의 실존철학적 암시를 통해 그 깊이를 가늠케 한다.
유로저널칼럼니스트, 아트컨설턴트 최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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