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혼자 생겨나지(창조되지) 않았다. 그 무엇도 홀로 생겨나지 않았다. 사람도 만물만상도 모두 다른 것들이 있는 조건 속에서 생겨났다. 그렇게 생겨났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도(살아가는 것도) 다른 것들이 존재하고 살아가는 조건 속에서 어우러져 존재하고 살아간다. 또 그러한 조건 속에서 사라진다(소멸한다).
만물만상은 서로 어우러져 산다. 다른 것들이 있어 내가 있고 또 만물만상이 있고 만물만상은 서로가 있어 존재한다. 창조주가 있어 내가 있고, 무한한 우주가 있어 내가 있고, 만물만상이 있어 내가 있고, 모든 이들이 있어 내가 있다. 일체가 나를 ‘있게 했고’ ‘살게 한다’. 일체가 생겨나게(태어나게) 하는 인(因), 생겨나서 존재하게(살아가게) 하는 인(因), 소멸하게(죽게) 하는 인(因)으로 맺어져 있다. 모두가 인으로 맺어진 관계(인연)이다. 현재 존재하고 살아가는 일체가 인(因)으로 맺어져 있고 그 맺어진 관계 속에서 과(果)가 있다. 인으로 맺어진 그 어떠한 것도 한 순간의 머무름 없이 흐르고(변하고) 있어 끊임없는 인과(因果) 속에서 인과로 나고 존재하여 살고 사라진다.
그래서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 어우러져 산다. 서로 인연을 맺고 사는데 선연(善緣)을 맺고 살기도 하고 악연(惡緣)을 맺고 살기도 한다고 한다(사실은 선연도 악연도 없다. 사람의 마음에 그것이 있어 있는 것이다). 세상에서 말하는 선연을 맺고 사느냐 악연을 맺고 사느냐 하는 것은 나에게 달린 문제이다. 만물만상과도 마찬가지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마음세계를 가지고 있다. 그 마음세계는 다 다르다. 마음세계가 다르다 보니 세상과 사물을 보는 관점이 다르고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이 다 다르다. 그런데 사람은 자기중심적이어서 상대방이 자기의 마음세계에 맞추어주기를 바란다. 모두가 다 그러하다. 마음세계가 다 다른 사람들이 제각기 상대방이 자기의 마음세계에 맞추어주기를 바라니 서로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부모자식간도 그러하고 형제자매간도, 부부간도 그러하고 친구간에도 다 그러하다. 세상에서는 서로 양보하여 이러한 갈등이 드러나지 않고 서로의 이익에 도움이 되면 선연(善緣)이라 하고 갈등이 드러나서 서로 등돌리고 이익이 되지 않으면 악연(惡緣)이라 한다. 그러나 겉으로는 선연으로 보여도 그 내면을 보면 갈등이 있다. 근본적으로 자기중심적인 자기만의 마음세계를 가지고 그것을 굳게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 사는 세상에 참된 선연(善緣)은 없다.
선연이다 악연이다 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에 있는 것이다. 사람이 마음을 비워 제 각각인 마음세계를 다 없애면 자기중심적인 마음에서 벗어나게 되어 일체의 갈등이 없어지고 따라서 (악연이 없이) 모두가 하나로 어우러져 아름다운 삶을 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