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사람은 달을 부정적으로 본다. 밝은 태양 앞에서는 숨어있다가 어두워지면 슬그머니 나타나는 비겁하고 음흉스런 존재로 본다. 동양에서는 달을 긍정적으로 본다. 계수나무 아래서 옥토끼가 떡방아를 찧는, 많은 시인들이 신비롭고 아름다운 달을 노래하였다. 달의 실상은 하나인데.
즐거우면 세상이 밝고 즐겁게 보인다. 반대로 우울하면 세상이 어둡고 우울하게 보인다. 왕방연은 영월 깊은 산중 유배지에 단종을 남겨두고 돌아오는 길에 강가에 이르러 ‘저 물도 내안 가타야 우러 밤길 예놋다’ 하고 탄식하였다. 자기의 마음이 통한에 젖어 그냥 흐르는 물 소리를 듣고 ‘저 물도 내 마음과 같아서 울며 밤길을 흐른다’고 하였다. 세상은 즐겁지도 우울하지도 않고 그냥 있다.
같은 새 소리를 듣는데 즐거울 때 들으면 ‘새가 노래한다’고 하고 슬픈 일이 있을 때 들으면 ‘새가 슬피 운다’ 한다. 새는 즐겁거나 슬퍼함이 없이 그냥 우는데.
예술가들이 보는 세상은 제 각각이다. 인상파 화가들이 그린 그림을 보면 세상과 사물을 보는 눈이 다 달라서 색채의 표현이 같은 사람이 없다. 소설가나 시인이 노래하는 세상사도 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 세상은 하나인데.
사람은 즐거운 마음, 우울한 마음 … 자기의 온갖 마음이 투영(投影)된 세상을 본다. 세상을 있는 대로 보지 못한다. 현재 자기가 있는 것도 마음이 투영된 세상 속에 있다. 세상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마음세계 속에 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아온 것도 세상이 아닌 마음세계에서 살아온 것이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있는 세상을 오감으로 인식하자마자 –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 맡고 촉감으로 느끼는 순간 그것들을 마음에 담아놓는다. 이것이 마음세계이다. 마음세계는 실제의 세상을 복사(複寫)한 것, 없는 허상(虛像)이다. 마음세계는 저마다 다 다르다. 전 세계 인구 65억의 마음세계가 다 다르다. 따라서 65억 명이 보는 세상은 다 다르다. 65억 개의 세상으로 본다. 65억 개의 세상 모두가 허상이다.
사람은 있는 실상(實像)의 세상에 살지 못하고 없는 허상(虛像)의 자기 마음세계에 살고 있어 있는 대로의 세상을 보지 못하고 있는 대로의 세상을 알지 못한다. 허상의 세상을 보고 허상의 세상을 알고 있다. 사람은 바로 보고 바로 아는 것이 없다. 허상의 마음세계 속에서 깨어나 실상의 세상으로 나오지 못하고 미몽(迷夢) 속에서 헤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