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이 아름다운 산 중턱 양지바른 곳에 아담하지만 꽤 넓은 호수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깊은 산중에 있어서 인적이 거의 없고 고즈넉했습니다. 이따금 목마른 토끼나 노루가 목을 축이고 가기도 하고 이름 모를 작은 산새가 날개를 파닥이며 멱감는 일 말고는 호수의 정적을 깨는 일이 없습니다.
봄이면 온갖 꽃이 피어 호수 가를 아름답게 장식하고 꽃 향기에 이끌려온 나비가 호수에 비친 꽃에 앉으려다 물에 빠지기도 하였습니다. 여름이면 더위에 지친 다람쥐가 호수 가로 쪼르르 달려와서 온 몸을 적시고 노루가 첨버덩 물에 뛰어들기도 합니다. 더위를 못 이긴 숲 속의 짙은 녹음과 하늘이 통째로 호수에 빠져듭니다. 가을에는 울긋불긋 곱게 물든 단풍이 맑은 호수 물에 비치어 호수를 물들이고 단풍잎이 잔잔한 호수 위를 떠 다녔습니다. 겨울이면 순백의 하얀 세상이 깊은 침묵 속에 봄을 기다립니다.
어느 날 호수 가 산에서 돌이 데굴데굴 굴러 오더니 호수에 풍덩 떨어졌습니다. 잔잔한 호수에 파문이 일었습니다. 처음 겪는 일이라 호수는 깜짝 놀라서 자기도 모르게 돌을 힘껏 공중으로 밀어냈습니다. 하늘 높이 튕겨 올라간 돌이 다시 풍덩 호수로 떨어졌습니다. 조금 전에 일어났던 파문에 새로운 파문이 가세하여 더 큰 파문이 일어나고 서로 뒤엉켜 복잡해졌습니다. 호수는 당황하여 떨어지는 돌을 계속 밀어냅니다. 밀어낸 돌이 다시 떨어질 때마다 파문이 점점 커지면서 넓게 퍼져나갔습니다. 풍덩 떨어지면 밀어내고, 떨어지면 다시 밀어내고 ….. 파문을 일으킨 돌을 밀어내면 밀어낼수록 파문은 커졌습니다. 파문이 넓게 넓게 퍼지다가 급기야는 호수 전체로 퍼져나가서 호수 물이 통째로 출렁거리기에 이르렀습니다. 떨어지는 돌을 밀어내느라 지친 호수는 기진맥진하여 풍덩 떨어지는 돌을 그냥 내버려두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호수의 파문이 잦아들었습니다. 한참 후에 평온을 되찾은 호수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돌을 받아들이지 않고 밀어내어 그 돌이 다시 떨어질 때마다 파문이 커졌었는데 지쳐서 떨어지는 돌을 밀어내지 않고 그냥 받아들이자 파문이 제풀에 없어졌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제 호수는 돌이 떨어져도 겁내지 않고 돌을 받아들였습니다. 처음에는 풍덩 소리를 내며 잠시 파문이 일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잠잠해졌습니다.
호수는 언제나 그냥 있습니다. 노루가 다가와 꿀꺽꿀꺽 물을 마셔도, 다람쥐가 온몸을 물에 적시고 부르르 몸을 떨어도, 산새가 물을 첨벙거리며 멱을 감아도, 주먹만한 돌이 풍덩 굴러 떨어져 파문이 일어도, 폭풍이 몰아쳐 흙탕물이 흘러 들어와도, 가뭄에 호수 물이 줄어들어도, 겨울에 북풍한설(北風寒雪)이 불어와 호수 물을 꽁꽁 얼어붙여 옴짝달싹 못하게 하여도 언제나 변함없이 그냥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