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는 섭리대로 태양의 둘레를 돌면서 존재하고 있다. 태양계의 세 번째 자리 금성과 화성 사이에서 수십 억년을 돌아왔고 앞으로도 수십 억년을 돌 것이다. 섭리대로 그냥 돌고 있다.
물은 섭리대로 흐른다. 운동에너지가 많은 곳(높은 곳)에서 운동에너지가 적은 곳(낮은 곳)으로 흐르고 또 흘러 바다에서 균형을 이룬다. 섭리를 거슬러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흐르지 않고 흐를 곳을 가려 흐르지도 않는다. 바위가 물길을 막으면 바위를 피하여 돌아서 흐르거나 흐름을 멈추고 고였다가 넘쳐 흐른다.
공기도 섭리대로 흐른다. 공기가 많은 곳(고기압)에서 공기가 적은 곳으로 흘러 균형을 이룰 때까지 흐른다.
아프리카 초원의 사자는 섭리대로 산다. 배가 고프면 먹이를 사냥하여 배를 채우고 배가 부르면 맛있는 먹이가 곁에 있어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또 큰 먹이를 사냥했을 때는 먹을 만큼 먹고 나면 하이에나나 독수리가 먹도록 자리를 비켜준다.
숲 속의 토끼는 풀을 뜯어먹다가 호랑이를 만나면 죽을 힘을 다하여 도망치다가 잡아 먹히기도 한다. ‘꽥’ 소리 한 번 지르고 끝난다. 새끼에게 ‘분하고 원통하다. 네가 커서 어른이 되거든 이 원수를 꼭 갚아라’ 하지 않는다. 그냥 섭리대로 잡아 먹힐 뿐이다. 또 토끼를 잡아먹은 호랑이는 ‘내가 나쁜 짓을 했구나. 힘이 약한 토끼를 괴롭히고 살생을 했구나’ 자책하지도, 죄의식을 가지지도 않는다. 배가 고파서 그냥 섭리대로 토끼를 잡아먹었을 뿐이다.
숲 속 나무는 섭리대로 상생(相生)한다. 햇빛을 좋아하는 양지식물이 그늘을 만들어 주면 그늘 아래 햇빛을 싫어하는 음지식물이 자리하고 음지식물이 햇빛을 차단해 주면 습지식물이 자란다. 자리다툼하지 않고 섭리대로 산다.
진딧물은 개미가 좋아하는 분비물을 분비해주고 개미는 먹을 것이 많은 나무로 진딧물을 옮겨준다. 서로 돕는다는 생각 없이 그냥 섭리대로 그렇게 산다.
사람은 가짐의 마음이 있어 서로 많이 가지려고 싸우고 빼앗고 짓밟고 죽인다. 더 좋은 것 가지려고 싸운다. 가진 것이 넘쳐나 썩어 문더러 지는데도 더 가지려고 안달이다. 허기진 마음으로 가지고 또 가지고 채우고 또 채우며 상극(相剋)의 삶 산다. 자연의 조화를 깨뜨리며 산다. 자연의 질서를 파괴하며 산다. 섭리(창조주의 뜻)를 거스르며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