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물질인 몸과 정신작용을 하는 마음으로 되어있다. 우리 언어습관에도 ‘요즘 몸은 편한데 마음이 고달프다’라는 말이나 ‘일이 많아서 몸은 고달파도 마음은 편해’ 라는 말을 보면 ‘나’라는 존재를 몸과 마음의 두 가지 요소로 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서양에서 ‘Sound mind, sound body’라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사람이 사는 것은 마음이 있어 산다. 태어나서 이 순간까지 먼저 마음을 먹고 (그 먹은 마음이) 마음먹은 대로 몸을 부려서 마음먹은 것을 실행하는 것의 연속이었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 이와 같다. 마음을 먹지 않으면 몸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식물인간은 목숨만 붙어 있을 뿐 삶을 살지는 못한다. 식물인간 옆에 식물 개가 누워 있다면 식물인간이나 식물 개나 다를 것이 없다. 식물인간에게 마음이 돌아오면 비로소 마음먹은 대로 몸을 부려서 삶을 산다. 그러므로 사람이 사람으로서의 삶을 사는 것은 마음이 사는 것이다. 마음이 주인이고 몸은 주인의 뜻을 실행하는 종이다.
그러하기 때문에 몸이 죄스런 마음을 먹고 몸을 부려 마음먹은 것을 실행하지 않아도 마음으로 죄스런 마음을 먹는 것만으로 죄가 되고 또 업(業)이 되는 것이다.
사람은 가짐의 마음으로 온갖 것을 가지고 산다. 가지고 또 가지고, 아무리 많이 가져도 만족하지 못하고 더 가지려 하고 남이 더 가진 것을 보면 남보다 더 가지려고 욕심부린다. 문명의 발달도 그러한 욕심을 채우기 위해 추구하는 과정의 산물이다. 가지려 하는 사람이 갈수록 늘어나니 경쟁이 더 치열해지고 세상은 점점 더 각박해질 수밖에 없다. 또 가지면 그 가진 것에 매여서 가짐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그것을 지키려 노심초사(勞心焦思)하다 보면 그것이 짐이 되어 마음과 몸이 병들어 지칠 대로 지치고 짐 지고 산다. 가져서 짐 지고 가진 것을 지키려고 짐 지고 또 가지려 하는 마음이 있어 짐 지고 산다.
무소유를 말하고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무소유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 것이 아니고 필요 없는 것을 가지지 않는 것’이라고 하였다.
진정한 무소유는 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을 가지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다. 또 가지고 있지 않다고 무소유라 할 수 없다. 마음으로 가지느냐 아니냐 하는 것이 문제이다. 어떠한 것을 가지고 있지 않아도 마음이 그것에 머물고 있다면 그것은 무소유가 아니다. 또 어떠한 것을 가지고 있어도 마음이 그 가짐 속에 있지 않다면 무소유이다. 그러므로 무소유는 마음의 문제이다. 가지되 가짐 속에 있지 않으면 그것이 진정한 무소유이다. 마음을 다 비워 일체의 마음이 없어지면 가져도 가짐 속에 있지 않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