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현들이 보여준 삶은 무소유의 삶이다. 예수님도 석가모니도 가족과 집을 다 떠났다. 걸친 옷과 신고 있는 신발, 고달픈 여행길에 지친 몸을 지탱해줄 지팡이가 전부였다. 예수님이 사흘 뒤 예루살렘에서 로마 병사에게 잡혀 죽을 것을 알면서도 예루살렘으로 간 것이나 석가모니가 3개월 후에 열반에 들 것임을 알면서도 죽음의 길을 떠난 것은 삶과 죽음은 물론 자기자신마저도 버린 것이다. 일체의 가짐이 없는 무소유의 삶을 몸소 보여주었다.
또 사람들에게 처자와 전토를 버리고 나를 따르라 하고 먼 길 떠나는 제자들에게 지팡이와 밥그릇, 입고 있는 옷 한 벌만 가지고 떠나라고 말한 것도 무소유의 삶을 살도록 당부하는 말이다. 또 가진 것이 적은 사람들을 제자로 삼았고 제자가 되고 싶으면 다 버리고 오라고 말하였다. 부자 청년에게 가진 재산을 가난한 이웃에게 나누어주라고 하고 겉옷을 달라고 하는 사람에게 속옷까지 벗어주라고 말하였다.
왜 성현들이 무소유의 삶을 사는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무소유의 삶을 살도록 말해주었을까? 그것은 가짐(소유)을 가지면 그것에 매여서, 가진 것에 머물러서 천국과 극락에 갈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천국과 극락은 일체의 가짐이 없는 곳임을 알기 때문이다. 자기자신마저도 다 버려야 함을 알기 때문이다.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 구멍을 빠져나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하였다. 가짐을 가지고는 천국에 가지 못한다는 말이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어 천국을 가진다는 말은 천국은 가짐이 없는 곳이어서 일체의 가짐의 마음이 없어야 갈 수 있다는 말이다. 욕심과 집착을 버리라는 말도 가짐의 마음을 다 버리라는 말이다. 가짐의 마음이 없으면 가지고자 하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므로 가질 일도 없을 것이다. 모두 소유(所有)는 가짐의 마음에서 오기 때문에 그 마음을 버려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소유하게 만드는 근본 뿌리를 뽑으라는 말이다.
왼손이 하는 것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이나 세상사람들에게 40여 년 동안 설법(說法)을 하고도 설(設)한 바가 없다고 하는 말이 모두 일체의 했다는 마음이 없음을 뜻한다. 해도 행함 속에 있지 않은 경지는 일체의 마음이 없을 때 가능하다. 소유하여도 소유함 속에 있지 않으면(가짐의 마음이 없으면) 무소유이다. 소유하지 않아도 가짐의 마음이 있다면 그것은 무소유가 아니다.
마음이 참으로 가난하여 일체의 가짐이 없고 마음이 가난한 나마저 가지지 않을 때(나마저 버렸을 때) 그것이 바로 무소유이다. 무소유일 때 일체의 가짐이 없는 천국과 극락을 가질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