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리에 심하게 어긋나는 부당한 짓을 저지르는 사람을 보고 ‘하늘이 무섭지 않느냐?’고 하기도 하고 ‘하늘이 가만 있지 않을 것이다’ 라고도 한다. 그리고 ‘천벌(天罰)을 받을 것’이라고 하기도 하고 ‘천인(天人)이 공노(共怒)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힘이 없어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어찌할 방도가 없는 사람은 ‘하늘이 어찌 이리도 무심한가?’ 하고 한탄한다. 또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자연재해(가뭄, 대홍수, 지진 등) 앞에서 사람들은 ‘하늘이 노하였다’고 하면서 하늘의 노여움을 풀기 위해 하늘에 제(祭)를 올리기도 한다.
당연히 되어야 마땅한 일이 아무리 하여도 풀리지 않는 어려움에 부딪치면 하늘을 원망하기도 한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터무니 없이 진실을 감추거나 거짓말을 하는 사람에게 ‘하늘이 다 안다’거나 ‘사람은 속여도 하늘은 속이지 못한다’고 한다.
아무리 결백함을 주장해도 사람들이 믿지 않으면 ‘하늘은 나의 결백을 알 것’이라거나 ‘(결백한지 아닌지를) 하늘에 물어보자’라고 말하기도 한다.
정성이 지극하면 ‘하늘이 감동한다’(至誠이면 感天)고 하고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도 있다.
남달리 신분이 고귀하거나 어느 누구도 할 수 없는 큰일을 할 사람을 보고 ‘때가 되어 하늘이 낸 사람’이라고 한다.
마음이 착하기 그지없는 사람을 보고 ‘그 사람 마음이 천심(天心)’이라고 말한다. 또 삶을 고결하게 사는 사람을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이라고 한다.
왕에게 ‘민심(民心)이 (만인의 왕이라 할지라도 따르지 않으면 아니 되는) 천심(天心)’이라고 울면서 간(泣諫) 하여 백성의 소리를 귀담아듣고 존중하도록 말한다. 그리고 하늘에 제를 올려 감사함을 표하는 것이 왕이 해야 할 큰 일이었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도국(道國)이어서 오늘날 쓰는 말에 그 흔적이 남아있다. 만상만물의 근원인 하늘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 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