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지사 사연과 인연도 마찬가지다.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이 오로지 가난을 벗어나겠다는 일념으로 필사적으로 온갖 노력을 하면서 살았다. 세월이 흘러 가난으로부터는 벗어났으나 건강이 나빠진데다 아무도 (자기가 기대하는 만큼) 알아주는 사람 없이 쓸쓸한 노후를 병고에 시달리며 보내는 경우도 있다. 찢어지게 가난하여 겪은 온갖 사연(멸시당하고, 천대받는 등)을 마음에 담아두어 가난을 벗어나야겠다는(한을 풀어야겠다는) 데에만 온통 마음이 매여 건강도 돌보지 않고 인간관계도 도외시하고 살아온 결과이다.
어떤 사람을 삶의 구렁텅이에 빠뜨린 친구가 있다. 그 친구의 사기에 놀아나고 협박에 시달리느라 억울하고 분하여 치를 떨었고 밤잠을 설친 적도 많았다. 결국은 사업도 망하여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이민 생활 십여 년에 어느 정도 안정적인 생활 기반을 잡고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동창회에 나갔다가 그 때 그 친구가 미국에 온다는 말을 들었다. 말을 듣는 순간 그 친구와의 옛 사연이 되살아나서 밤잠을 설치고 불안에 떨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에 애절한 마음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얼마 동안은 애통한 마음에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하고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기도 하였다. 지난날 같이 지낸 행복한 날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고 또 지나가고 … 세월이 흘러도 사랑하는 이와 함께 한 순간들이 새록새록 되살아난다. 실체인 사랑하는 사람은 이미 나를 떠났지만 함께 살면서 있었던 사연에 내 마음이 머물고 있어 그 사연이 나를 붙든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삶의 의욕을 잃고 목숨을 끊기도 한다.
장래의 계획, 희망, 꿈도 마찬가지다. 그것에 마음이 머물고 있으면 그것에 매여서 자유롭지 못하다.
사람이 마음에 담아두는 것은 삶의 사연과 인연, 장소, 지식, 미래의 계획, 바램 등 – 살면서 보고, 듣고, 배운 모든 것들이다. 사람은 이와 같이 마음에 담아둔 것들에 매이고 갇혀있다. 사람은 이것을 피할 수가 없다. 그러나 마음을 비우는 방법으로 마음에 담아둔 것들을 – 마음이 머물고 있는 것들을 – 다 없애 보면 대자유 자체가 된다. 그리고 지혜가 드러나서(지혜 자체이어서) 참세상을 깨친다. 아는 것이 없지만 다 안다. 완전한 무소유의 경지가 되면 일체를 다 가진다. 다 가지되 그 속에 있지 않다. 마음을 비워 보면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