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가 무엇일까?
서울의 도심 세종로 광화문 네거리를 지나는 버스안이었다.
이순신 장군상 옆으로 '세월호에 아직 9명이 남아있다', '그들이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들을 돌아오게 해야 한다' 라고 쓰여진 많은 현수막들이 걸려 있었다.
세월호 관련 데모 현장에서 나는 문득 신뢰와 믿음이라는 말을 떠올렸다. 그리고 최근 신뢰와 관련한 TV보도가 생각났다.
3월 29일 비가 오는 날씨에도 수만 명의 싱가포르 사람들이 모여 있던 장면이었다. 리콴유 전 총리의 장례식이었다. 25일부터 전국 18곳에 설치된 추모소가 그를 위한 150만명이 넘는 추모객들로 넘쳐났었다고 한다.
이날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토니 애벗 호주 총리,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까지 장례식에 참석했었단다.
리콴유 전 총리는싱가포르의 초대 총리로, 1965년 말레이시아 연방에서 탈퇴한 싱가포르를 25년간 집권했다. 그는 단시간에 싱가로프를 세계적인 경제 강국으로 부상시켰다는 평가와 함께 '국부' 로 불리운다.
전 싱가포르 총리 리콴유
집권 기간 집회와 언론의 자유를 지나치게 통제했다는 비판과 장남 리셴룽의 총리 취임에 따른 정치 세습 논란도 있지만, 그의 장례식은 리콴유 전 총리가 싱가포르 국민들에게 얼마만큼의 신뢰를 얻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신뢰와 믿음이 무엇일까? 우리는 자신을 얼마나 믿고, 다른 사람들을 얼마나 신뢰하며 살아 가고 있는가? 또한 우리 사회는 사회 구성원들을 얼마나 믿고 신뢰하고 있는가? 사회와 국가는 우리에게 얼마만큼의 신뢰감을 주고 있는가?
이순신장군을 소재로 만든 천만 관람객을 돌파하며 대한민국을 흔들었던 영화, '명량' 도 마찬가지로 실망스러웠다. 우리들의 신뢰를 져버린 것이다.
영화 ‘명량’
영화의 완성도에 있어 졸작이냐 명작이냐는 많은 논란을 일으키며, 새삼스러울 거 하나없는 전쟁이야기에 왜 대한민국이 들썩일까, 또 뻔한 역사적 사실을 가지고 영화를 만들면서 감독은 도대체 무엇을 말하고 싶은걸까 궁금해서 영화를 관람했었다.
이순신장군이 영웅이었다? 독버섯처럼 퍼져버린 두려움이 문제이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용기를 내자? 백성, 한 사람, 한 사람이 역사의 주역이다? 잊지 말아야 할 역사?
감독이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 무엇이든, 그는 관람객들을 믿지 않았었다. 두시간 가까이 장엄한 음악과 잔인한 전쟁신으로 이미 관객들을 비장함속으로 끌어들이고도, 마지막에 갑자기 느닷없는 대사들을 퍼부었다.
"후손들이 이 전쟁을 기억할까?", "기억못하면, 호로 자식이지!"
관객들을 믿지 못하고, 확인사살을 하는 듯한 이 장면에서 나는 너무 실망스러워 할 말을 잃고 말았었다. 영화는 인간의 삶을 표현하는 하나의 종합예술이기에, 인간에 대한 애정과 믿음, 그리고 신뢰가 밑바탕에 깔려있어야 진정으로 사람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좋은 영화가 될 수 있다.
세월호 등 리더쉽 부족에 따른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 요즘, 영웅을 기대하며 스스로를 위로하는 일반시민들, 그리고 영웅을 갈망하는 정치권 사람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대한민국의 가슴 아픈 현실속에서 우리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명량' 감독이 간과한 바로, 인간에 대한 '사랑' 과 '신뢰' 일 것이다. 역사속 이순신 장군이 영웅이라 할 수 있는 그 밑거름 말이다.
신뢰와 믿음을 쌓기 위해서는 개개인, 사회, 국가, 모두 먼저 진정한 소통을 해야 한다. 그 기회를 다시 만들고자, 이번에는 대대적인 광고와 함께 엄청난 돈을 들여 '마크로스코전' 을 준비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것도 또한 수포로 돌아갈 염려되는 상황이다.
로스코 전시회장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그림을 보기 앞서 비디오시청부터 시작되었다. 벽에 빼곡히 씌여진 설명들, 오디오를 통한 그림설명, 온 전시장에 울려퍼지는 클래식 음악 등 로스코 작품감상을 위한 참 많은 서비스들이 주어졌다.
예술의 전당 - 마크로스코전
분명 그의 삶과 철학, 그것을 통한 그의 작품세계의 이해를 돕고자 하는 시도일 것이다. 또한 미국텍사스 휴스턴에 있는 로스코 채플을 재연한 듯한 방도 사람들이 로스코를 더 잘 이해하게 하기 위한 회심의 일환을 것이다.
그러나 설명을 읽고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 오디오 설명에 집중한 채 고개를 숙이고 있는 사람들은 과잉 친철에 노출되어 자신의 감정을 생각할 여유조차 없어 보였다. 나를 투영하는 거울인 그림을 통해 또 다른 나를 만나고 상상의 나래를 펼쳐 스토리를 만들 시간이 없는 것 같았다.
‘그림을 잘 몰라요’라며 스스로 그 기회를 포기하는 사람들과, ‘사람들이 무슨 그림을 이해하겠어’라며 아예 기회를 주지 않는 사람들, 모두 믿음과 신뢰를 상실한 사람들이다.
로스코 전시를 함께 관람한 한 학생이 “치유를 타이틀로 한 전시이기에, 저는 로스코의 작품들을 통해서 어떤 힐링같은 것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했었어요. 하지만, 오히려 한 인간으로서의 로스코를 먼저 위로하고 안아주고 싶은 마음을 느꼈어요”라고 했다.
인간이 인간을 마주함에 있어서 설명과 설득보다는 진실된 자세가 먼저일 것이다. 그런 다음,
우리는 그 믿음의 눈으로 진심을 보고 신뢰를 쌓아가게 된다. 관객과 자신의 작품사이에 아무것도 두지 말라고 했던 로스코의 말은 이런 의미일 것이다.
그림을 통해 스스로의 이야기부터 만들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재미는 그 어떤 것과비교할 수 없는 즐거움이다. 이를 위해 먼저 관람객들은 스스로를 믿고, 큐레이터들은 관람객을 믿어야 할 것이다.
내가 나를 믿지 않는데 누가 나를 믿어주겠는가? 사회가 우리에게 신뢰를 주지 않는 것을 탓하기앞서, 자신을 신뢰하고, 그런 다음 서로서로 그 신뢰를 쌓아간다면, 머지 않아 우리가 기대하는 그 믿음이 있는 사회는 곧 올 것이다.
유로저널칼럼니스트, 아트컨설턴트 최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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