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이 아닌 무상 급식, 국민적 합의 통해 정치적 악용 막아야
지난 1일부터 경남도 내 학교 급식이 유상으로 전환됨에 따라 갖가지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당장 학생 수 30명 이하 소규모 학교가 급식소 자체를 유지하기 어려운 처지에 빠졌다고 한다.
초등학교 80곳, 중학교 29곳, 고등학교 1곳이 그 대상이다. 가뜩이나 적은 학생 수인데다 급식 유료화로 적잖은 학생들이 도시락이나 가정식으로 식사를 해결하다 보니 수지를 맞추기 어려워진 상당수 급식 업체들이 급식소 운영을 그만둘 예정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전교생들이 도시락을 싸 다녀야 하는 곤란한 지경에 이른다.
급식소 운영이 중단되면 영양사, 조리사(조무원) 등 관련 종사자들이 일자리를 잃는 예기치 못한 일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여기다 학교별로 급식비가 큰 편차를 보이는 것도 문제다. 학생 수가 많은 학교와 적은 학교 사이에 한 끼 급식비가 최대 1천 원 이상 차이가 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적 어려움이 큰 농어촌지역일수록 급식비 부담이 더 늘어나는 모순이 발생하는 셈이다.
이처럼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후유증 외에 지역사회의 극심한 대립과 분열도 예삿일이 아니다. 유·무상 급식을 놓고 보수와 진보 진영 사이에 불필요한 논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특히 4월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은 학생 밥그릇을 정쟁의 도구로 삼으며 논란을 확대재생산하는 꼴사나운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고소·고발도 잇따르고 있다.
경남에선 홍 지사를 규탄하는 시위가 연일 이어지고 진주 한 초등학교에서는 학부모들의 '솥단지 급식'이 이틀째 진행됐다. 초등학교 4학년 학생이 쓴 유상급식으로 괴롭다는 일기도 온라인에서 화제다.
게다가 한 경남도의원은 무상급식 폐지에 대해 항의 문자를 보낸 학부모에게 문자 남발하는 돈으로 급식비 당당하게 내라며 막말하여 파문이 거세다. 학부모를 이해시켜도 부족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그런 말을 했다니 자질을 의심케 한다. 무엇보다 밥 한 끼 먹는 문제로 어른들끼리 싸우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어린 학생들을 생각하면 참담하다.
일련의 사태를 보면 한 쪽에서는 학생들 밥도 못 먹이냐는 비판과 또 한 쪽에선 공짜 밥만 원한다며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다.
한편 이 사태의 중심인 홍준표 도지사는 지역 여론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무상급식 중단을 비판하는 학부모 단체를 오히려 '종북 세력'이라 단정 짓고, 입장을 바꿀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아이들 밥 한 끼 먹이는 데 종북 운운하며 부정적 인식을 심으려 드는 건 너무 앞서나간 발상이 아닐 수 없다. 광역자치단체장으로서 무상급식 중단에 대한 사과와 그래야만 하는 이유를 성실하게 설명하고 학부모들을 이해시키는 것이 옳은 태도이다.
이처럼 무상급식과 관련해 입장 대립이 첨예하게 나타나는 이유는 본질적으로 '무상급식'을 '의무교육' 즉 '의무급식'에 포함시킬 것이냐 아니냐에 대한 인식 차이 때문이다. 반대론자들은 급식을 여타 사회복지의 일환으로서 제공하되 선별적 복지의 차원이어야지 왜 부유층이나 불필요한 학생들에게까지 제공을 해서 세금 낭비를 하냐는 거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초·중학교 교육이 의무교육인 만큼 학교 급식은 영양교육의 일환으로 제공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무상급식이라는 용어 자체도 의무급식으로 바꿔 의무교육에 포함시킨다면 이 논란 자체가 불필요해진다. 학교급식은 용어가 무상이지 사실상 무상도, 공짜도 아니다.
시민이 내는 세금으로 제공하는 것이다.
경남도는 지난 8년간 무상급식을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이를 파기했다.
도에서 학부모들이 인정할 수 없는 이유를 들먹이며 ‘강제로’ 예산 지급을 중단했다는 것이 현 사안에서의 중요한 쟁점이다. 복지는 나라에서 시혜적으로 베푸는 것이 아니라 국민 세금으로 이루어진다.
4대강이나 자원개발 등에 수십 조 원을 날리고 국민연금까지 건드려 가며 헛돈을 낭비한 것에 비하면 아이들의 밥 한 끼는 그다지 많은 비용이 아니다. 아이들에게 밥 안 주려고 어른들끼리 싸우는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말자.
무상급식에 대한 사회적 국민적 합의를 이뤄 더 이상 이를 정치적으로 악용하려는 의도는 없어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