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거꾸로 보는 것 ...
이건 단순히 내가 할 수 있는 것일 뿐이다
"좀 과격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죠. 전 한 번도 파격을 시도해본 적이 없어요. 다만 앞서 가려했을 뿐입니다" 라고 말하는 일흔다섯 살 무용수 홍신자씨, 그녀의 공연 포스터를 우연히 보았다.
홍신자 공연 포스터
"나이가 들수록 명상의 요소가 많아진다, 죽을 때까지 창작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여전히 뜨거운 열정을 가진 그녀는4월 10일 옛 공간사옥 '아라리오 뮤지엄 인 스페이스' 지하 1층 '공간소극장'에서의 '거울(The Mirror)' 이라는 공연을 앞두고 있다.
" '거울' 은 거울에 비친 모습 너머에 있는 내면을 바라보면서 '나는 누구인가' 를 스스로 묻는 작품입니다." 그녀의 이 말이 문득 내가 홍콩의 한 갤러리 전시현장에서 한 생각을 떠올리게 한다.
홍콩 도심 한 복판의 페더빌딩(Pedder Building)은 런던과 뉴욕에 이어 홍콩이 세계 3대 미술시장으로 급부상하고 있음을 실감나게 하는 곳이다. 건물3층-7층까지 유명한 갤러리들이 밀집해 있었는데, 지난 3월 나는 7층 미술계 마이다스 손이라 불리는 미국의 가고시안 갤러리(Gagosian Gallery)부터 3층 영국에서 온 사이먼 리 갤러리(Simon Lee Gallery)까지 모두 방문했었다.
홍콩 페터 빌딩
사이먼리갤러리(Simon Lee Gallery)에서는 긴 거울에 걷거나 하늘을 보는 실제 사람크기의 여자가 프린트되어 있는 작품들로 꽉 채워져 있었다. 사람들은 처음보는 그 여자를 친구처럼 팔짱을 끼거나, 그녀처럼 땅을 보는 자세로 그녀와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사방의 거울은 그 사람들이 진정 어디에 있는지 알수 없겠금 여기저기로 비춰지게 했다.
비스듬한 모습, 거꾸로 된 모습, 똑바로 선 모습 등 그 수많은 모습들 중 진정한 나의 모습은 어떤것일까라는 의문이 들어 갑자기 멈칫했었다.
이어서 간 홍콩 아트 바젤에서는 뒤집어 진 작품들이 있었다. 마치 사이먼갤러리에 이어 '무엇이 보이니? 어떤 것이 똑바른 거니?' 라는 질문을 하려고 기다리고 있는 듯 했다. '거꾸로 된 그림의 작가' 로 유명한 독일의 신표현주의의 거장 게오르그 바젤리츠(Georg Baselitz, 1938 ~)의작품들이었다.
얼마전에 2011년 1월부터 2015년 2월 28일까지 4년 동안의 글로벌 경매 기록을 토대로 생존작가 리스트 톱 100을 인터넷 미술전문 매체 아트넷에서 발표했다. 작가별 작품 판매가격 순위와 그것을 판매한 경매회사들도 함께 발표했는데, 말할 것도 없이 홍콩이 아시아 미술의 허브로 명실상부 급부상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단일 작품으로는 2013년 뉴욕 크리스티에서 대표작 '풍선개' 를 약 635억원에 판매한 제프 쿤스가 1위를 차지했지만, 총 판매액은 독일의 게르하르트 리히터가 단연 1등을 차지했다.
1990년대 독일이 통일된 후 더욱 확고한 명성을 얻으며 회화작업과 사진이미지를 교차시키는 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는 2002년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가진 후, 분단시대 독일회화의 마지막 거장으로서 현 시점에서 가장 대표적인 작가로, 가장 비싼 작가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리히터와 함께 우리는 세상을 뒤집어 버린 바젤리츠도 주목해야 한다. "거꾸로 된 이미지는 더 잘 보일 뿐이며, 곧바로 보는 이의 눈을 향하게 된다"고 말하는 그는 우리에게는 다소 낯설지만 세계미술시장에서는 그 명성과 그림값이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있는 이미 유명한 작가이다.
Georg_Baselitz, No title, 1995
1960년대 경제적 번영과 맞물린 미국의 문화 주도권은 베트남 전쟁을 둘러싼 반전 학생운동 등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미국 팝 아트의 영향력은 사실상 전유럽을, 특히 서독을강타했었다.
그러나 독일 현대미술가들은 미국의 추상표현주의와 팝아트가 아닌 새로운 현대미술의 세력을 형성하길 원했다. 그 노력의 결과로 재현으로의 복귀를 시도한 신표현주의 회화가 급부상하면서1980년대부터 독일 미술은 전세계 미술계에 영향력을 행사하기에 이른다.
즉, 나치즘의 과거청산이라는 역사적 과제와 분단이라는 또 하나의 상처를 극복하는 것을 최대과제로 생각했던 안젤름 키퍼, 게오르그 바젤리츠, 외르그 임멘도르프 등 독일 신표현주의 작가들은 탈냉전시대, 다원주의 시대를 알리며, 카셀 도큐멘타와 함께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된다.
특히, 게오르그 바젤리츠가 추구하는 신표현주의는 1970년대 개념미술과 미니멀리즘에 대한반작용으로 독일을 기점으로 미국과 이탈리아 등 세계 각지로 발전해 나갔다. 바젤리츠는 구상에 관심을 가지며, 철학적이고 추상적인 미술에 반기를 들고, 거대한 화면, 거친 붓터치, 강렬하고 다양한 오브제의 사용, 콜라주와 몽타주 도입 등을 통해 종교나, 죽음, 성적 이미지를 주로 다뤘다.
1938년 도이취바젤리츠(Deutschbaselitz)라는 구 동독의 한 도시에서 태어난 그는 한스 게오르그 케른라는 본명을 자신의 고향 지명을 따 개명하였다. 1956년 동베를린 미술아카데미에 입학했으나 '정치적 미성숙' 이라는 이유로 동베를린 미술아카데미에서 제명당했고, 1957년 서베를린으로 망명했다.
1968년은 프랑스와 독일의 학생운동을 기점으로, 구태의연한 유럽의 낡은 가치관에 반박하는 혁명기였다. 또한 교육개혁과 여성해방과 인류보편적 평화와 행복을 다시 조명한 시기였다.
바젤리츠는 이것을 표현하기 위해 1969년 <머리 위의 나무(The Wood On Its Head)>를 선보이며풍경, 정물, 누드, 초상 등을 거꾸로 그리기 시작했다. 그는 "거꾸로 그려진 대상은 오브제로는부적합하기 때문에 오히려 회화에 적합하다" 고 말했다.
1970년대부터 대표적인 신표현주의 작가로 부상하면서, 1980년대 베를린 미술 아카데미 교수로 재직, 1990년대에는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LA 카운티 미술관, 워싱턴 스미소시언 미술관, 베를린 국립갤러리, 파리 현대시립미술관 등 전세계를 순회하며 대규모 회고전도 가졌다.
2004년에는 예술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미엄 임페이얼(Premium Imperiale) 을 수상했고, 2006년 독일 경제전문지 '캐피탈' 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미술가 중 6위로 바젤리츠를 지목했다. 현재 런던 왕립미술원 및 크라쿠프 예술아카데미 명예 교수로,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지내며 작품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그는 패잔병 혹은 우화적 인물을 왜곡된 붓터치로 과장되고 그로테스크하게 표현하면서 지금껏당연하게 여겨져온 상하의 위계와 기성적 가치를 뒤집어 대상에 얽매이지 않는 자율성을 회화에 부여하였다. 특히, 대담함과 웅장함, 반항심, 그리고 열정을 가지고 인간의 자유로운 감성과사물의 내면적 깊이를 탐구하고 있다.
바젤리츠의 작업은 새로운 시각적 충격을 던져주면서 특히 폭력 죽음 등을 주제로 삼고 있어 불량그림(bad painting)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좌파적 선동가 이미지로 비열한 나치라는 평가와 함께 세상은 그를 주목하고 있다.
아웃사이더로로 자칭했던 그가 말하길, "…우리는 결국 모든 것을 보여주거나, 반대로 아무것도 아닐 수 있었죠…난 내포된 의미를 나타내는 걸 믿지 않았습니다…언론에서는 나를 모순적이면서 공격적인 인물로 소개하곤 했습니다…난 항상 에술, 특히 독일 예술에 저항합니다…", "…20세기의 예술이 암흑기였다는 걸 보고 주고 싶었어요. 당신이 작가라면, 희망찬 미래를 열망하며 희망이 되기 위해 작품을 하는 체 할 수 없을 겁니다… 난 존재의 가치를 탐구하는 가장 좋은 예는 아닙니다. 예술의 나아갈 방향을 위해 투쟁하는 게 아니예요. 단순히 내가 할 수 있는 걸 할 뿐입니다. 납득할 수 있는 것을 하죠. 당신이 어떤 도덕적 강령을 느낀다면 , 그것을 해야만 합니다…"
'그림을 거꾸로 건 것은 익살일 뿐이다', '거꾸로 된 이미지는 제대로 볼 수 없을 뿐 아니라 회화에 적합하다는 건 억지주장이다', '작품을 90도 혹은 180도 돌려서 거는 건 주목받기 위한 수단이다', '새로운 방법이라고 할 수 없다' 따라서 '거꾸로 된 그림의 작가' 로서 바젤리츠의 명성은 미술관과 언론이 만들어낸 것이며 우리의 관심 밖이어야 한다' 등으로 그를 비판하는 시각도 있다.
이에 굴하지 않고, 요즘 그는 강렬한 아프리카 예술품과 고대 조각품의 고증을 통해 창조작업에 몰두하면서 스스로 지금은 대중미술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의 변화는 탈구조주의 시대의 또 하나의 독립된 자신의 리좀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그는 우리가 지켜볼 만한 멋진 또 한 명의 노마드다.
Georg Baselitz, Clown, 1981
최지혜
유로저널칼럼니스트
아트컨설턴트
메일 : choijihye107@gmail.com
블로그 : blog.daum.net/sam107
페이스북 : Art Consultant Jihye Choi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