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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테이트 모던을 간다는 것은 늘 다가갈 수 없는 성안의 모습을 훔쳐 보는 듯한 마음과 거대한 산을 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심리적 위축감마저 들게 하는 장소다. 하지만 갈 때마다 심장이 뛰고 설레게 하는 건 또 어떤 새로운 전시가 기다리고 있을지에 대한 기대감이다. 물론 그곳을 가기 전에 인터넷을 통해 전시에 관한 정보를 얻지만 텍스트화 된 내용이나 한 두 컷의 사진 속에서 오는 느낌과 실제 그 전시 공간 속에서 가질 수 있는 독특한 기운은 분명 같을 수 없다. 왜냐면 전시라는 것은 작품 하나하나가 던지는 내용들만큼이나 한 연결고리 안에 놓여진 전체 작품의 모습 또한 보는 이들에게 새로움을 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작가들은 전시를 위해 작품을 제작하는 것을 마치고도 전시장에 디스플레이를 하는 순간 또 한번 고민과 깊은 생각에 잠겨야 한다.
어쨌든 이번에도 테이트 모던의 전시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전시장으로 향했다. 언제나 열리고 있는 상설 전시와 특별 전시로 나눌 수 있는데 상설전시의 작품들은 테이트 브리튼에 있던 20세기 이후의 작품들이 옮겨져 소장된 것이 대부분이다. 지금 열리고 있는 특별 전시로는 영국출신의 길버트 앤 조지(Gibert & George)와 벨기에 출신의 카르스텐 홀러(Carsten Holler)의 전시가 있다. 엄청한 양의 작품을 소장한 이런 대형 미술관에서 모든 작품을 단번에 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마 모든 작품을 섭렵하려는 마음으로 간다면 오히려 미술관에서 돌아 온 후에 기억나는 것이라고는 정신 없이 걸었던 기억밖에 없을 것이다.
테이트 모던은 여행자들에게는 여정의 한 코스으로, 학생들에게는 배움의 장소로, 미술에 관련된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는 미술의 흐름을 보는 정보통 등으로서 다양한 역할을 한다. 그러면 가족들의 나들이에는 어떨까? 엄마, 아빠와 손잡고 찾아온 아이들에게 흥미와 재미를 줄 수 있는 전시를 지금 테이트 모던에서 찾을 수 있다.
특별전시인 카르스텐 홀러의 전시와 상설 전시회의 한 부분인 Level 3의 ‘시와 꿈(Poetry and Dream)’ 전시가 그것이다. 먼저 카르스텐 홀러의 작품은 아이들에게는 커다란 놀이터로 다가 올 것이다. 플라스틱 등의 재료로 만들어진 제목 <Test Site>의 이 설치작품은 관람객들이 ‘탑승’하면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인데, 5층 높이에서 길이 55m의 나선형 플라스틱 통로를 통해 ‘질주 및 낙하’하면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그냥 고개를 끄덕이면서 지나치는 작품 감상이 아니라, 롤러코스터형 디자인으로 설계된 미술 작품을 관람객들이 직접 몸으로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아이들에게는 55m나 되는 거대한 미끄럼틀을 타는 것과 같지 않을까? 작가 자신 또한 자신의 작품을 감상하면 스트레스와 우울증이 말끔히 사라질 것이라고 말을 하니 그 작품을 타고 즐기는 것은 작가가 바라는 바이기도 하다. 요즘 한국에서는 ‘체험 미술학원’이라고 하여 하얀 도화지에 크레파스로 예쁘게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큰 물감 통을 내 놓고 아무것도 없는 넓은 공간에서 벽에 물감을 붓기도 하고 물감이 묻혀진 손으로 낙서를 하듯 벽에 뭔가를 표현해 보기도 한다. 또 하다 못해 붓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몸을 데굴데굴 구르며 바닥을 도화지 삼아 아이들 만의 멋진 추상미술작품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이런 체험미술은 창의성 개발에 효과적이며 답습적인 교육환경에서 벗어나 아이들에게 자유로운 교육의 장소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게 미술 전문가들의 말이다. 카르스텐 홀러의 이 작품이 바로 그 자유의 장소가 될 것이다.
‘시와 꿈’이라는 전시회에 가면 어른들은 재학시절 미술책에서 본듯한 작품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달리, 피카소, 마그리트 등의 작품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부모의 입장에서는 현대미술만 나열된 전시장보다 아이들과 함께 작품을 감상하기가 수월하지 않을까 싶다 –그림을 그리는 나조차도 현대미술을 난해해 하는 친구들과 갤러리를 찾을 때면 그들의 끊임없는 질문에 난처해하니 말이다- 총 열 개의 방으로 나뉘는데 방마다 제목이 있으며 그에 따라 작품의 구성이 다르다. Room 1과 2는 초현실주의와 연관된 작품들로 초현실주의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에서부터 초현실주의를 지나 그것에 영향을 받은 작가들의 작품들까지 전시된다. 초현실주의 미술은 인간성의 진정한 근원이라 할 수 있는 환상, 꿈, 상상 들을 열어 보이는 것이다. 외견상 반대되는 것처럼 보이는 꿈과 현실의 상태들을 일종의 절대적 현실로 용해시킨, 말하자면 극대화된 현실세계다. 이를 통해 초현실주의자들은 미술의 질서정연하고 합리적인 문화양식에 대항하였던 것이다. 그들의 표현은 색다르고 낯설다. 교과서에서 본 달리의 <기억의 영속성>이라는 작품의 축 늘어진 시계를 기억하는가? 달리의 작품에서는 시계가 맥없이 늘어질 수도 있고 물 속에 반사된 이미지가 현실이 될 수도 있으며 사람의 몸에 상자나 창문이 달릴 수도 있다. 그야 말로 상상력의 진수를 보는 것 같다. Room 5에서 8까지는 현대미술에서 빠질 수 없는 작가를 두 명씩 짝을 지어 그들의 작품 사이의 연관성과 초현실적인 요소들을 찾는다. 프란시스 베이컨, 요셉 보이스, 신디 셔먼 등과 같은 이 작가들의 작품을 현대미술적 관점에서 보려고 하면 머리가 복잡해진다. 카르스텐 홀러의 작품을 미끄럼틀이라고 생각하고 가볍게 타는 것처럼 그들 작품 속 이야기들을 가지고 자기만의 상상화를 만들어 보면 좋을 것이다.
아이들은 해리포터나 반지의 제왕을 보면서 자신이 하늘을 날거나 절대적인 힘을 가진 반지를 가지는 것을 꿈꾼다. 우리 어른들도 할 수 있다. 아이들의 데리고 테이트 모던으로 가서 초현실주의 화가들 뿐 아니라 우리 아이들이 상상하는 것을 훔쳐보자. 그리고 따라 해보면서 우리도 하늘을 나는 해리포터가 되어 보는 것이다.
Tip : Tate Modern에 대한 정보는 www.tate.org.uk에서 찾을 수 있다.
* 이 글의 작가 김현화는 영국에서 작업활동을 하는 화가이다. 영국에서 일어나는 문화적인 사건이나 전시, 혹은 시각적인 예술성이 보이는 이미지 등을 주된 소재로 다루며 그에 관한 작가의 생각이나 경험, 그리고 미술적 지식을 바탕으로 정기적으로 글을 쓴다. hhpeanut@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