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사람들, 블루맨그룹

by 유로저널 posted Jun 29,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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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살고 있는 친구가 여행 삼아 런던에 들렀다. 그 친구와 더불어 여기서 공부중인 또 한 명의 친구와 함께 코벤트가든을 갔다. 언제나처럼 그날도 어찌나 비가 오는지 밖에서 길을 걸으며 길거리공연을 보거나 가게의 쇼윈도 구경과 같은 재미는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갑자기 거세게 쏟아지는 비를 피해 커피숍으로 뛰어들어가 따뜻한 차 한잔으로 몸을 녹이고 맛있는 케익과 함께 각자의 외국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세 명 모두 미술을 전공해서 인지 모든 관심사와 그 동안의 경험들은 미술에 관한 것이었고 이야기의 대부분도 뉴욕과 런던의 현대미술의 분위기같은 것들이었다. 그렇게 이야기가 흐르다가 뉴욕에 있는 친구가 영국에 오기 직전 블루 맨 그룹의 공연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안타깝게 놓쳤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곧장 코벤트가든에 있는 공연 매표소로 가서 당일 블루 맨 그룹의 공연을 예매했다. 저녁공연을 예매했는데 기대에 부풀어 있어서인지 시간이 그렇게 더디게 갈 수가 없었다. 저녁까지 든든히 먹은 후 드디어 블루 맨 그룹의 공연장으로 향했다.

한국에서는 블루 맨 그룹이 인텔 TV광고로 유명해졌다. 파란얼굴의 사람들이 줄을 타고 하얀 벽을 내려오던 그 광고를 기억하는지 모르겠다. 그들이 바로 블루 맨 그룹이다. 얼굴에 파랗게 화장을 하고 나와 무대를 뛰어다니는 이들은 1980년대 미국에서 시작된 그룹이다. 그때 당시 미국은 미술에 대한 검열 바람이 불고 있었는데 현대미술의 외설적이며 비도덕적인 부분들을 색출하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한 반기를 들고 나타난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들이 바로 블루맨 초창기 멤버인 매트 골드만(MattGoldman)과 크리스 윙크(Chris Wink), 그리고  필 스탠턴(Phil Stanton)이다. 이들은 원래 컴퓨터 프로그래머, 기자, 연극배우 지망생으로써 각자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었으나 예술에 대한 같은 생각과 이념을 통해 뭉치게 되었다. 예술가라는 이름으로 고급미술을 추구하는 것도 거부하면서 극단을 만들어 미술과 음악, 그리고 연극 공연의 만남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선보였다. 1980년대 말 ‘Nowhere’라는 클럽을 주 무대로 소규모 극단 중심의 공연을 시작했으나 관객들의 좋은 반응을 통해 보스턴, 시카고, 라스베가스 등 많은 도시에서 공연을 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많은 나라를 돌면서 공연을 하고 그룹 멤버들 또한 많이 늘어 났으며 공연에 필요한 기술적 문제들도 외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통해 점점 그 발상의 전환에 활기를 띄고 있다. 런던에도 이들의 공연을 위한 전용극장이 있으며 지금 공연이 성행 중이다.

이 공연의 과정은 이러하다. 입구에서 나누어주는 흰색 띠를 하나씩 받아 들고 공연장으로 입장한다. 아직 공연 시작전이긴 하지만 공연장 천장과 벽 등에 설치된 장비들만 봐도 이 공연이 심상치 않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객석의 앞줄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우의를 입고 객석의 모든 사람들이 입장할 때 받은 흰띠를 머리에 두르면 조명이 꺼지고 공연은 시작된다. 무대 옆쪽에 설치된 전광판에서는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문장들이 관객에게 말을 건다. 예를 들면 “《뉴욕 타임스》지는 17세기 영국의 평범한 시민들이 평생 동안 알고 있는 정보보다는 더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또 한 번 잘못된 포스터를 보고 있습니다. 여러분 옆에 있는 사람들은 유용한 정보를 읽고 있는데 한마디로 당신은 늘 잡동사니 메일만 받을 뿐입니다”라는 식으로 정보 통신사회에서 접하는 정보의 양과 그 넘치는 정보들에게 포로가 된 우리 모습을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글귀들이 전광판에 끊임없이 쓰이고 지워진다. 텍스트를 통해 관객들과 대화를 한참 한 후 공연은 본격적으로 이루어진다.

블루 맨 그룹은 퍼포먼스 형식의 공연을 하기 때문에 객석에 앉아 있는 관객에게 그들의 행위를 전달하는 무대가 있는 극장에서 이들의 공연을 볼 수가 있다. 하지만 그들 공연의 내용을 보면 미술의 다양한 장르들을 포함한다. 공연 중에 물감을 드럼 위에 쏟아 부어 놓고 그 드럼을 연주하면서 자연스럽게 튀어 오르는 물감들의 형형색색의 반란을 보여주는데, 이는 꼭 작가 잭슨 폴록이 그의 캔버스 위에 물감을 쏟아 부어 즉흥적인 작품을 만들던 액션페인팅과 닮아 있다. 또한 얼굴을 파랗게 칠하고 검정색 옷을 입고 있는 블루맨들은 말 대신 무대에 설치된 화면들로 그들의 메시지를 주로 전달한다. 이 또한 비디오 아트 작품의 하나처럼 보인다. 텍스트가 흐르는 전광판뿐만 아니라 화면의 중앙에 스크린을 내려놓고 그때마다 적합한 영상들을 보여준다. 그 중 하나 재미있는 것은 관객 중 한 명을 공연장으로 데리고 나와 아무 말 없이 –손발이 척척 맞게 진행되는 것을 보면 작은 목소리를 뭔가를 지시하는 듯하지만 시끄러운 음악과 분위기 속에서 바라보는 관객들에게는 그들의 행동들은 아무런 대화가 없이 진행되는 듯하다- 그를 데리고 공연장 뒤로 나가 버리는 것이다. 그 이후의 상황들은 무대에 준비된 영상을 통해서 볼 수 있다. 블루맨들은 그 관객에게 흰색 옷을 입히고는 그것이 무슨 팔레트인 양 거기에 물감을 마구잡이로 묻힌다. 미친 듯이 물감을 뿌려대는 블루맨들의 행위와 이게 무슨 일인가 싶은 표정을 짓고 있는 그 행운의 관객의 태도를 영상을 통해 보면서 관객들은 웃어대기 시작한다. 무대에서 직접 보는 것이 아니고 무대 밖에서 진행되는 상황을 본다는 것은 관객들로 하여금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고 늘 쓰여진 무대 뒤쪽의 공간을 몰래 지켜보는 듯하게 느끼게 만든다. 이는 현대미술의 비디오 아트뿐 아니라 해프닝이라는 장르와도 흡사하다. 미리 준비된 계획을 대상자에게 행하면서 예측하지 못하는 결과를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그들의 반응을 지켜보니 말이다. 공연이 끝날 무렵이 되면 블루맨들은 공연장에서 내려와 관객과 함께하는 시간을 많이 만든다. 관객들에게 뭔가를 던져 주기도 하고 몇몇의 관객 앞에서는 이상한 행동들로 그들을 당황하게 만든다. 그러다가 무대 시작 전부터 천장에 설치 되어 있었던 파이프들이 드디어 집중되기 시작하고 파이프의 한 쪽 끝이 객석 쪽으로 떨어져 빙빙 돌기 시작하면 꼭 천장에 매달린 설치 작품을 보는 듯 하다. 그러고는 무대의 맨 뒤쪽에서 풀어주는 화장지들이 관객들의 도움을 통해 무대 앞쪽으로 전해진다. 그러면 객석 전체는 또 하나의 공연장이 되고 관객은 블루맨들과 같이 행위자가 되는 것이다. 객석 전체에 파동이 치는 흰색의 물결을 보면 아주 거대한 크기의 검정 캔버스에 흰색 물감으로 그림을 그려놓은 듯하기도 하고 대형 전시장에서나 볼 법한 설치물을 보는 듯하다.

80분 정도 진행되는 이 공연은 해프닝이나 행위예술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사실 블루 맨 그룹이 의도하는 것은 어떤 카테고리적 예술 장르이기보다는 단막극 형식으로 미술과 연극, 음악과 미디어적인 요소를 다양하게 소화시켜 보려는 새로운 실험이라 할 수 있다. 파이프 드럼의 우렁찬 소리와 물감에서 쏟아지는 추상미술적인 요소는 연극적인 몸짓과 자신들이 직접 작곡한 실험 음악과 어우러져 관객들이 함께 참여하는 공동의 장으로 변하는 것이다.

한 인터뷰에서 왜 다른 색이 아닌 파란색으로 분장을 하느냐는 질문에 초록색은 너무 외계인 같고 노란색은 너무 광대 같은데 파란색은 거리감을 주면서도 친근감을 조성할 수 있어서라고 말했다. 그들은 두 시간이 넘는 분장시간 동안 손에 수술용 장갑을 끼고 고무로 된 모자를 머리에 쓰고는 스스로 몸에 파란색을 바른다. 그러면서 그들은 딴 세상에서 온 듯한 외계인이나 놀림감이 될 수 있는 광대가 되는 것이 아니라 관객과 똑 같은 사람으로써, 때론 멀리 떨어져 있는 타자의 모습으로 때로는 가까이에 있는 친구의 모습인 것처럼 그들이 행위로 보여주는 이야기들이 거짓된 것들이 아님을 말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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