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영국생활은 콜체스터라는 작은 도시에서 시작했다. 세상 어디를 가도 쉽게 만날 수 있다는 중국인, 인도인들조차 많이 살지 않는 전형적인 영국의 작은 도시 중 하나이다. 물론 지금 살고 있는 런던은 이것저것 많은 볼거리와 재미들로 넘쳐나 긍정적인 태도만 가진다면 모든 게 신나고 활기찬 일들이 넘쳐나는 곳이다. 그러나 콜체스터에서 생활할 때 느꼈던 조용한 도시 분위기를 찾기는 힘들고, 이웃들이 대부분 영국인이었던 그 곳 환경과 달리 여기 런던은 정말 다양한 생김새와 국적을 가진 이웃들이 내 주변에 살고 있다. 그래서 가끔씩은 내가 영국에 있는 것인지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제 런던생활도 어느 정도 접어들어 같은 유럽권 외국인이라도 작은 생김새 차이를 가지고도 영국인이 아니라는 것쯤은 구분할 수 있고, 어쩔 땐 정확한 국적을 맞추기도 한다.
영국인들은 독일이나 북유럽권 사람들에 비해 신장이 좀 더 작은 듯 하다. 원래 남쪽으로 갈수록 사람들의 신장이 작다고 하니 이탈리아나 스페인 사람들에 비해 평균 신장이 큰 것이 이해가 된다. 이웃나라인 프랑스와 비교하자면 어두운 머리 색과 눈동자 색을 가진 사람들이 많고, 코가 좀 더 큰 프랑스 사람들과 달리 영국인들은 금발머리나 붉은 머리의 사람들도 많이 보이며 흔히 코믹만화에서 표현되는 서양사람들의 코만큼이나 코의 크기가 지나치게 크지도 않다. 영국 가까이 있는 아일랜드 사람들을 가만히 보면 같은 백인인데도 영국인들 보다 훨씬 더 하얗고, 어떤 사람들은 하얗다 못해 항상 붉은 빛을 띠는 피부를 가진 사람들도 많다. 또한 Ginger Hair라고 흔히 말하는 빨간 머리카락을 가진 사람들도 영국보다 많다고 한다. 미국인들과 비교를 해본다면 길면서 얼굴에 각이 없이 부드럽게 생긴 사람이 많은 미국과 달리 영국은 훨씬 선이 강한 옆모습을 가진 사람들이 많고, 턱의 하악각이나 광대뼈가 도드라지는 얼굴형이 자주 보인다.
내 스스로 느낀 영국인들의 생김새의 특징을 가지고도 그들을 다른 이들과 구분할 수 있지만 그들이 즐겨 입는 옷의 스타일을 봐도 이제 대략 영국인들을 구분 짓는다. 영국인 남자들은 유난히 남방이나 셔츠 등 카라가 있는 있는 옷을 즐겨 입는다. 꼭 비지니스맨이 아니더라도 친구를 만나거나, 술을 한잔 마시기 위해 펍을 갈 때도 체크무늬 남방에 청바지 차림의 영국인 남자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어쩔 땐 늦가을이나 추운 겨울날에도 남방 하나 입은 채로 거리를 걷는 이들이 눈에 종종 띄는데, 그런 남자들은 대부분 영국인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콜체스터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체코와 스위스 출신의 친구들과 길을 걸으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고 놀란 적이 있었다. 12월 한 겨울에 코트도 없이 남방 하나만 입고 주머니에 손을 꼽은 채 지나가는 젊은 사람들을 연속해서 볼 수 있었다. 그때 우리는 코트에 목도리, 장갑까지 끼고 있었고 그래도 뼈 속으로 파고 들어오는 듯한 추위에 정신이 없었다. 나야 문화환경이 전혀 다른 아시아인이라 그렇다 치더라도 같은 유럽인이면서도 용감한 영국 남자들의 모습에 친구들은 연신 놀라 했다. 기온이 많이 내려가는 것은 아니지만 영국 같은 경우 바람이 많아 겨울에 체온온도는 꽤 낮은 편이다. 그런 데도 영국인들은 옷을 많이 걸쳐 입지 않는 것 같다. 코트 없이 상의를 하나만 입는다면 남자들은 카라가 있는 옷을 택하는 데 그 이유가 정말 궁금하다.
기본적으로 영국인들은 옷을 입거나 액세서리를 착용할 때 ‘격식’에 대한 기본의식이 있는 듯 하다. 물론 양복을 입고 운동화를 신는 등 편안한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긴 하지만 ‘실용’을 강조한 편안한 패션 코드와 함께 신발이나, 가방과 같은 액세서리에 상관없이 상의 하나로도 자신의 매너를 강조할 수 있는 셔츠 류를 즐긴다. 카라가 있는 옷을 입게 되면 일반 티셔츠와 다르게 활동적이거나 자유로운 부분이 무의식적으로 제재된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행동이 과해지거나 심한 오버액션을 할 확률을 낮추면서 좀더 매너를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하다못해 비즈니스 미팅이나 친구를 만나는 것과 같은 매너가 필요한 일이 아니더라도 밤 늦게 나이트클럽을 갈 때도 그들은 셔츠차림을 선호하는데 이런 영국인들의 모습에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격식과 매너’를 강조하는 그들의 숨겨진 의식을 알 수 있게 된다.
지난 주 칼럼에서 말했던 것처럼 여성들은 애스콧 경마대회와 같은 중요 행사를 참석 할 때면 자신의 개성을 강조한 모자를 착용해 그들의 패션감각을 뽐낸다. 시대가 바뀌면서 사람들은 자유로운 것과 뭔가 새로운 것을 계속 추구하고 젊은 사람들은 점점 오래된 구닥다리를 싫어한다. 그래도 영국인들에게는 ‘격식와 매너’를 갖춘다는 오래된 고정관념 때문에 젊은 이들은 특별한 날에는 머리에 모자를 착용하고 일상생활에서 셔츠를 입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본인들은 이런 남들과 다른 점을 모를 수 있으나 호기심 많은 내 눈에는 그들만의 ‘영국인스러움’이 너무나 잘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