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스터블(John Constable, 1776-1837)은 터너와 함께 영국을 대표하는 풍경화가다. 그의 작품을 보면 영국의 자연 풍경과 당시의 생활 모습을 알 수가 있다. 또한 자연에 대한 세밀한 관찰과 묘사를 통해 녹색의 다양한 색채 변화와 뛰어난 표현기법이 잘 드러난다.
컨스터블은 1776년 서퍽(Suffolk)의 이스트 버골트 (East Bergholt)에서 태어났다. 이곳은 서퍽와 에식스(Essex)의 경계지역으로 스투어 강(Stour Valley)이 흐르고 있다. 강 유역은 옥수수와 목초지 및 아름다운 나무들이 많았으며, 18세기 후반에는 능률적인 농업과 자연의 아름다움으로 유명했다. 이곳의 주민들 또한 그들이 사는 지방에 대해 많은 애착을 가졌으며 컨스터블도 그러한 사람들 중에 한 명이였다. 그의 아버지는 스투어 강가의 플랫퍼드(Flatford)와 데덤(Dedham)에 제분소를 소유한 부자였다. 그의 사업은 그 지방에서 재배한 옥수수를 빻아 그것을 선적하여 영국 동쪽지방의 해안을 돌아 런던 시장까지 실어 나르는 일이었다. 스투어 강에 운하가 건설되어 이 제분소들 앞으로 배가 드나들 수 있었으며, 곡물들은 널찍한 거룻배에 실려 이 운하의 물줄기를 따라 운송되었다. 컨스터블은 이렇게 시골의 전형적인 모습이 살아있는 환경에서 자라났으며 이것이 그의 작품에 영향을 미친 듯 하다.
그의 작품은 고향이 있는 곳인 스투어 강가 주변의 풍경을 많이 담는데 그 중에서도 데덤(Dedham)이 대표적인 곳이다. 오늘날 이곳을 방문하여도 컨스터블이 작업할 당시의 풍경을 그대로 만나볼 수 있다.
내가 데덤을 찾아간 건 2006년 4월 봄에 친구들과 함께였다. 겨울 내내 칙칙한 날씨 속에 움츠려 있었던 우리에게 따뜻한 봄의 기운이 느껴지는 4월의 날씨는 뭔가 활동적인 움직임을 시도하게 만들었다. 목적지는 데덤이었고 거기까지 가는 교통편은 자전거였다. 당시 데덤과 가까운 콜체스터에 살고 있는 터라 데덤까지의 자전거 하이킹은 그리 힘든 선택이 아니었다. 콜체스터에서 데덤으로 가는 하이킹 코스는 한 두 번의 약간 가파른 언덕을 오르는 것을 제외하고는 크게 힘든 코스가 없기 때문에 여유롭게 자전거를 타면서 주변의 자연모습을 마음껏 즐길 수가 있다. 이제 막 피어나는 꽃들과 밝은 연두빛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나무들을 보기도 하고 이 싱그러움이 그대로 살아있는 자연내음을 맡으면서 말이다. 콜체스터 여행정보센터에서 받은 지도의 설명이 그리 정확하기 않았기 때문에 인터넷에서 지도를 찾았고, 프린터가 없어 그것을 그대로 따라 그린 내 드로잉이 모든 움직임의 기준이었다. 대부분이 정확했지만 끊어진 길을 연결해서 그려놓은 덕분에 한번은 열심히 자전거로 달려 들어섰다가 다시 돌아 나와야 하는 낭패를 봤어야 했다.
조용하기만 하던 길에 조금씩 사람들이 보이고 차들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데덤에 도착했음을 알 수가 있었다. 데덤은 많은 사람들에게 흥미로운 곳이기 때문에 관광객이 많은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었다. 나와 같이 살던 영국인 Josie의 말에 의하면 자연환경이 뛰어나고 공기가 맑은 그 지역 대부분의 주민은 경제적으로 여유를 가진 은퇴한 노인들이라고 했다. 그러니 거기서 만나는 사람들의 대다수가 우리와 같은 여행자들인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컨스터블의 작품의 배경을 따라 루트를 짜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자신에게 꼭 맞는 자전거 하이킹코스를 찾아 움직인다. 우리는 둘 다 따르기로 했다.
데덤에서 자전거를 타다 보면 한번도 쉬지 않고 계속 달리는 것은 무리다. 우리를 유혹하는 아름다운 풍경들이 곳곳에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한번은 컨스터블의 그림에서 본듯한 작은 강가와 나무가 있어 그쪽으로 자전거 머리를 돌려서 달리기 시작했다. 분명 자전거로라고 표시가 되어 있었으나 우리가 만난 것은 깨끗하게 정리된 길이 아니라 소들이 풀을 뜯어 먹고 있는 초원이었다. 정해진 루트와 다른 뜻밖의 만남이었지만 소들의 여유로운 움직임과 자연풍경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과 같은 그 풍경이 우리를 멈춰있게 하였다. 소 무리에서 조금 물러서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마치 우리가 컨스터블의 그림 속으로 들어와 있는 듯했다. 소들 뒤로 보이는 부드러운 바람결에 흔들리는 나무와 개울의 물소리, 푸르른 녹색의 아름다움은 말 그대로 한 폭의 그림이었다. 우리의 길을 막고 있는 그들을 그냥 그렇게 머물게 하고 우리는 다른 길을 찾아 자전거를 계속 타기로 했다.
다시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콜체스터에서 데덤으로 올 때 만난 언덕보다 훨씬 가파른 언덕이 나타났다. 나를 포함한 몇 명은 결국 자전거에서 내려 걷기 시작했고, 평소 운동을 좋아하는 엔리케와 경동이는 이미 저만치 언덕 정상에 도착해 물을 마시며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순간엔 컨스터블도, 평화롭고 여유로운 풍경들도 없었다. 온 힘을 다해 언덕을 올라야 하는 힘든 내 처지밖에 보이질 않았으니. 정상까지 오르면 멋진 선물을 줄 거라는 그들의 말에 온 힘을 다해 그곳을 향했다.
그 선물은 진짜 멋진 것이었다. 소리가 들리는 작은 틈으로 다가가니 엔리케가 누워 있는 모습이 살며시 보이기 시작했다. 그 틈을 벗어나자 내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데덤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오는 경사가 진 넓은 초원이었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첫 장면에서 마리아가 노래 부르며 뛰어다니던 그 초원, 알프스 소녀 하이디가 달리던 그 초원들 속에 내가 있는 것 같았다. 내려다 보이는 광경들은 각각 다르겠지만 숨통이 트이는 듯한 넓고 한적한 그 기운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거기에 앉아 데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왔던 길을 찾아 보기도 하고 가야 할 길을 계획하기도 했다. 가끔씩은 그냥 드러누워 파란 하늘을 들여 마셔 보았다. 영국 동쪽 앙글리아 지방은 평지가 많기 때문에 이렇게 높은 곳에 올라 하늘과 가까워진다는 것이 쉬운 게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그 시간을 실컷 즐기고 싶었다. 이제 땀 흘리며 힘들게 올라야 하는 오르막은 끝나고 소리지르면서 웃고 달릴 수 있는 내리막만이 남았으니 그 또한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언덕을 내려와 만난 곳은 컨스터블을 위한 작은 전시관이었다. 컨스터블이 작업을 하던 곳이라니 과거에는 그 주변의 모든 자연과 사물들이 컨스터블 작품 속 주인공들이었던 것이다. 전시관 내에는 컨스터블의 드로잉들과 작품 이미지들이 전시되어있고 작품의 위치설명과 실제 모습의 사진이 놓여있다. 이미 우리가 거기까지 오면서 본 곳도 있고 앞으로 찾아 나서야 할 곳들도 있었다. 우리는 그 전시관에서 나와 강가를 가로지르는 다리 위에서 사진 한 컷을 찍었다. 아직 여행이 다 끝나지도 않았고 가야 할 길이 얼마인지도 모르지만 중요한 단서를 일단 찾았다는 느낌이 든 것은 다들 같았다.
강에서 보트를 타고 있는 사람들의 여유, 누워져 있는 나무 위에서 서로 기대어 대화를 하고 있는 연인, 오리를 따라다니는 총총히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모습은 컨스터블이 그림에서 말한 그대로이다.
“ 나는 여기 이곳의 넓게 펼쳐진 목초와, 그루터기, 담 옆의 좁은 길들을 사랑한다. 내가 붓을 잡을 수 있는 한 이것들을 그리는 것을 절대 멈추지 않을 것이다. ”
-J. Constab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