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여인들의 그림자 L’ombre des femmes », 필립 가렐 Philippe Garrel 감독

« 여인들의 그림자 L’ombre des femmes »,

필립 가렐 Philippe Garrel 감독

프랑스 개봉 2015년 5월 27일

피에르와 마농은 결혼 십 년 차 부부다. 경제적인 압박을 받고는 있지만 다큐멘터리 감독인 피에르와 편집일을 하는 마농은 일상과 일을 함께하며 조화로운 결혼생활을 하는 듯하다. 이차 대전시 레지스탕스였다는 한 노인의 삶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 중,  피에르는  박사과정의 젊은 엘리자베스를 만나고 둘은 내연의 관계를 맺게 된다. 사랑의 감정에 빠져드는 엘리자베스와는 달리 피에르는 그녀와 잠자리만 할 뿐 아내 마농을 사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엘리자베스는 우연히 마농에게도 애인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피에르에게 알린다. 피에르는 엘리자베스를 떠나고 다시 마농 곁으로 돌아오지만 그녀의 외도에 화를 감추지 못하고, 그들의 불화는 깊어진다...

모순된 사랑의 변주곡

« 여인들의 그림자 »는 감정의 굴절 속에 보여지는 인간의, 여자와 남자의 상이한 변주형태를 그리며 인류사의 영원한 소재인 ‘사랑’이라는 화두를 독창적인 방식으로 풀어낸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 사랑은 일상 속에서 어떻게 발화되는가 ? 그리고 그 다양한 감정 행위의 정당성은 남녀에게 구별 적용 될 수 있는가?

이 영화는 피에르, 마농, 그리고 엘리자베스라는 세 인물의 삼각관계 속에서 그들의 민감한 감성과 그 동요의 교차를 통해 새로운 형태의 페미니즘적인 시각으로 다가간다.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남녀 평등에 관한, 남성 못지않게 강렬한 여성의 (감)성적욕망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한다. 남자인 감독의 눈을 통한 여자의 시각으로 본 남자들의 세계. ‘남자’들이 주도해 온 인류사 속에 점철되어 온 그들의 원초적인 욕망의 이기적인 발현은 필립 가렐의 시선을 통해 재조명된다. 다큐멘터리 작가(예술가)라는 미명아래 피에르의 ‘자유주의’스러운  행위들은 자신의 자유에만 허락된 이중적인 것이다.

엘리자베스와 첫 잠자리에 들기 전 그는 자신이 기혼자라는 것을 밝히며 선을 긋는다. 자신의 외도는 단순한 육체적인 관계일 뿐이며 감성적인 교감을 원하는 것은 아니기에 엘리자베스의 마음에는 관심도 없다. 피에르는 여전히 아내인 마농을 사랑하지만 그녀의 외로움과 슬픔보다는 자신의 생각에만 빠지기 일쑤다. 일상적인 외도가 이어지는 피에르의 내면은 제 3의 목소리인 한 남자의 보이스 오버를 통해 드러난다.

‘그건 (남자이기때문에) 자연스러운 것 이였다. 하지만 여자의 경우는 훨씬 심각한 문제가 된다’ ! 피에르는 자신의 목소리로 ‘외도’를 정당화( ?)시킬 수도 있었다. 하지만 감독은 제 3의 남자 목소리를 선택함으로써 피에르의 특수 상황이 아닌 이기적인 ‘남자의 모럴’의 일반성을 고백한다. 영화는 남자의 비굴한 정당화에 반기를 들기 시작하면서 이들의 관계는 동요하기 시작한다. 육체뿐 아니라 감성의 교감도 원하는 엘리자베스는 우연히 알게 된 마농의 외도사실을 피에르에게 알리고 이에 분노한 피에르는 마농의 행위를 비난한다.

이에 마농은 피에르의 평소 모습에서 그의 외도를 눈치채고 있었으며 자신도 누군가에게 사랑 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싶었다고 반박한다. 하지만 감독이 잡아내는 마농의 모습은 여자의 외도가 정당(피에르의 경우와는 다르게)할 수도 있다는 기계적인 가치판단의 오류를 거부한다. 피에르와 정면으로 마주한 마농은 한 인간으로서 가지는 따뜻한 사랑의 교류에 대한 욕망을 적나라하게 표현해 낸다.

필립 가렐의 미니멀적인 연출은 이러한 감정의 현상을 더욱 유려하게 묘사하는데 한 몫을 한다. 느리고 정지 된 카메라는 인물들을 주시하고 그들의 감정은 흑백의 색조를 통해 무수한 감정의 결을 재현한다. 기쁨, 행복, 질투, 상실감, 분노, 외로움... 사랑이라는 감정의 파생어들은 빛과 그림자처럼 대비되면서 동시에 함께 존재한다. 인물들에게 밀착되어있는 카메라는 그들의 몸짓과 얼굴을 좇고 선형적인 서사구조는 생략을 통해 말로 표현하기 힘든 미묘하고 복잡한 인간의 감정을 간결하고 세련되게 전개시킨다.

그 무엇보다도 종잡을 수 없고 까다로운 인간의 감정 중의 하나인 ‘사랑’은 필립 가렐 영화세계의 주요 테마다. « 여인들의 그림자 »를 통해 감독은 다시 한번 이 ‘사랑’의 담론을 흑백영상의 거친 입자 속에 절제된 영상미로 섬세하게 구현해 낸다. 

 배우였던 아버지(모리스 가렐)를 둔 필립 가렐 감독은 그의 아들(루이 가렐) 또한 배우 겸 감독으로 영화계와 인연이 깊다. 1948년 파리 출생인 그는 60년대 프랑스 누벨 바그의 유산을 간직한 포스트 누벨 바그 감독들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전통적 영화 만들기와는 거리를 두고 미니멀적인 제작 방식(경제적, 예술적)을 통해 그의 독창적인 영화세계를 확보하고 있다. 감독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풀어내는 그의 작품들은 그래서 아주 자전적이며 사적인 동시에 섬세한 현실적 정서가 담겨있다. « 여인들의 그림자 »는 올해 칸느 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되었다.  

필립 가렐 Philippe Garrel 감독

PS) 한 때 파리 동역 근처에서 산 적이 있다. 돌아오는 길 가끔은 적당한 거리의 지하철역에서 내려 걷기도 했었다. 그 길 중 있는 하나의 지하철역  ‘Bonne Nouvelle’이 이 영화 속에 등장한다. 그리고 그 옆 까페도. 파리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 익숙한 곳이 나오면 괜히 반갑고 새삼스럽다.

<사진출처: 알로씨네>

프랑스 유로저널 전은정 기자
eurojounal10@eknew.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