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예술 산책 : 알몸 가슴이야기
예술 속의 젖가슴이 정치적 논쟁거리로, 도덕적 종교적 금기로 인식될 때
바로크 화가 쉬로더(GE Schröder)가 그린 주노의 그림이 2013년12월19일 스웨덴 의회의 식당에서 철거 되었다. 1983년부터 30년 간 의원들의 식당에 걸려 있던 작품이 철거된 이유는 상반신 알몸을 그려 여성의 가슴이 노출된 상태가 여권운동가들과 회교도 방문객들을 불편하게 하지 않으려는 배려가 작용하였다. 의회 소식통은 전하기를 외국의 방문객들을 배려한 결정이라고 한다. 특별히 부부간에 잠을 잘 때도 정장을 입고 반듯하게 잠자는 회교 국가에서 오는 친구들에 대한 배려였다고 한다.
사회민주당 여성의원으로 국회 부의장인 수잔 에버스타인은 “ 여성의 입장에서 볼 때 문제는 내가 외국 손님과 식사를 할 때 알몸으로 가슴이 노출된 여인을 보게 한다는 것은 좀 어색하고 우리 여성을 쳐다 보는 남자들의 시선 아래 식사를 하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한다.”
영국 코미디언 미스터 빈처럼 젊잖은 분들을 위하여 화가에게 부탁하여 알몸의 여인들에게 브래지어를 그려 달라고 부탁하면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작품을 철거하는 경거 망동을..
스웨덴의 정치인들은 정치적으로 올바른 외교적으로 적절한 조치를 취하였다고 볼 수 있지만 예술적으로 정서적으로 만행을 저질렀다. 스웨덴 의회는 스스로 초청인사들이나 회교도들을 자기들의 박물관에 초청할 수 있는 길을 봉쇄하였다.
젖가슴이 자비로 생명으로 그리고 사랑으로
샤흘르 멜렝(Charles Mellin1597Nancy-1649 Rome)은 로렌 지방의 화가로 낭씨에서 태어나 나이 스물에 이태리로 떠나 그 곳에서 작업 활동을 하다가 후손도 상속자도 없이 로마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그의 유해는 로마의 쌩 니꼴라데 로렌 교회에 묻혀있다. 그는 한 때 로마에서 시몽 부에(Simon Vouet)와 함께 작업하기도 하였고 니꼴라 뿌쎙과도 교류하였으며 동시대 로렌의 화가 죠르쥬 드 라 뚜르와는 친분이 없었던 걸로 알려졌다. 그의 작품은 주로 벽화 작업이어서 대중에게 많이 알려 지지 않았지만 로마의 자비로 불리는 시몬과 페로 이야기를 그린 작품은 루브르에 걸려있다.
로마의 자비(이태리어Carità Romana) 프랑스어La Charité romaine, 97 × 73 cm, Musée du Louvre, Paris
이 장면은 수 많은 예술가의 영감을 불러 일으킨 본보기로 자주 인용된다. 젊은 딸 페로 Péro 는 감옥에서 은밀하게 자기 아버지에게 젖을 물린다. 그의 아버지 시몬 인지 미콘(Cimon 또는 Mycon)은 금식형을 언도 받았다.
감옥의 수문장은 매일 아버지를 보고자 눈물 짓고 찾아 오는 딸 페로의 몸을 검색하여 먹거리가 될만한 아무것도 몸에 지니지 않은 것은 확인한 후에 아버지 시몬의 면회를 허락한다.
시간이 지나도 노인이 죽지 않자 간수 중의 한 명이 면회 장면을 감시한다. 그리고 딸 페로가 아비 시몬에게 젖을 물리는 것을 발견하여 상관에게 보고한. 사실을 통보 받은 집정관과 재판관들은 회의를 열고 아비의 석방을 결정한다.
이 부녀 지간의 이야기는 가족간의 지고한 사랑과 연민의 감동적인 장면을 보여 준다.
로마의 1세기의 역사가 발레리우스 막시무스 « 기념할만한 사건과 이야기 »에 수록되어 있었고 수 많은 후세의 사가들이나 이야기 꾼들이 인용하였다. 주로 피에타를 이야기하는 마리아와 예수 상에 견주어 일상의 가족간에 있을 수 있는 피에타를 그려내고 있다.
신화에서는 주노가 헤라클레스에게 젖을 주는 장면으로 묘사된다. 주노의 젖 줄기가 워낙 강력해서 주노의 가슴에서 뿜어져 나오는 젖은 은하수를 만들어 낸다.
시몬과 페로 이야기는 폼페이에서 발견된 프레스코 작품에 나타난다. 나폴리 국립고고학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17세기 18세기의 화가들 중에는 루벤스(Peter Paul Rubens)와카라바지오(Caravaggio)도 이야기를 소재로 작품을 남겼다.
하느님께서 여인에게 두 개의 가슴을 준 것은 남자에게 두 개를 주었기 때문이다.
가브리에 데스트레 자매의 초상(가슴부분) 루브르 소장품
여인의 젖가슴은 장식품인가,생명을 키우는가
가브리엘 데스트레 공작부인의 목욕(105x103 샹띠이 꽁데 박물관 소장,작가 미상)
프랑스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는 알려져 있지 않다. 목욕하며 화장하는 왕의 여인 가브리엘 데스트레Estrées Gabrielle d' (1573-1599)와 왕 앙리4세와의 관계에서 태어난 어린 방돔 공작(César de Bourbon, duc de Vendôme 1594-1665)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유모가 있다. 목욕탕 안에서까지 보석을 두르고 화장에 치중하는 여인은 미모에 시달리고 쫓기고 있다.
과일과 꽃과 보석은 장식이다. 다들 상징을 보여 주려고 자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초상화와 정물화가 잘 조화를 이룬다. 손이 아름답다.
초상화에도 많은 발전이 있어 얼굴이 프로필에서 거의 정면으로 돌아 왔다.
여인이 알몸 회화로 드물게 왕의 여인을 보여 준다. 감히 어느 화가가 왕의 여인의 목욕탕에까지 찾아 들어가 목숨 걸고 그림을 그렸을까..
진주가 두 여인의 가슴이 드러난다. 풍만한 가슴을 내어 왕의 아들 세자르 방동 공작에게 젖을 물리는 여인은 또 다른 엄마가 된다. 아기를 잉태하며 자기의 가슴을 아름다움의 형태로 간직하고자 하는 왕의 여인은 그 가슴을 왕의 위하여 장식품으로 오래 보존 되기를 희망한다. 한 여인의 가슴이 생명을 키우고 사랑을 나누고 있다면 한 여인은 가슴을 장식품으로 보석처럼 가꾸며 시선을 유혹할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
여인의 젖가슴 논쟁은 후에 계몽주의자들에게도 주요한 시비거리가 되었다.
준비된 젖가슴으로 왕을 키운다.
렘브란트(REMBRANT Van Rijn1606-1669)
밧세바 여인 (1654년 142 X 142 캔버스유화 루브르 박물관)
렘브란트는 예수를 만나 팔레스타인 동네 길을 동행하며 카나의 혼인잔치에 초대 받아 참석하고 죽은 나사로를 살리는 기적을 체험하며 모든 신비한 것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화가로서 판화가로서 열정과 사명감을 가지고 성서의 말씀을 그려 나간다.
다윗 왕과 밧세바 여인의 성서 이야기는 르네상스 시대와 바로크 시대 예술가들이 즐겨 찾던 소재였다. 성서가 주는 아름다운 여인의 벌거벗은 모습을 자유롭게 그린다는 것은 화가로서는 아주 보기 드문 알리바이를 갖게 되는 일이다.
하지만 렘브란트의 성서적인 알몸그림은 신화적인 아름다움을 묘사하는 당대의 다른 알몸 그림과는 크게 구분된다. 육신을 표현하는 개념도 큰 차이를 보여 준다. 신화의 비너스나 다이아나가 주는 알몸에서 피어나는 부드러움과 아름다움을 보고 나서 렘브란트의 밧세바 여인의 알몸은 풍요롭고 기름진 기본에는 동참하였지만 부드러움과 아름다움을 넘어선 신체의 변형과 굴곡 그리고 세월의 흔적을 사실적으로 그려 주고 있다.
그는 아름다움 만큼 추함도 진솔하게 보여 주고 있다. 17세기라는 고전의 아름다움을 추구 하는 시대에 19세기 사실주의 풍의 그림에서나 볼 수 있는 여인의 출산 후의 복부가 변형된 모습을 과장 없이 사실적으로 그렸다.
렘브란트는 왕실의 시종이 왕의 편지를 남겨두고 떠나 간 후 편지를 들고 목욕 후에 생각에 잠겨 있는 밧세바를 그렸다.
밧세바 발 밑의 시녀는 자기 일에 몰두하고 있으며 밧세바는 왕이 전해 준 편지를 잡고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표정이다. 선택은 없고 운명의 주사위는 던져 졌다. 움직이지 않고 생각에 잠긴 밧세바의 주위는 어두운 멜랑콜리의 침묵의 분위기로 가득 차있고 이제 여인이 감당해야 할 운명의 무게는 무겁게 고통으로 다가 온다.
빛의 화가라 불리우는 17세기의 최고 예술가 렘브란트의 작품에는 어디에서 오는지 알 수 없는 빛이 일상의 빛으로 우리에게 다가 온다. 그리고 빛은 우리에게 보아야 할 부분을 확실하게 강조하며 보여 준다. 그러나 일상의 어두운 현실 속에서 신실한 빛이 비추어 지는 구석이 남겨져 있다는 것은 그리고 그것을 발견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행복의 또 다른 표현이다.
이 작품에서 빛은 다윗 왕의 편지를 들고 있는 장군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의 얼굴과 장군과 누웠던 하얀색 이부자리를 비추고 있다.
주변의 모든 요소가 어두운 구석을 보여 주고 멜랑콜리와 간통의 냄새가 흘어 나와도 밧세바 여인의 가슴은 당당하게 풍요로움을 드러내고 있다. 여인의 성숙함이나 세월의 흔적이 여인의 감스에서는 찾아 볼 수 없다. 저 당당하고 소담하고 보기 좋은 가슴은 어느 날 아기 솔로몬이 저 가슴이 주는 젖을 먹고 자라 왕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민중을 이끄는 자유(La Liberté Guidant le people)
프랑스 공화국을 상징하는 삼색기를 한 손에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총검을 들고, 하얀 가슴을 드러내 놓고 맨발에 프리지아 모자를 쓰고 시체로 뒤덮인 바리케이드를 넘어서는 ‘자유’로 불리는 여인은 가장 평범하고 흔한 이름을 지닌 여인으로, 마리안느(Marianne)라는 소시민의 이름이다
1830년 7월 27,28.29일 샤흘르 십세 왕정에 대항하여 프랑스 백성의 혁명적인 봉기를 한 여인이 이끌고 있다. 이 여인은 무더운 여름 날 우연한 기회에 산책을 나왔다가 시민들의 앞에 서게 되었다. 시민들을 선동하던 지식인은 봉기에 현장에 없다. 뒤에서 왕정의 비리를 고발하고 팔플렛을 만들고 삐라를 만들고 백성들에게 주권이 있다는 공화국의 당위성을 주장하며 이론적인 근거를 제시하던 사상가들은 시민들의 함성과 절규 뒤로 숨었다.
단지 연약 한 여인이 삼색기를 따르면 공화국이 총검으로 지켜주고 가슴으로 젖을 먹여 주겠다는 상징이 보인다.
자유는 그냥 손에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싸워서 쟁취하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부르봉 왕정을 뒤 엎고 오를레앙 왕가의 시민왕 루이필립을 등극시키기에 3일이면 족하였다. 그 해의 혁명을 3일혁명이라고 부른다. 3일의 영광이라고 부른다. 명칭이 그렇다는 이야기지 시민들은 혁명과 그 영광의 실체를 잘 모른다.
화가 들라크르와는 1830년의 7월 혁명을 자신도 단순하게 산책하러 나온 사람처럼 지나갔다고 스스로 자인하였다. 하지만 거리의 폭력과 자원해서 몰려 나온 시민들의 애국적인 모습은 화가의 상상력에 불을 지폈다.
프랑스 공화국이 가슴을 드러내고 미국으로 출장 갔을 때는 미국인들은 소근거렸다. “프랑스의 공화국은 왜 벌거벗고 있느냐”고 그리고 이 작품이 중동으로 진출하였을 때는 공항에서 입국 금지를 선고 받았다.
프랑스의 시민들은 단지 이 여인의 가슴은 정상으로 받아들였지만 겨드랑이의 털을 제거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목하였다.
자유, 평등, 박애의 나라에서 테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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