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꼼수에 넘어간 우리 외교부의 안이한 태도가 더 큰 문제

by eknews posted Jul 07,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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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꼼수에 넘어간 우리 외교부의 안이한 태도가 더 큰 문제

일본 산업혁명시설 세계유산 등재의 사후 파장이 만만찮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한·일은 막판에 'forced to work'라는 문구를 넣고 최종 합의에 이르렀다. 이 문구를 두고 우리 정부 당국자는 "일본 정부가 사실상 최초로 국제사회 앞에서 '강제 노역'을 공식적으로 언급한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이 "강제 노동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우리의 해석을 뒤집었다.


앞서 사토 대사는 세계유산위원회 회의에서 “일본은 1940년대에 일부 시설에서 수많은 한국인과 여타 국민이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동원돼 가혹한 조건하에서 ‘강제로 노역했다’”고 말하며 ‘forced labor’ 대신 ‘forced to work’란 표현을 사용했다.

 
일본 정부 대변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 역시 ‘forced to work’가 “강제 노동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기시다 외무상이 명확히 했다”고 거들었다. 일본은 일어판 번역문에서도 ‘일하게 됐다’는 표현을 사용해 ‘강제성’을 흐렸다. 강제 노역의 영문 표현을 둘러싸고 ‘강제 노동’이라는 한국과 다른 입장을 내놓은 것이다.


일본이 세계유산위원회 결정문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딴소리를 하는 것은 국제사회의 신뢰를 저버리는 행위다. 일본 측의 김 빼는 발언은 우선 강제 노역이라는 역사적 오점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지난 4월 한국의 강제징용 피해자 및 유족 1천여 명이 72개 일본 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일련의 배상 및 위자료 청구 소송 등에 대한 법적 책임 소재를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교묘하게 계산된 발언이다.


정작 한심한 것은 일본의 꼼수에 넘어간 우리 외교부의 안이한 태도다. 외교부는 논란의 문구를 두고 "전방위적 외교 노력이 이뤄 낸 값진 성과"라며 자화자찬하고 있다. 그러나 내용을 뜯어보면 외교부의 자화자찬은 혼자서 성급하게 터뜨리는 삼페인꼴이다. 


국제사회에서 강제 노역은 통상 'enforced labor'로 표현하는데, 백번 양보해 문제의 문구가 그런 뜻을 가졌다 하더라도 강제 노역의 주체가 전혀 명시돼 있지 않아 한마디로 헛방이라는 말이다. 


문제의 문구도 '등재결정문'과 '주석'이 아니라 3차례 과정을 거쳐 겨우 찾아볼 수 있는 '일본 측 대표 발언'으로 숨어 있어 국제사회 공식 언급 효과는 극히 미미하다.


1003-사설 사진.jpg


애초 한국은 일본의 징용시설 문화유산 등재 시도가 알려지자 등재 불가라는 입장을 정했고 여의치 않을 경우 강제 징용 사실 명기에 승부를 걸었다. 일본의 목적은 강제 징용시설의 세계 유산 등재였음은 더 말할 나위 없다.


협상 결과 일본은 문화유산 등재란 성과를 얻어 환호하고 있고, 한국은 원하던 바를 얻지 못했다. 
그럼에도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협상 결과를 두고 “우리의 전방위적 외교 노력이 이뤄낸 값진 성과”라고 자화자찬을 하고 있다. 


일본이 이와 같이 표리부동한 태도를 취할 수 있는 배경에는 한국 외교부의 안이한 대응과, 성과를 내겠다는 조급증이 있었다. 
이런 태도가 원인을 제공한 측면이 적지 않다. 피해자단체를 중심으로 하는 시민사회와 달리, 한국 외교부는 처음부터 전쟁범죄 유적 7곳을 반드시 제외하겠다는 의지가 없었다고 할 수 있다. 


메이지시대 산업시설의 유네스코 등재가 목전에 닥치자 여론을 의식 뒤늦게 외교전에 뛰어들었다. 
따라서 치밀한 전략이나 대응 매뉴얼이 부재한 상태에서 한일 간 교섭에 들어갔으며, 결국 일본의 잔꾀에 말려든 꼴이 되고 만 것이다.


우리 정부가 실제로 따낸 것은 강제 노역 사실을 알리는 정보센터 설립에 불과하다. 
하지만 정보센터 설립도 강제 사항이 아니며, 설사 설립돼도 이번에 등재된 23개 시설 중 7개에 한국인 5만 8천 명이 강제 동원된 사실이 분명히 적시될 수 있을지 큰 의문이다. 


외교부가 하반기 한·일정상회담 개최를 위해 양보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일제하 노역의 ‘강제성’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일본의 입장은 여전히 불변이다. 


우리 외교가 어떤 성과를 얻었다는 것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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