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만 제국의 이스탄불 : 제국의 화려함
하루에 다섯 번 ‘아잔’이 울려 퍼지는 나라, 다른 유럽에서는 만날 수 없는 경험을 할 수 있는 터키.
이스탄불은 서울의 약 1.5배 면적에 무려 약 2000만 명의 사람이 모여 살고 있는 도시다. 이들에게 가장 대중적인 교통수단은 트램이다. 트램이 테오도시우스 성벽을 지나가면 나는 1453년 5월 29일의 순간을 떠올린다. 대포가 터지는 굉음과 거대한 폭파 소리와 함께 깃발을 휘날리며
말을 타고 달려오는 오스만 제국 병사들의 우렁찬 함성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그 때 백마를 타고 늠름하게 이 성벽을 들어왔던 21살의 젊은 술탄, 메흐메트 2세 (Mehmet II, 1432-1481, 재위: 1444-46, 1451-1481 ).
테오도시우스 성벽
콘스탄티노플
함락은 ‘그저 야심에만 찬 풋내기, 선대 술탄이 남긴 영토를 현상 유지만 하면 다행인 그릇’이라고 평가되던 그를 영웅으로 바꾸어 놓은 전쟁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출신이 천한 노예였다. 두 명의 형제가 있었지만 한 명은 병으로 한 명은 암살되어 11살 어린 나이에 술탄의 자리에 올랐다가 능력을 보이지 못하자
아버지에게 자리를 빼앗기게 되었다. 게다가
친어머니를 여의자 아버지는 새 여자와 그 사이의 아들에게만 관심을 보였고 아버지의 측근들에게는 무시를 당하며 모두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 버린 남자가, 바로 메흐메트 2세였다. 그는 누구보다 독하고 강해지려 노력했을 것이다. 그가 금은보화보다도 가지고 싶어했던 그곳이 바로 이스탄불이다. 이 성벽을 넘기 위해 무려 57일이라는 대 공방전이 펼쳐졌다.
처음
이스탄불에 왔을 때 내가 느낀 감정은 역동과 친화력이었다. 이스탄불에서
의자에 앉아 조용히 사색을 즐기기란 조금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풍경에 취해 자리에 앉아 쉬려고 하면 늘 가까이 다가와 말을 거는 터키인들, 그리고 내 시선을 사로 잡아버리는 애교덩어리 고양이들. 모두가 그들의 언어와 표현방식으로 다가온다.
신은 위대하다. 신은 위대하다.
신은 오직 한 분이시고, 그분
이외에 그 누구도 없도다.
무함마드는 그가 보낸 사도이니라..
예배 보러 올지라. 성공의 길로 올지라.
신은 오직 한 분이시다.
- 아잔의 내용 -
아잔(Azan)이 울려 퍼진다. 아잔이 울려 퍼지자 사람들의 행동이 분주해진다.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이 소리가 울려 퍼지는 그 곳을 향해
간다. 이름 때문일까.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아 놀라곤 했던 그 소리가 이제는 들을 때마다
마음이 아련해지는 이유는…
아야소피아
박물관 맞은편에 있는 술탄 아흐메트 1세의
자미, 우리에게는 블루모스크라 부르는 것이 더 친숙한 곳. 1616년 오스만제국의 14번째 술탄, 아흐메트 1세(Ahmet I, 1590-1617, 재위: 1603-1617)는 블루모스크를 지었다. 이 때는 오스만제국의 위세가 가장 크고 평화적인 시기였기 때문에
제국의 위력을 나타내기 위해 비잔틴 문화를 대표하는 아야소피아 맞은편에, 그보다 더 아름답고 화려한, 자신의 이름을 딴 모스크를 지을 것을 명령했다. 터키에서 유일하게 첨탑이 6개가 있는 모스크, 제국의 위상을 보여주려 했던 아흐메트 1세는 ‘황금’(Altın,
알튼)으로 첨탑을 세울 것을 명령하나 이를 듣고 나라의 재정을 걱정했던
대신들은 황금과 발음이 비슷한 숫자 ‘6’(Altı, 알트)으로 기지를 발휘해 6개의 첨탑을 세웠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블루모스크 외관
블루모스크는
외관뿐 아니라 내부에서 또 다른 매력을 발산한다. 260여개의
스테인드글라스 창이 실내를 비추며 이즈니크에서 생산된 2만천여장의
푸른색 타일들이 빛과 어우러져 실내에 푸르름을 발산한다. 이
곳에 블루모스크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유도 이 때문이다.
눈을
감고 무릎을 꿇고 신을 향해 내 몸을 낮춘다. 이곳에서는
가진 자도,
덜 가진 자도 모두
신 앞에서 평등해진다.
들어올 때는 이방인이었으나
경건함 속에 시간이 흐른 후 무슬림 여인처럼 히잡을 두른 내 모습이 낯설지 않음을 느낀다.
두
문화가 공존하고 있는 술탄아흐멧 광장은 이스탄불의 단면을 보여주는 장소이다. 비잔틴제국 때 세워진 성당이 오스만제국에서는 사원이 되었고 지금은
박물관이 되었다.
마주하고 있는 블루모스크까지
가기 위해서 천여 년이라는 역사의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우리는 두 건물을 단 오분이면 걸어서 갈 수 있다. 두
사원의 거리는 가까운데 두 종교의 거리는 멀기만 할까. 두
종교의 갈등이 천여 년이라는 시간이 아니라 오분이면 다가갈 수 있을 만큼 가까워진다면 좋을 텐데 생각해본다
오스만
제국의 왕을 ‘술탄’이라 칭한다.
술탄들의
거처 톱카프 궁전.
‘대포 문’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성벽에는 대포가 있었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약 21만평의 부지에는 4개의 정원이 있다. 정원도 그곳에 있는 건물도 모두 이 곳을 거쳐간 술탄의 취향에
따라 제 각각의 느낌을 자아낸다.
1453년 꿈에도 그리던 이스탄불을
장악한 술탄 메흐메트
2세가 만든 궁전, 15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중반까지 400여년 간 오스만제국의 술탄 24명이 이 곳을 거쳐갔다.
오늘도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아가는 그곳에는 누구든지 호기심을 가질만한 공간이 있다. 아랍어로 ‘금지’, ‘금남’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하렘(Harem). 베일 아래 감춰져 있는 여성의 모습에 흥미를 느끼지 않았을 유럽남성은
없을 것이다.
<아라비안 나이트> 혹은 <천일야화>로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했던 그곳, 하렘은 예술가들에게 있어 상상력을 자극 하는 곳이기도 하다.
하렘에
발을 들인 순간 떠오르는 색은 잿빛 즉 무채색이다. 입구에서
처음 본 방의 이름은 환관 내시의 방. 하렘으로
향하는 키를 들고 있었던 거세를 한 흑인 환관이 이곳을 지키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니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이다. 밝고 화려한 것을 상상했던 나의 눈 앞에는 좁고 어두컴컴한 골목, 울퉁불퉁한 돌 바닥, 200-300개가 넘는 방과 조그마한 창살이 달린 창문뿐이다. 울퉁불퉁한 돌 바닥에 자꾸 발을 헛딛여 신경이 쓰일 정도다. 술탄은 이곳에 들어갈 때면 바닥에 은이 달린 신발을 신었다고
한다. 돌 바닥과 신발의 마찰음이 ‘덜그럭’ 하렘 내부에 울려 퍼지게 되고 그 소리를 들은 여성들은 모두
술탄의 행차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또는 술탄의 눈에 띄지 않도록 자신의 모습을 감추어야 했다.
하렘의
공간에 있었던 시간 나는 잠시 그 시대 여인의 삶으로 돌아간 듯 하다. 향락과 유희로 가득했을 것만 같았던 그 공간에서, 한번이라도 술탄의 눈에 띄려 애쓰던 여인들의 눈빛이 보이는 듯
했다. 선택 받은 자에게는 화려하고 호화로운 삶이 따랐지만 선택 받지
못한 여인에게는 지독한 고독과 외로움이 따랐던 양면이 공존했던 하렘. 외부와 단절된 공간에서 격식을 차린채 지켜야 할 의무가 있고 충성과 배신이 따랐던
곳, 오늘도 무채색의 그 공간에서 수많은 관광객들은 각자 상상의 나래를
펴며 하렘에 색을 입혀갈 것이다.
명실상부한 제국의 핵심이었던 톱카프 궁전, 1856년 돌마바흐체 궁전에게 영광을 넘기다.
톱카프 궁전 정원
복잡한
술탄아흐멧 광장을 지나 보스포러스 해협 쪽으로 이동하면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는 궁전이 있다. 바로 돌마바흐체 궁전이다. ‘가득찬 정원’이라는 뜻으로 바다를 메운 곳에 세워졌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돌마바흐체 궁전은 바로크, 로코코 양식 등 서구의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을 모델로 만들어졌다.
근대화로 쇠락해가는
오스만제국의 부활을 위해 약
14톤의 금, 약 40톤의 은 그리고 유럽각지에서 가져온 가구와 장식품, 명화로 화려하게 장식하였지만 이 때문에 재정부담이 커져 제국의
몰락을 재촉해버린 비운의 궁전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들이 보여주려고 했던 화려함은 지금까지도 이어져 많은 관광객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는 장소가 되었다.
돌마바흐체 궁전
6명의 술탄이 이 화려했던 돌마바흐체 궁전에서 생활을 하였고 오스만
제국의 화려함은 역사 속으로 잠든 채 터키는 공화국을 맞이하게 된다. 터키의 초대대통령,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Mustafa Kemal Atatürk, 1881-1938, 재위
: 1923-1938)가
관저로 사용하였고 이곳의 집무실에서 사망한다.
돌마바흐체
궁전 앞 카페에서 보스포로스 해협을 바라보며 깊고 진한 터키 커피를 마시곤 한다. 하루의 해가 지는 것처럼 영원할 것 같았던 오스만제국도 역사
속으로 저물어 간다.
영국의 역사학자 토인비는 이렇게 말했다.
“이스탄불은 인류 문명의 살아있는 옥외 박물관이다.”
나폴레옹은 이렇게도 말했다.
“만일 세계가 하나의 나라라면 그 수도는 이스탄불일 것이다.”
두
대륙 위에 서 있는 세계유일의 도시, 이스탄불. 이스탄불을 중심으로 유럽과 아시아가 나뉘고수많은 뱃길과 육로가
뻗어있다.
화려했던 오스만제국의
역사가 살아 숨쉬는 터키.
제국의 화려함 뿐 아니라
지금도 새로운 일들이 가득한 터키. 이스탄불에서는
어떤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글: 이나래, 사진: 임현철, 편집: 김지영
제공
: 유로자전거나라 www.eurobike.kr
l 본 원고은 daum라이프에 연재했던 터키 편 원고를
재편집한 것입니다.
원문보기: http://romabike.eurobike.kr/bbs_2013.php?act=view&table=tongsin&gr=1&gcd=2912&page=3&T_CON=TR&Skind=&Skey=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