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람에서 무덤까지 – 터키인의 生과 死
누구에게나 삶은 하나이다. 태어나서 처음 겪는 일들로 삶은 이루어진다. 그리고 하나뿐인 삶은 소중하다.
오늘도 어떤 가정에는 축복을 받으며 소중한 생명이 태어나고, 어떤 가정에는 생을 마친 이와의 슬픈 이별을 준비한다. 태어나고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모습은 모든 살아있는 생명이라면 치르게 되는 통과의례다.
세상에는 다양한 문화와 종교가 있다. 나는 터키에서 그들이 사는 방식과 어울려 지내며 그들의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어떤 문화가 옳고 그른 것인지 또는 우월과 열등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는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것을 매 순간 느낀다. 아마도 짧은 여행이라면 만날 수 없었으리라. 현지인의 가족 행사에 이방인인 내가 초대를 받고 함께 웃고 즐길 수 있는 시간이 온 것을 보니 뿌듯하기도 뭉클하기도 하다. 오늘은 책에서는 만날 수 없는 터키인 삶의 희노애락의 순간을 공유하고 싶다.
터키를 여행하게 되면 기억에 남는 문양이 있다. 푸른색의 조약돌 같이 생긴, 관광지 또는 기념품 가게에서 유난히 많이 볼 수 있는 장식품이다. Nazar boncuğu (나자르 본주), 우리에게는 <악마의 눈> 이라고 불려지는 물건이다. 푸른색, 검정색 눈동자처럼 보이는 이것의 강력한 힘이 나쁜 기운으로부터 즉 악마들에게서 나를 보호해 준다고 믿는 부적과도 같은 물건이다. 터키인들은 이것을 자신의 몸, 가정집의 현관, 차량 내부 또는 상점 입구에 걸어 놓는다.
터키인들은 주말이 되면 대부분의 시간을 가족과 함께 보낸다. 관광지를 벗어난 공원 또는 이슬람사원 (Cami) 주변에는 아이들과 함께 나들이를 나온 현지인들로 북적인다.
수 많은 사람들 속에 왕자님 복장을 하고 있는 아이들이 보인다. 처음에는 ‘오스만제국 왕가의 후손인가?’ 생각했다. 그런데 한 두 명도 아닌 하루에 대, 여섯 명의 아이들을 만나고 집으로 돌아온 날, 문득 궁금했다. ‘왜? 왕자님 복장을 입고 있을까? 무엇을 하는 아이들일까?’ 이런 복장을 입고 있었던 남자아이들은 화동도 아니었고 방송에 출연하는 아역배우도 아니었다. 할례식을 준비하는 아이들이었다.
터키인에게 할례는 사내아이가 성인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는 절차 중 하나이며 위생 상 불결해 질 수 있는 부분을 제거함으로써 신 앞에서 청결한 몸과 마음을 유지하려는 경건한 종교 활동이다. <할례를 하였다>는 곧 <진정한 남자가 되었다>라는 의미로 성인사회에 속할 수 있는 일원이 되는 것이다. 남자다움과 용기를 시험할 수 있는 단계로 보통 터키에서는 4세에서 15세 사이에 할례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앞으로 이런 복장을 입고 있는 귀여운 남자아이가 여러분 옆을 걸어간다면 “어른이 된 것을 축하해” 하고 인사를 나눠보는 것은 어떨까? 아마도 이 아이는 아직 자신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유난히 꽃을 좋아하는 터키사람들 때문인지 동네 곳곳마다 꽃가게가 있다. 가정을 꾸미기 위해 꽃을 사가는 여성들과 퇴근길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꽃을 사가는 남성들의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다. 이렇게 성인이 된 남녀가 만나 서로 사랑하고 평생을 함께 할 반려자가 되기로 약속을 한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쇼핑센터와 거리에는 파티복, 웨딩드레스를 판매 또는 대여하는 상점이 많다. 소중한 순간 신부의 웨딩드레스는 유난히도 화려하고 아름답다. 화창한 날 드레스를 입고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웨딩 화보 촬영을 한다. 특히 파묵칼레 또는 카파도키아의 멋진 자연경관을 배경 삼아 찍는 사진은 그들이 누릴 수 있는 행복 아닐까?
터키의 결혼식은 우리나라 결혼식처럼 간소하지는 않다. 약혼식도 있고 결혼식은 보통 이틀 동안 진행된다. 우리의 초 스피드, 초 간단 결혼문화와는 많이 다르다. 메인 결혼식의 전날 Kına gecesi <헤나의 밤>가 열린다. 서양의 처녀파티와 같은 개념으로 신부와 신부의 친구들, 오직 여자들만 모여서 화려한 파티복을 입고 한껏 치장한 채 함께 음식을 나누고 춤을 추는 시간을 갖는다. 터키의 경우 헤나가 악운으로부터 지켜준다는 믿음을 갖고 있기 때문에 신부의 손바닥을 헤나로 물들이며 장식해준다.
한쪽에 대기하고 있던 친구들과 친척들이 초를 양쪽에 들고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면서 나오고 홀 중앙에 의자를 놓고 신부를 앉게 한다. 그런 후 신부의 머리 위에 빨간색의 천을 덮고 친구들이 노래에 맞추어 주변을 돌기 시작한다. 신부의 얼굴은 베일에 가려져 더욱더 신비한 모습을 자아낸다. 이 의식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구슬픈 노래가 흐르며 모든 사람들은 신부가 울기를 바란다고 한다. 과거에는 여자가 시집을 가면 친정에 돌아오기 어려웠기 때문에 결혼식 전날 밤에 신부가 눈물을 흘리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슬픈 마음을 달래기 위해 천을 덮고 그 시간 동안 신부가 편히 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날의 신부는 이 시간 동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그리고 결혼식 당일이다. 우리는 보통 아버지의 손을 잡고 신부가 등장하지만 터키는 신랑과 신부가 동시에 입장을 한다. 그리고 터키 결혼식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춤이다. 음악이 켜지며 입장을 한 신랑 신부는 그대로 손과 허리를 맞대고 부르스를 추기 시작한다. 그러면 하객들도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모두 무대로 나와서 함께 춤을 춘다. 결혼식에서만 들을 수 있는 리듬이 반복되는 신나는 음악에 맞춰서 서로 새끼손가락을 걸고 한쪽 방향으로 돌면서 같은 동작을 반복한다. 우리의 강강수월래 같은 터키의 춤이다. 터키의 결혼은 춤으로 시작하여 춤으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한바탕 신나는 춤 파티가 끝이 나면 터키 결혼식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축의금 전달식이 시작된다. 우리처럼 축의금을 봉투에 넣어 전달하는 것이 아닌 직접 신랑 신부, 그들의 옷에 주렁주렁 달아준다. 신랑과 신부의 목에 머플러와 같은 천이 둘러지고 하객들은 그 천에 현금이나 금 동전을 붙여준다. 이 축의금 전달식은 하객이 수 백 명이면 수 백 명 모두 직접 인사하며 붙이고 기념촬영이 끝날 때까지 계속된다. 축의금의 액수도 다양하다. 금액이 높으면 높을수록 위에 붙인다. 목과 어깨에 느껴지는 무게가 무거워질수록 이 결혼을 축하해주기 위해 찾아온 이들이 많음을 의미하기 때문에 신랑 신부는 힘들어도 이 시간을 기쁘게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결혼식에도 나라마다 다양한 재미있는 그들만의 문화가 있다는 것을 느꼈던 순간이다.
마지막으로 결혼을 인정하는 담당공무원이 나와 서약을 받고 혼인신고를 하는 절차가 따른다. 모두가 함께 보는 앞, 증인 앞에서 맹세하고 결혼식은 다시 한번 흥겨운 파티로 바뀐다. 이렇게 오후에 시작된 예식은 늦은 밤이 되어 끝나곤 한다.
우리의 결혼식이 떠오른다. 우리의 결혼식과 비교해보면 터키의 결혼식은 시끄럽고 정신도 없다. 준비할 때는 복잡하지만 1-2시간 후 끝나고 나면 모든 하객이 썰물처럼 빠지며 허탈하고 허무한 느낌마저 드는 한국의 결혼문화가 조금은 아쉬워지는 순간이다. 결혼식을 주최하는 입장에서 단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결혼이 아닌 그리고 식에 초대받은 사람들도 인사치레로 참석한 것이 아닌 양쪽 모두 신랑신부의 새로운 출발을 축하해주기 위해 참석하는 결혼문화가 부럽기도 하다. 결혼시즌만 되면 하루에 두세 건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동분서주해본 경험이 모두 한번 쯤은 있을 것이다. 터키에서 하루에 두건 이상의 결혼식에 참석하는 것은 이 모습을 봤다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 것이다. 12시간 이상 춤을 출 수 있는 흥과 체력을 가지고 있는 분들은 가능하겠지만.
가족이란 울타리 안에서 새로운 사람을 맞이하기도 하지만 때론 함께했던 사람을 보내야 하는 순간도 찾아온다. 이슬람에서 죽음은 종말이 아닌 영혼과 육체의 연결고리가 소멸함을 의미한다. 또한 죽은 자를 화장하면 영혼의 안식처가 소멸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화장이 아닌 매장을 한다. 매장하기 전까지 사자가 고통을 느낀다고 생각하는 이슬람의 장례에는 빠른 매장 (24시간 이내) 을 하며 사자의 얼굴이 사우디아라비아 메카 (이슬람교 제1의 성지)의 방향으로 향하게 고정시킨 후 매장한다. 대부분 가족 묘로 서, 너 명이 매장될 수 있도록 묘실은 넓게 판다. 골목길에는 표지판이 길을 안내해주고 있다.
터키에서는 집과 시내 가까운 곳에서 공동묘지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시내에 있는 공동묘지에는 카페가 자리잡고 있다. 이 카페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유명한 관광지이다. 망자들의 공간 위에 카페가 있는 것도 놀라웠지만 묘지가 있는 골목길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편안하게 걷는 사람들의 모습도 새롭게 다가왔다. 사람들의 행동만 본다면 이 곳은 공동묘지가 아닌 평범한 돌담길이라 할 수 있다. 그들에게 죽음은 두려운 존재가 아닌 언젠가는 겪게 되는 인생의 통과의례이기 때문에 이 장소 역시 누구든 쉽게 찾아올 수 있는 일상의 한 공간이다.
묘지 주변에 고양이가 유난히 많았다. 이제야 이유를 알 것 같다. 찾아오는 가족들을 보고 싶어하는 망자들이 고양이로 다시 태어난 것은 아닐까?
사회에서 가장 작은 집단, 가족.
가족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는 터키사람들, 나라마다 문화가 다르지만 유난히 터키는 가족과 함께하는 일상의 순간이 많다. 핵가족화 된 우리 사회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지만 그래도 소홀해지는 것도 바로 가족이다. 타지에서 혼자 생활을 하다 보면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깨닫게 된다. 늘 곁에서 위해주고 지켜주는 든든한 버팀목 가족의 모습을 떠올리며 감사의 안부 인사를 전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글 _ 유로자전거나라 이나래
사진 _ 유로자전거나라 이나래, 최동훈, 신영아
편집 _ 김지영
제공 : 유로자전거나라 (www.eurobike.kr)
● 본 원고는 daum라이프에 연재했던 터키 편을 재편집한 것입니다.
원문보기: http://romabike.eurobike.kr/bbs_2013.php?act=view&table=tongsin&gr=1&gcd=3013&page=2&T_CON=TR&Skind=&Sk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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