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박물관 및 미술 기행 62 / 내셔날 갤러리

by 한인신문 posted May 19,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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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와 종교개혁
한스 홀바인(Hans Holbein tr) 의 대사들 4


1533년, 이 때는 스페인이 유럽의 패권을 장악하고 절대 권력을 행사하는 시기로 프랑스는 스페인을 견제하며 자국의 힘을 은밀히 키우고 있었다. 두 나라는 서로 경쟁적으로 영국과의 관계를 강화하려고 했다. 당시 헨리 8세의 재혼이 영국이 스페인과 사이가 악화되거나 전쟁이 발생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누구나 예상할 수 있었다.
헨리 8세의 전 부인 캐서린(Catherine Aragon)은 죽은 형의 아내이었고 스페인의 왕 페르디난도의 딸 공주였다.
그는 어쩔 수 없이 그녀와 결혼을 해야만 했다. 당시 이류 국가 였던 영국의 왕이 스페인의 공주와 결혼을 한다는 것은 명예이기도 했지만 안전 보장을 위해서도 필요했다.
추밀원은 스페인과의 계속적인 동맹을 위해 즉위한 헨리 8세에게 형의 아내와 결혼하라고 간청해 그는 정략적으로 결혼을 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혼은 교황청의 갈등뿐만이 아니라 스페인과 전쟁을 할 위험도 있었다. 당시 파견 나와 있던 스페인 대사는 본국의 이익과 앞으로의 영국과의 관계를 위해서도 이들의 이혼을 막아야만 했다.
프랑스는 두 나라가 대립할 수 있는 이런 상황을 즐거운 시선으로 지켜보며 이들이 파국으로 가 전쟁으로 가기를 은근하게 바라고 있다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장 드 댕드빌 대사는 이 때 이들의 동정을 파악해 프랑스 국왕 프랑수아 1세(Francois I)에게 보고 했음이 틀림없다.
그러므로 그의 임무는 알려진 대로 정치, 종교를 둘러싼 갈등이 파행으로 치닫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추긴 것이 아닌가 필자는 의심할 수 밖에 없다.
대사는 정보를 수집하며 반대로 파국으로 치닫게 해 전쟁이 나 스페인이 약화되기를 바라고 있었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이런 시대적인 상황 속에서 프랑스의 두 엘리트인 댕드빌 대사와 셀브 주교의 표정은 엄숙할 수 밖에 없다. 천체와 지구의로 세상을 묘사하고 지구의가 있는 하단 부분에는 가톨릭과 신교의 갈등을 부숴진 악기로 구교와 신교가 갈등하고 있는 상황을 표현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여전히 의문은 남아있다. 대사는 왜 이런 그림을 홀바인에게 그리게 했는가? 그림 앞에선 그의 종교적 입장은 무엇이고 어떤 마음으로 그는 포즈를 취했는가를 다시 구체적으로 들여다 보자.
어쩌면 이들은 가톨릭 교회내의 진보주의 자로 신교로 개혁할 의사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두 사람은 자주 만나서 교황청의 타락상을 비판하고 울분을 토하며 새로운 교회를 모색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두 사람의 행적을 추적해 보면 끝내 가톨릭 교회를 떠나지 않았다.
주교는 후에 가톨릭 교회 안에서 더 중요한 보직을 맡았다.
대사도 종교적인 변화가 있었다는 기록은 없다.
결국 이들은 가톨릭 교회의 개혁과 일치를 희망하던 진보세력 이었을 것이라고 가늠할 수 밖에 없다. 한 쪽 구석에 숨겨져 반쯤 만 들어나는 십자가가 이러한 사실을 뚜렷하게 증명해 주고 있다.
숨고 싶은 예수님,
당시에 이렇게 예수님의 성상을 한 쪽 구석에 홀대를 받고 표현한다는 것은 아주 커다란 모험이다. 십자가의 성상은 신비와 권위 성스러움의 상징으로 비중 높게 표현되는 것이 관례였다.
대사는 홀바인에게 자기의 의사를 전달해 화가는 숨고 싶은 부끄러운 예수님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 틀림없다.
물론 당시 타락한 가톨릭 교회의 성직자와 스페인 국왕에게 좌지 우지 당하는 교회의 몰락을 가슴 아프게 지켜보는 예수를 상징한 것이다.
그림 속에 그려진 소품과 배경으로 보아 대사와 주교는 무언가 중대한 결심을 하고 이 그림을 주문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리고 그것은 아주 비싼 비용을 지불하고 이러한 거대한 그림을 그리게 했을 만한 중요한 것이다.
단지 당시의 가톨릭 교회의 타락상과 종교상의 갈등을 기념하기 위해 이런 포즈를 취하고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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