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박물관 및 미술 기행 66 / 내셔날 갤러리

by 한인신문 posted May 19,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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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작과 위조의 미술사 3
빛의 마술사, 터너


클로드 로랭을 넘어선
터너
윌리엄 터너(Joseph Mallord William Turner, 1775-1851)는 초기에 사생적 기법에 충실하고 로랭(Lorrain, Claude)의 그림을 습작하면서 결국은 자기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찾아 내었다.
그는 자신의 그림이 로랭과 견줄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의 그림과 나란히 걸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터너는 로랭의 세계를 훨씬 뛰어넘어 미술사에 새로운 길을 열어주었다.
현대 영국을 대표하는 미술사가이자 미술비평가인 허버트 리드 (1893-1968)는 터너를 “영국회화의 장대한 거인”, “영국이 낳은 아마도 가장 위대한 화가”로 평했듯이 영국의 대가로 평가하고 있다.
초기에 성실한 자세로 자연을 묘사하던 그는 마침내 자기 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찾아낸다.
터너는 자연을 단순하게 조화를 갖춘 시각적 구도로만 보지 않고 서사적 구조로 읽어내고 그 신비감과 극적인 변화를 거침없이 표현해 내었다.
그가 묘사한 자연은 꿈틀거리며 일어설 것 같이 힘이 고여 있다.
터너의 그림 특징은 첫째 생동감이 있고 둘째 웅장함 셋째 서사적 구조가 있다는 점이다.
말년의 작품에서 그는 극도로 절제한 표현과 색의 효과적 사용으로 화면을 지극히 단순화 시키며 강한 붓의 터치로 꿈틀거리며 살아있는 자연을 표현하는데 성공하고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당시 미술사의 변방인 영국에서 활동한 까닭으로 세계미술사 속에 자신을 확실히 껴 넣을 수 없었다. 작품의 질이나 솜씨만큼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태양은 신이다
(The sun is God)
윌리엄 터너(Joseph Mallord William Turner, 1775-1851)는 1775년 이발사의 아들로 태어나 화가이며 건축가인 토마스 말턴과 건축가 토마스 하드워크 밑에서 그림을 배우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건축 조감도, 시골 풍경 및 성의 정밀도 등을 그렸다.
1789년에 로열 아카데미에 입학해 그림 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이 때 조수아 레리놀즈가 원장으로 재직했었다. 이듬해 아카데미 연차전(年次展)에 수채화를 출품했다.
그는 1802년 유럽으로 건너가, N.푸생, C.롤랭의 고전 주제적 풍경화에 크게 영향을 받아,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풍경화인 500점이나 되는 스케치를 남기고 대부분의 작품이 데이트 브리튼 터너관에 전시되어 있다.
터너는 평생 결혼은 하지 않았으나 동거한 연인 사라(Sarah Danby)와 사이에 두 딸(1801년 출생과 1811년 출생)이 있다.
76세가 되던 해 마지막 연인인 소피아(Sophia Caroline Booth)의 첼시 집에서 그는 사망했다.
임종 시 마지막 남긴 말이 태양이 신이다(The sun is God)였다.
이 말은 그가 얼마나 빛에 대해서 탐구하고 평생 동안 그것을 자신의 작품 안에 수용하며 살았다는 것을 잘 반증해 주고 있다.
그는 세인트 폴 성당에 묻히기를 원해 조수아 레이놀즈의 옆에 매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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