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더니즘의 다양한 갈래의 미를 찾아서
중세나 근세에선 하나의 미술사조와 유행이 수백 년에서 수십 년 동안 유럽의 전 지역에서 유통되었다. 당연 시대의 예술사조와 경향은 일반에도 파급되어 상식화되기도 한다. 그러나 20세기를 전후로 하여 곳곳에서 새로운 미술사조가 소수의 개인 그룹에 의해서 동시에 등장함으로 대중들이 알기도 전에 사라지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예를 들어 산업혁명과 근대화 물결이 몰아닥치자 긍정과 부정적인 방향으로 미술 운동이 새롭게 전개되는데 전자는 비엔나세션과 바우하우스, 후자는 영국을 중심으로 나타난 윌리암 모리스의 수공예 운동이다. 이들은 대중들에게 파급되어 상식화되기 이전에 사라지고 오히려 후대에 와서 새로운 평가를 받게 된다.
후기 인상파 이후로 추상주의 운동과 입체파, 미래파와 야수파, 비엔나 세션, 아르 누보와 아르 데코, 표현주의 운동, 그리고 뒤를 이어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 등이 홍수처럼 유럽의 문화계를 덮쳤다.
그러나 이 같은 많은 사조들이 이즘에 한꺼번에 밀려온 것은 모두 우연히 아니라 필연적인 현상으로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 같은 필연적인 이유 때문에 이들이 모더니즘의 예술사조로 살아남고 오늘날까지 전해져 온 것이다.
입체파가 나올 수밖에 없었던 까닭
지난주에 설명대로 데이트 모던에 가면 제일 먼저 인상파 이후의 그림을 모은 전시관(Level 5: States of Flux의 룸 3)을 간 후에 다시 입체파가 태동된 흔적을 더듬어 보는 것이 좋다.
입체파가 발생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19세기 말의 사회적인 해체 현상이다. 일원론적이고 일심론적인 서구 기독교 사회가 붕괴된 까닭에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전기 르네상스부터 확립된 교황권은 로마의 교회 중심으로 전 유럽의 사회를 하나의 시각으로 귀속 시키고 통일화 한다.
이 같은 일원론적인 중심사회를 만들어주고 유지시켜주는 중대한 역할을 했던 것이 바로 교회 미술이었다. 미술은 원근법을 보급시키고 파급시키며 시각적 통일을 자연스럽게 형성시켜 주었다. 당연 원근법이 더욱 굳건하게 확립되어 거의 300여 년간 지속된다.
그러나 4대 문명에 대한 발굴과 공개로 제 3세계의 문화에 대한 새로운 발견과 인식, 두 번째로 산업 혁명이 준 사회적 해체 현상에 의해 일원론적인 눈과 초점으로는 더 이상 세계를 들여다볼 수 없는 한계 상황에 이르게 된다.
이에 어쩔 수 없이 다원론적인 시각과 하나의 사물을 보는 데에도 여러 개의 시각이 필요함을 깨닫고 일원론적인 사고가 해체되기에 이른다.
세잔느의 사과를 아담과 이브의 사과와 뉴톤의 사과에 이어 세 번째로 인류의 사고를 바꾼 사과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이런 까닭 때문이다. 그는 다원론적인 시각을 한 화면의 구성에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시각을 그대로 브라크와 피카소는 풀어헤쳐 분해하는 작업을 시작하고 그 작업에 입체파란 이름이 붙여지게 된 것이다.
같은 전시관의 룸 3(Level 5: States of Flux의 룸 3)에서 바로 우린 왜 브라크와 피카소가 세잔느의 눈을 빌어 사물을 분해하고 파괴를 했는가를 읽어낼 수 있는 것은 물론이다.
전하현/ writer, hyun.h.Jun 미술사가, 문화 평론가, 미술사를 강의하며 본지에 만화로 보는 세계문화사(유로저널)를 연재하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