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판Dheepan »
자크 오디아르Jacques Audiard, 프랑스 개봉 2015년 8월 26일
스리랑카 타밀 반군 출신인 디판은 끝이 보이지 않는 내전을 벗어나기 위해 프랑스로 망명을 결심한다. 망명의 유리한 조건을 위해 디판은 생면부지의 여인 얄리니와 이 여인이 찾은 9살 전쟁고아 일라얄와 함께 프랑스에 발을 내리고 난민 절차를 진행 중이다. 가짜 가족을 구성하고 프랑스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 디판은 파리 근교 슬럼가 아파트 관리인으로 일하게 되면서 잠시의 행복이 찾아오는 듯 했지만 또 다른 폭력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영화포스터
디판, 평범한 일상을 꿈꾼다
잔인하다. 폭력이 일상이다. 그것이 스리랑카의 전쟁터든 프랑스의 일상이던. « 디판 »은 이러한 척박한 현실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전쟁의 폭력을 피해 난민의 길을 선택한 디판이 찾고자 하는 것은 평화로운 안식처, 그저 평범한 삶이다. 나라를 위해 싸웠지만 그 결과는 더 많은 인명피해를 초래하고 가족을 잃게 만들고 조국은 폐허가 되어가고 있다. 왜 싸워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부귀영화를 바란 것이 아니었다.
가족과 함께 오붓하게 살기 위해 총을 들었던 디판이었지만 이제 그 가족은 없다. 망명을 결심한다. 생면부지의 여인과 소녀와 가짜 가족을 만들어 잘 산다고 알려진 유럽의 한 나라, 프랑스로 들어온다.
장미빛 인생은 아니더라도 열심히 일해 살아가고 싶었던 디판이 마주한 현실은 경찰에 쫓기는 노점상 신세였지만 다행히( ?) 이민국의 소개로 파리 외곽 슬럼가 영세민 아파트의 관리인자리를 얻게 된다.
마약과 폭력이 난무하는 슬럼가지만 그래도 이젠 제대로( ?) 된 일자리가 생겼다. 그리고 시간의 차이만 있을 뿐 자신과 같은 처지인 이민자들로 구성된 이 곳에서 잡초처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과 소소한 교감을 키워가며 삶의 터전을 다져가면서 얄리니와 일랴얄과의 새로운 가정을 만들 꿈도 가져본다.
모든 것이 불만이고 이 곳을 벗어나고 싶어하는 얄리니지만 또 다시 살아남기 위해 가정부 일도 하게 되고 일라얄은 학교를 다니게 된다. 스리랑카의 정글 속에서 게릴라전을 벌리던 디판의 손은 이제 뭐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는 이 곳에서 아파트의 고장 난 곳을 고치고 작업가방을 만들고 그리고 꼭대기층에 사는 할머니의 무거운 장바구니를 들어다 준다.
친척이 있는 영국으로 건너갈 기회만 엿보던 얄리니는 자신이 돌보는 거동이 불편한 노인과 어느새 인간적 공감을 이루게 되고(프랑스어를 하지 못하는 스리랑카 여인과 말을 하지 못하는 노인이지만 그러하기에 더욱 인간 본연의 감정만으로도 그들의 대화는 가능하다) 이제 막 출소한 마약 밀매범인 노인의 아들(또한 대화가 되지 않는다)에 대한 얄리니의 묘한 시선은 단순한 이성의 흔들림보다 더 깊은 인간에 대한 이해가 깔려있다.
비참한 현실 속에서 모두들 인간적 소통을 갈구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만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여전히 암울하고 삐거덕거린다. 그러한 의미에서 아직은 감정에 충실한 9살의 일라얄이 처음으로 교실에 들어서는 순간 아이들의 시선(각국의 아이들이 한 교실에 있다.
이민자들로 구성된 슬럼가의 전형성을 띄지만 그 상징성을 거부할 수는 없다)을 견디지 못하고 뛰쳐나와 디판의 품에 안기는 모습은 이들 내면에 잠식해 있는 불안을 드러내는 대척점에 서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새로운 생활에 동화되기 위해 나름의 최선을 다한다. 새로운 공동체에 대한 갈망이다.
밤마다 맞은 편 아파트를 오가는 갱단들의 모습을 창가에서 지켜보던 얄리니는 ‘마치 영화를 보는 거 같다’고 한다. 먼 세상의 일인 것 같지만 바로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기에 이것은 얄리니의 꿈이다.
이 창문을 통해 세상을 보는 얄리니와 스크린을 통해 이 영화를 보는 관객과 그리고 이 이야기는 남의 이야기라고 치부하는 우리들에게 감독은 과연 그러할까요 ? 라는 질문을 던진다.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던 일라얄은 싸움을 하게 되고 호출된 가짜 엄마 얄리니가 상대 아이 부모에게 사과를 하는 장면에서 카메라는 아주 멀리 떨어진 학교 바깥에서 창문너머로 그들을 지켜보게 만든다. 우리는 역시 관람자의 입장에서 이 현실을 구경 해야 하는가 ? 상황적 이야기 속에 감정이입을 배재한 감독의 연출은 그래서 더욱 강하게 다가온다.
자크 오디아르 감독은 자신의 영화세계를 ‘사랑’과 ‘폭력’이라는 두 화두의 싸움판이라고 말한다. 세상을 보는 그의 시선일 것이다. « 디판 »은 세상의 모순점에 대한 질문을 담은 감독의 시선인 만큼 현실적인 세밀한 분석과 맞닿아 있지만 또한 그 만큼 꿈만 같은, 조금은 관성적이고 작위적 영화 전개라는 약점을 갖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탈출구가 보이는 듯했던 디판의 일상이 다시 폭력의 중심으로 들어갈 때, 그리고 자신의 가족을 폭력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다시 총을 드는 디판의 모습은 아이러니한 세상의 모습이다.
그러므로 스리랑카에서 프랑스로 망명 온 한 남자의 이야기는 이 영화의 출발점이며 이를 통해 세상의 모순에 대해, 인간의 본질에 대해 질문을 던져보자는 감독의 제안은 여전히 유효하다.
« 디판 »은 올해 깐느 영화제에서 황금 종려상을 수상했다.
자크 오디아르, 2015년 깐느 영화제
사진 출처 알로시네
프랑스 유로저널 전은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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