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현장 30 > 아실 고르키(Arshile Gorky) 데이트 모던, 2월 10일부터 5월 3일까지

by eknews posted Feb 24,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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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 표현주의의 비극인가, 비극적 결말의 추상표현주의인가?

아실 고르키(Arshile Gorky) 데이트 모던,
2월 10일부터 5월 3일까지


경제가 심각하게 힘든 상황이 되면 사람들은 심각한 고통을 찾아 스스로를 위로하려고 한다. 미국이 1929년 대공황의 위기에 처해 곤궁해지자 미국인들은 당시 중국인의 처절한 가난을 묘사한 펄 벅의 대지를 구입하여 읽고 스스로를 나은 처지라고 자위한다.
세상이 혼란스럽고 복잡해져 미래를 예측할 수 없을 때는 사람들은 다시 판타지에 의존한다.
최근의 각종 판타지 물이 계속 쏟아지며 히트를 하고 있는 상황도 이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미술과 예술은 항상 이 같은 시대적 상황을 반영한다.
예를 들어 20세기 초에 다다이즘이 나온 것이 전 유럽 지식인들이 집단 허무의 열병을 앓은 결과이었고 이어 초현실주의로 빠지게 된 것은 현실에 대한 절망감 때문이었다.
그동안 서구 사회를 뒷받침해주었던 사회 시스템인 종교와 윤리, 국가관들이 다시 불안한 유럽 정세와 2차 세계 대전으로 붕괴되자 사람들은 모든 형상의 이미지에 회의를 갖게 된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필연적으로 나온 것이 프랑스에서 일어난 앵포르멜 운동이었고 미국에서 나타난 추상표현주의 운동이다. 1940년대에 나타난 난해한 추상표현주의는 사실 현실과 세계에 절망한 예술가의 좌절의 기록이고 고통의 번짐이었던 것이다.
현실에 대한 비극과 절망은 추상표현주의 작가에게도 예외 없이 나타난다. 대표적인 작가 잭슨 폴록은 자의적인 자동차 사고로 죽고 마크 로스코는 손목을 면도칼로 긋고 자살을 했으며 아실 고르키는 목을 매고 죽는다. 이들 모두 추상표현주의 작가들이었던 것은 결코 우연만은 아니다.

   아실 고르키(Arshile Gorky),
그 이름이 만든 비극

40대의 나이에 목을 매고 자살한 고르키와 60대 후반의 나이에 손목의 동맥을 끊고 자살한 마크 로스크는 모두 어린 시절 이민 2세 들이다. 고르키는 터키인으로 오토만 제국의 점령지였던 아르메니아에서 출생했으나 아버지가 미국으로 먼저 떠난 후, 어머니가 굶어죽는 것을 지켜본 비극을 겪는다. 15살에 미국에서 아버지와 만난 후 미술학교에 입학해 디자인과 공예를 배우며 미국의 화단에 뛰어든다.
그는 이때 본명 Vosdanig Manoog Adoian의 이름을 버리고 아실 고르키(Arshile Gorky),란 이름을 스스로 붙인다.
러시아의 작가인 고르키를 좋아한 까닭도 있지만 그 이름을 붙인 까닭은 다른 이유가 있었다.
아실(Arshile)이란 러시아어로 그리스 신화에서 영웅으로 등장하는 아킬레스란 뜻이고 고르끼(Gorky)란 의미는 ‘쓴맛’ 혹은 ‘씁쓸함’등 일종의 고통의 의미를 나타내는 영어의 비터(bitter)이란 의미다.
즉 그는 자기이름을 아킬레스의 건을 넘어서 아킬레스의 쓴 맛이란 이름을 걸은 것이다.

왜 그는 이런 이름을
스스로에게 붙인 것일까?

데이트 모던에서 특별 기획 전시중인 아실 고르키(Arshile Gorky)전을 보면서 필자는 그의 삶을 엿보았다. 짧은 시간에 수많은 미술가들과 만나 교류하며 보여준 예술적 방황 끝에 그가 찾은 독특한 그만의 세계를 보며 그만 가슴이 뭉클해지고 만다.
그는 초현실주의에 접근했다 다시 W.데쿠닝과 아틀리에를 쓰면서 그만의 유기적인 추상양식의 기법을 찾아낸다. 월리암 드쿠닝은 그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많은 작가를 만났지만 그는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고 내 머리 속에 못처럼 꽂히는 예술가로 우리는 바로 아주 좋은 친구가 되었다.  
I met a lot of artists ? but then I met Gorky... He had an extraordinary gift for hitting the nail on the head; remarkable. So I immediately attached myself to him and we became very good friends.
그러나 그는 아킬레스가 그의 약점에 의해 죽듯이 결국 자신의 이름의 의미대로 ‘아킬레스의 쓴맛’에 취하고 말았다.
교통사고의 후유증과 함께 고통을 이기지 못한 그는 목을 매고 말았지만 그의 예술은 영원히 우리 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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