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현장 31>
헨리 무어 (Henry Moore)의 조각들이 우리에게 주는 것들
테이트 브리튼 (2월 24일부터 8월 8일까지)
한 작가의 전 과정의 작품을 한 장소에서 볼 수 있는 것은 행운이다. 그것을 만약 실력 있는 큐레이터나 기획자의 띄어난 기획자의 전시장에서 볼 수 있다면 더욱 행운이다. 또 자기가 좋아하는 작가라면 일생에 한두 번 맞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테이트 브리튼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조각가 헨리 무어 전은 영국 전역에 있는 작품을 모아 그의 작품 세계를 한 눈에 한 장소에서 쉽게 파악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헨리 무어가 작품 활동을 시작할 1920년대부터 죽기 전까지의 대표작들을 모아 놓았다. 20세기의 최고 조각가로 불리어지고 있는 헨리 무어는 어쩌면 마지막 근대 조각가일지도 모른다.
1898년 모더니즘이 꿈틀 거리고 일어서려할 때 그는 요크셔의 캐슬포드에서 광부의 7째 아들로 태어났다. 캐슬포드(Castle-ford)의 수재들이 가는 그래머 스쿨에서 장학금을 받은 그는 당시 미술 여교사였던 앨리스 고스틱(Alice Gostick)에 의해 미술에 눈을 뜨게 된다. 초등학교 교사자격증을 취득한 이듬해인 1917년 소총부대원으로 세계 1차 대전에 참전한 후 돌아와 리즈 미술학교에 입학해 로저 프라이(Roger Fry)의 ‘시각과 디자인(Vision and Design)을 탐독하고 1921년 장학금을 받고 왕립 예술학교(Royal College of Art)에서 공부를 하며 대영박물관에서 원시미술과 네이티브(native) 미술에 깊은 감명을 받는다.
1922년 그는 미술학교를 졸업한 후 원시주의 작품과 아르카익등에 영향을 받은 작품들을 제작하기 시작하며 조각가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데이트 브리튼의 헨리 무어 전시장에서 첫 번째로 만나는 방이 바로 그의 초기 작품이 전시된 방으로 1920년대의 작품들이다. 더러는 아프리카 목조각 공예품의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작품과 입체파의 영향을 받은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두 번째의 방에는 1930년대의 작품으로 당시 세계적으로 유행이었던 쉬르레알리즘과 모더니즘의 변화를 수용하고 있는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독일의 바우하우스와 네덜란드의 데스틸, 이탈리아의 미래주의 등 모더니즘의 물결 속에서 다시 1930년대의 초현실주의 경향들이 녹아있는 그의 작품을 음미할 수 있다.
다음 방에는 그의 인간적인 정서가 잔뜩 녹아있는 ‘모자(母子)’상들이 전시되어 있다. 마치 이중섭의 선을 다시 만나는 것 같은 이 방에선 그의 휴머니티를 엿볼 수 있다. 헨리 무어의 작품에서 전반적으로 흐르는 정감어린 선이 바로 여기서 나온 것은 아닌가?
1940년대는 작품을 제작할 수 없는 시기로 전쟁 중에 그는 런던의 참호에서 피난민과 전쟁의 참상을 그렸다. 어두운 상황 속의 음울한 시민들을 두터운 콩테와 목탄의 질감을 사용해서 표현한 드로잉을 볼 수 있다. 벽 한 쪽에는 당시 광부들이 좁은 갱도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이 담겨있는 스케치도 있다.
전쟁이 끝난 1950년대에 그는 승자도 패자도 없는 상처받은 전사를 주제로 한 작품을 보여주고 있다. 팔과 다리가 잘린 전사가 쓰러진 체 방패를 들고 있는 씁쓸한 모습이 브론즈로 형상화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이후 그는 느릅나무(ELM)나무로 작품을 한다. 부드러워진 곡선으로 인체를 단순화한 미니멀리즘적 작품을 보여주며 따듯한 질감을 위해 선택한 느릅나무의 분위기 속에서 만년의 평화를 가늠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즐거운 것은 전시장의 사려 깊은 작품의 배치이다. 전 방위를 돌면서 그의 조각품이 가진 면모를 사방에서 즐길 수 있다. 차가운 돌 혹은 묵중한 납과 단단한 느릅나무와 청동 등 다양한 재질로 만든 그의 작품 속에는 이상한 온기, 따듯한 인간미가 느껴지고 정감(情感)이 서려있다. 전시장을 돌면서 나는 결국은 사랑하는 연인의 온 몸을 더듬고 있는 기분을 맛보았다.
그는 88세의 나이로 1986년 고인이 되었지만 그의 작품은 영원히 우리 곁에서 말을 걸어오고 있다.
<전하현/ writer, hyun.h.Jun 미술사가, 문화 평론가, 미술사를 강의하며 본지에 세계문화사(유로저널)와 국내 매체에 미술과 문화 평론 등을 연재하고 있음>